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때 삐뚤어지고 싶다'

2000년대 이후 시민운동이 맞고 있는 여러 어려움 중에서 일할 사람의 부족은 재정문제와 더불어 가장 큰 문제이다. 서울의 몇몇 큰 단체를 제외하면 신입활동가를 구하는 일이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어렵게 뽑은 신입활동가들 중 상당수가 중견활동가로 성장하기 전에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민운동을 떠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2008년 현재, 신인활동가들은 어떤 문제와 어려움을 갖고 있는지. 잠깐 그들의 고민을 엿보고자 한다.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신인활동가’란 단어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올해 개인적인 리포트와 운동가대회 세션준비를 위해 3년차 이하 활동가들이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에 관하여 2~3인씩 그룹인터뷰를 진행하였다.

그룹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신인활동가라는 말은 이 인터뷰 과정 중에 제기되었다. 엄연히 올해 활동을 시작한 진짜 ‘신입활동가’들이 있는데, 2, 3년차 활동가들을 똑같이 신입이라고 부르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이었다. 깊은 논의는 아니었지만 그래서 나온 표현이 신인활동가라는 말이었고, 이후 올해 운동가대회 세션 제목으로 처음 공개적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이 글에서도 신입활동가 대신 신인활동가라는 말을 계속 사용하겠다. 아무튼 아래의 내용은 그들과의 인터뷰 중 일부를 정리한 것이다.

먼저 신인활동가들이 선배 활동가들에게 갖고 있는 아쉬운 점에 대한 질문에 ‘기존의 관행을 앞세워 새로운 방식에 대해서는 닫혀있다’는 점을 제일 많이 이야기하였다. 인터뷰에 함께한 한 활동가는 이런 선배들의 모습을 설명하며, 선배들은 ‘그거 내가 해봤는데 안 돼!’라고 말하거나 후배들의 제안을 수용하는데 있어서 매우 경직된 태도를 취한다고 하였다.

또 다른 단점으로 활동에 대해 과도한 의미를 부여해 일을 재미없게 만들어버린다고도 말했다. 가령 올해 촛불시위와 관련해서도 학생들의 재기발랄한 시위문화와 같은 제안을 시민단체 내에서 후배들이 한다면 채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위에 대한 기존의 관습과 문화-엄숙한 분위기에서 의미 있는 행사를 해야 한다(?)-가 선배들의 의식 속에 있기 때문에 그와 다른 시도는 쉽게 수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장하여 이런 식의 의견 차이가 발생할 때에 선배들이 후배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은 생략한 채 일방적으로 묵살하기 때문에 후배들은 갈수록 자신의 의견을 제안하는 것에 대해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 응답자는 ‘선배들은 말로는 예전 방식을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옛날 방식을 고집해 말과 행동이 다른 이중적인 태도를 보일 때가 많다’고도 하였다.

거꾸로 응답자 자신을 포함한 후배운동가들의 단점과 아쉬운 점에 대한 질문에는 조직에 대한 헌신성과 사명감이 부족하고 자신의 관심사에 집중하는 개인주의적 경향, 선배들과의 의견차가 있을 때 끝까지 설득하지 못하고 쉽게 움츠러드는 경향 등의 응답이 있었다.

또 다른 응답자는 시민운동을 시작한지 2~3년이 안 되는 신인활동가 기간이 기존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가장 창조적인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기임에도 실제로는 기존 방식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허덕이게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연차가 쌓일수록 선배로부터 배운 기존 방식에 안주하게 되고, 창조적인 생각과 새로운 방식은 시도조차 못한 채 사장되어 가는 것이 지금 시민운동의 문제라 말했다.

선배들과의 주된 갈등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는 응답자 대다수가 ‘의견 차이를 좁혀가는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을 들었다. 앞서 이야기되었지만 신인활동가들은 선배활동가로부터 자신의 의견이 묵살되었다는 생각을 종종 갖게 되는데, 이런 상황에 대한 선배로부터의 설명은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주요 의사결정 과정이나 정보공유에 있어서도 배제되어 있는 것에 큰 불만을 갖고 있다.

소통의 문제가 있었다

앞서의 ‘요즘 젊은 것들 버릇이 없다’거나 혹은 ‘애들이 개념이 없어’ 등 세대 갈등을 표현하는 말은 선배로부터 후배에게 일방적으로 제기된다. 즉 ‘요즘 선배들은…’ 식의 문제의식은 공개적인 담론으로 제기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후배들 대부분이 상대적으로 자신의 고민과 문제의식을 표출하는 데에 있어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 것인데, 시민운동 내에서도 연차나 직위 등 권력구조상의 상하관계가 있고 특히 오랜 운동경험을 통해 쌓여진 선배활동가들의 ‘말빨 내공’(?)을 감당할 수 없는 것도 큰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후배들의 고민은 그들만의 하룻밤 술자리 안주거리에 그칠 뿐이며, 많은 신인활동가들이 ‘신인’이라는 딱지를 떼지도 못한 채 시민운동을 떠나가고 있는 것이 지금의 시민운동이 갖고 있는 문제인 것이다.

결국 문제 해결의 열쇠는 선배활동가들이 갖고 있다. 수십 년간 몸에 익숙한 습관을 바꾸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며, 야근과 휴일 근무를 당연시할 만큼 업무량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당장 급여문제를 포함한 재정문제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걱정거리이다. 그럼에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운동역량을 성장시키고 지켜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