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대화는 왜 하는가?

홍석률 성신여대 사학과 교수l승인2022.07.21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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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7월 4일 아침 10시, TV 화면에 상상도 못했던 장면이 펼쳐졌다.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발표된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통일의 3원칙, 반공의 보루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이 비밀리에 평양에 가서 김일성을 만났다는 이야기 등이 생중계되었다. 불과 4년 전인 1968년 1월 북한군 특수부대가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기 위해 청와대 바로 앞까지 침투했다가 저지되었다. 그 이틀 후에는 미국 정보선 푸에블로호가 원산 앞바다에서 북한에 의해 나포되어 미국의 항공모함이 무려 3척이나 동해에 나타나는 등 제2의 한국전쟁이 우려되었다. 그런 만큼 7.4공동성명 발표는 매우 극적인 역사적 전환이었다. 분단 이후 남북한 당국이 합의해서 발표한 최초의 성명이었고, 남북대화라는 영역을 처음 펼쳐놓은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런데 올해가 7·4남북공동성명 50주년이라고 하면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할까? 시큰둥할 것이다. 지난 50년 동안 여러번 남북대화가 시도되고, 남북의 지도자가 손을 잡고, 술잔을 부딪치고 노래 부르며 냉면도 먹고 했지만, 남북대화는 언제나 기대와 실망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한동안 잘해왔던 금강산 관광도 개성공단도 다 문 닫았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정상회담이 연달아 열리고,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만나기도 하면서 이번에는 뭔가 다른 듯 했다. 하지만 2020년 6월 북한의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역시나였다. 이처럼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도 지난 50년간 남북이 대화를 계속해온 이유는 무엇일까?

1970년대 초 남북한이 대화와 접촉에 나선 이유는 복합적이었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데땅뜨라는 국제정세의 변화, 구체적으로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 개선에 대처하기 위해서였다. 1960년대 말부터 유럽과 일본이 성장하고 소련과 중국이 갈라서면서 국제질서는 미소 양극구도가 완화되고 좀더 다극화되는 양상이었다. 유럽 국가들은 미국과의 동맹관계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냉전의 틀을 넘어서는 보다 유연하고 현실적이며 다변적인 외교적 행보를 보였다. 한국정부도 이미 1960년대 말부터 국제정세의 다극화를 이야기하며 좀더 유연하고 다변화된 정책을 추구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남북한 사이의 ‘선의의 경쟁’을 촉구한 1970년 8·15평화통일구상선언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 공개된 한국의 외교문서 등에서도 확인되듯이 당시 중앙정보부와 외교부 등 실무부서는 8·15선언을 준비하면서 북한에 남북교류를 제안하자는 안을 내놓았다.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이라 해서 남북교류 자체를 완전히 거부했던 이전의 반공적 사고와 정책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반공법 등 관련 법률과의 충돌을 문제 삼는 법무부 관계자들이 반대해 제안은 최종결정 단계에서 보류되었다. 이처럼 남북의 교류와 접촉은 참으로 어렵고 다사다난했다.

그러던 중 1971년 7월 키신저 미 안보담당보좌관의 베이징 비밀방문을 시작으로 미국과 중국의 관계 개선은 완전히 가시화되었고, 마침내 다음해 2월 닉슨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했다. 미국과 중국은 한국전쟁 때 한반도에서 격돌했던 나라였다. 관계 개선 과정에서 두 나라가 한반도 문제를 논의할 가능성이 틀림없이 있었고, 현재 공개된 미국 외교문서를 보면 실제 그러했다. 당시 두 강대국은 관계 개선을 위해 극단적인 긴장상태에 있는 한반도 상황을 일단 안정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각자의 동맹국에 데땅뜨 분위기에 맞는 유연한 정책을 종용하고 유도했다. 키신저의 베이징 방문 직후 남북한 모두 상대 정부와의 대화나 접촉을 거부했던 정책을 수정했고, 1971년 9월 판문점에서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적십자 예비회담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당시 남북대화는 국제정세의 변화와 동맹국의 종용에 순응하는 차원에서만 결정된 것은 아니었다. 여기에는 확실히 좀더 능동적인 측면이 작동했다. 당시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은 남북대화가 시작될 무렵 주한미국대사에게 “과거의 한국은 후진성에 굴복하여 장기판의 졸(卒)과 같은 희생자 역할을 수행했지만, 오늘의 한국은 그럴 필요가 없다. 한국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며 어느정도 독립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중이 장기판을 차려놓고 협상을 하는 상황에서 남북한이 가만히 있으면, 그 판의 ‘졸’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니 남북한도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나름대로 남북대화라는 장기판을 차리고 7·4공동성명을 통해 본격적으로 게임의 주체로 등극했던 것이다.

7·4공동성명과 현재 사이에는 50년의 간극이 있고, 그동안 세계는 또 다시 바뀌었다. 소련과 유럽 공산주의체제는 붕괴되었지만, 중국의 부상으로 이제 미중 갈등과 경쟁에 의한 ‘신냉전’이 우려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러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되지도 않는 것 같은 남북대화는 팽개치고 미국과의 동맹관계만 강화하면 될 것인가? 그런데 누가 자신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사람을 제대로 존중해줄까? 지금 한국은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가 매우 중요해졌는데, 이 문제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중국으로부터 존중받기 위해서라도 남북대화라는 영역을 마련하고 유지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특히 최근 우크라이나전쟁은 21세기에도 전면전, 침략전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간 남북관계가 적대적 대치국면에서 무력충돌과 전쟁위기로 치닫게 되면 그것을 일단 모면하고 상황을 안정시키기 위해 남북대화를 진행한 측면도 있어왔다. 7·4공동성명 때도, 북한 핵 위기 국면에서도 그러했다. 남북대화의 역사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다시 반복하는 어리석음을 보여주지만, 한편 그렇게 해서라도 최악의 위기를 그때그때 모면해왔던 지혜의 역사이기도 하다.

남북대화는 왜 하는가? 한반도의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 짓는 주체가 되기 위해서 한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향상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에 한다. 그렇기에 2022년을 7·4공동성명 50주년으로 기억하는 것을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홍석률 성신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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