‘ABC’와 ‘ABR’

[편집인 레터] 김주언l승인2008.10.20 11:06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ABC, 영어의 알파벳 첫 순서를 말하는 이 말은 모든 일의 기본을 의미한다. 그러나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인 빌 클린턴 대통령이 추진했던 모든 정책을 부정하고 새롭게 출발한다는 의미에서 이 말을 썼다. 'Anything But Clinton'의 줄임말로 ‘ABC’ 정책을 편 것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과는 무조건 반대로 하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북한과의 대화에 힘썼던 클린턴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포기하고 북한과 적대적 정책을 유지했다.

무엇이든 부시 대통령의 정책을 따라하는 이명박 정부도 ABR(Anything But Roh,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무조건 반대로’) 정책을 펼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이뤄 놓은 ‘10.4선언’은 휴지조각처럼 취급하고 북한과는 ‘적대적인 관계’로 돌아선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비핵 개방 3000’을 내세워 한반도는 신 냉전체제로 되돌아갈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미국은 지난 11일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했다. 미 국무부가 1987년 12월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 이후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려놓은 지 20년 9개월 만이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미국이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의무를 이행한 데 대해 환영한다”고 밝혔다. 앞으로 핵 불능화가 완료되고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합의된 검증의정서가 6자회담에서 확정되면 비핵화 2단계는 마무리된다.

북한은 미국의 대통령선거 국면에서 핵실험 카드로 미국을 압박했다. 부시 대통령은 북핵 문제가 원점으로 회귀할 것을 우려하여 결단을 내렸다. 이제 북한은 미국의 차기 행정부를 상대로 한반도 비핵화 협상과정에서 평화전략을 추구하고 미국도 협상을 통한 외교적 해결 방식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은 임기 말에 이르러 ‘ABC' 정책을 포기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부시 대통령의 북한 테러지원국 해제에 쇼크를 먹은 것 같다. 게다가 내달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인 버락 오바마가 압승할 것으로 보여 보수진영은 공황상태로 빠져드는 것처럼 보인다. 오바마 후보는 북한과의 무조건 직접 대화하겠다며 부시 행정부와는 전혀 다른 해법을 갖고 있다. 오바마 후보는 “우리는 ‘악의 축’인 북한과 대화를 중단해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테스트를 했고 핵확산협정(NPT)에서 탈퇴했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앞으로 ‘통미봉남’(通美封南) 정책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은 혼선을 빚고 있다. 이 대통령은 6.15선언과 10.4선언을 존중한다고 말했지만, 이를 실천하겠다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이른바 ‘ABR 정책’을 고수하겠다는 뜻이다. 그래선지 남북관계는 더욱 악화하고 있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지 3개월이 넘었고 개성공단의 상황도 나빠지고 있다. 인도적 차원의 쌀과 비료 지원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통미봉북’(通美封北) 정책은 지속되고 있다.

북한도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노동신문은 "화해와 단합,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의 활로를 열어온 6·15시대가 ‘잃어버린 10년’으로 모독되고 통일의 근본이념과 원칙들이 전면적으로 부정되고 있으며 북남 사이에 채택 발표된 모든 합의들이 무효화되고 있다"며 특히 "국가보안법, 역사교과서 주적론 부활, 흡수통일, 미국과 연대한 북침전쟁연습 등"에 대한 비판을 나열했다.

이명박 정부는 이제 북한과의 화해와 협력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남북 긴장을 해소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10.4선언을 이행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정치, 군사, 경제협력 등 모든 남북관계 현안을 풀 수 있다. 아무리 ‘한미동맹’을 강화하더라도 남북의 반목과 불신이 해소되지 않는 한 한반도 평화체제는 정착되기 어렵다. 더구나 부시 대통령도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하지 않았는가. 자칫 하면 변화하는 국제정세에서 외교적 고립을 자초하는 결과가 될 지도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른바 ‘잃어버린 10년’ 동안 이룩한 성과물을 계승하고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의 정책을 그대로 따왔다. ‘강부자’를 위한 감세와 재벌을 위한 규제완화가 그것이다. 따가운 국민 여론을 무시한 채 실패한 부시 대통령의 정책을 이어받으려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금융규제를 강화하려 하지 않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왜 이러한 부시 대통령의 정책은 따르지 못하는가. 이 대통령은 남북 긴장을 유발하는 ‘ABR' 정책을 포기해야 한다.


김주언 편집인

김주언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주언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여백
시민사회신문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8288 서울특별시 구로구 새말로 93, 신도림태영타운상가2동 B105  |  대표전화 : 02-3143-4161  |  팩스 : 02-6737-1115  |   ingopress7@naver.com
등록번호 : 서울 아 02638  |  등록일자 : 2013년 5월 8일  |  회장 : 이정우  |  대표 : 윤순철  |  발행인 : 설동본  |  편집인 : 강상헌  |  편집국장 : 양병철
후원계좌 : 국민은행 7788-01-04-375819 (시민사회신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영일
Copyright © 2007 시민사회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