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기운과 활력을 불어넣다”

오바마 시대, 무엇을 말하나: (3)오바마와... 김민웅l승인2008.12.22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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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있는 정치’ 일깨우는 현장을 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의 미국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패권의 미국에서 공존의 미국으로 갈 것인가란 기대와 전망부터 한반도 정세의 변화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까지, 특히 한국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시민사회신문>은 오바마 당선자의 취임식 전까지 ‘오바마 시대, 무엇을 말하는가’란 집중 기획을 연재한다. 뉴욕유니언신학대학원을 나와 미국 길벗교회 담임목사, 미주 동아일보 기자 등을 역임하며 ‘패권시대의 논리’ 등 미국사회에 대한 진보적 관점의 날카로운 비평을 내놓은 바 있는 국내 시민사회의 미국통 김민웅 편집주간(성공회대 교수)가 연재를 맡았다. /편집자
연재순서

1. 오바마 플랜
2. 오바마와 미 헌법, 미국 민주주의
3. 오바마와 미국 정치
4. 오바마와 경제
5. 오바마와 노동, 복지
6. 오바마와 신앙
7. 오바마와 미국의 세계적 역할
8. 오바마 그리고 미국 역사의 변화
9. 오바마와 우리의 관계
10. 오바마 모델과 진보세력의 미래

이 글을 쓰는 현재 2008년 12월 19일, 나는 미국 뉴욕과 뉴저지에 체류 중이다. ‘반즈앤노블’(Barns and Noble)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책방인 ‘보더즈’(Borders)에 들어서니 역시 미국도 오바마 열풍이 여전하다. 오바마 관계서적들이 즐비하고 사람들도 이 책들을 계속 찾는단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오바마 관계서적만이 아니라 루즈벨트와 링컨 관련 서적들도 덩달아 주목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루즈벨트는 대공황기를 타개한 지도자로 오바마의 현실과 겹치고, 링컨은 남북전쟁의 분열기, 통합기, 흑인노예 해방, 적대자들에 대한 포용 등과 함께 오바마가 관심깊게 그에 대해 읽고 있다는 것 때문이라고 한다. 오바마가 링컨을 가장 존경하고 당선 직후에도 링컨관련 서적을 읽고 있다는 것으로 해서 언론들도 이에 대해 많이 보도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도리스 컨 굿윈의 <경쟁자들의 팀>(Team of the Rivals)가 날개 돋힌 듯 팔린다고 한다. 링컨의 정부에 정치적 적대자들이 주요 내각을 구성한 역사를 연구한 이 책은 오바마가 힐러리를 국무장관에 앉히자 더욱 관심을 모았다.

미국 책방 직원과의 대화

이 책을 읽은 바 있는 내가 책방의 직원 하나에게 ‘이 책 요새 정말 많이 나가냐’고 묻자 그가 빙긋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바짝 세워 내게 보인다. 그러면서 묻는 말이 “오바마가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정치를 하는 것 같소?”라고 한다.

이 말에 나는 “오바마가 힐러리를 국무장관에 앉힌 것이 벌써 그런 통합정치가 아니겠나? 그런데 이런 선택은 결국 오바마-힐러리로 이어지는 민주당 집권 20년 프로그램이 움직이고 있다는 이야기고, 이게 성공한다면 21세기를 변화시킬 수 있는 엄청난 변화가 이루어진다”고 하자 반색을 한다.

그 직원은 자신도 오바마 선거에 열심히 참여했고, 사람들이 경제가 요새 나쁘지만 희망을 갖는 모습에 기쁘다면서 자기도 무언가 오바마 정부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신나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오바마 정부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신청자가 쇄도하는 바람에 경쟁률이 상당히 높아지지 않았는가”라고 하면서 “어려운 때에 좋은(good) 징조”라고 하자 그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건 좋은 징조 정도가 아니라 아주 멋진(great) 징조"라고 한 술 더 뜬다.

부동산 시장이 죽고 경기가 침체로 돌아선 것은 분명하다. 이맘 때 쯤이면 집집마다 크리스마스용 전기불 치장이 한창이고, 거리는 무언가 유쾌한 기분이 가득해지는데 이번에는 영 그렇지 못하다.

한눈에 불황임을 알 수 있고, 우울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는 미국을 보게 된다. 스타벅스에는 두 미국 노인들이 미국 경기를 토론하면서 “우리 미국이 이렇게 망하다시피 하게 될 줄 알았는가”라면서도 오바마에 대한 칭찬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이다.

책방의 점원이나 커피숍의 노인들이나 언론의 보도 모두 경제는 무너지고 있으나 사람들은 오바마 이전과는 달리 크게 낙담하지 않고 희망을 가진 모습이었다. 오바마가 미국 정치의 영혼을 바꾸고 있는 셈이다. 오랫동안 미국 진보세력이 고민해온 “영혼이 있는 정치(Politics of soul)”를 일깨우고 있는 현실이다. 상황은 암담하나 마음은 허물어지지 않는 그런 정치의 기운을 확산시키는 지도자, 그것이 오바마를 지켜보는 미국인들의 시선이다.

힐러리가 그 명성과 폭넓은 지지에도 불구하고 결국 민주당 경선에서 오바마에게 이기지 못하고, 맥
케인 역시 패배한 이유는 물론 여러 가지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워싱턴 정치에 대한 미국인들의 깊은 불신이다. 힐러리의 등장은 클린턴 왕조의 재판이고, 맥케인의 당선 역시 부시 왕조의 반복이라는 생각을 미국인들은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워싱턴이라는 중앙정치는 이미 미국의 변화를 이끌어낼 만한 에너지를 탕진해버렸다고들 여기고 있었다. 중앙정치의 지루함과 소수특권의 이기적 정치행위에서 벗어난, 그런 신선한 모델에 갈망이 오바마의 당선 그 밑바닥에 깔려 있다.

기존 정치 전통도 흡수

참으로 역설적인 상황이다. 오바마는 미국 정치에서 주변부적 존재라는 점으로 미국 정치의 중앙무대를 쥐락펴락 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그런데 이 조건이 도리어 그에게 엄청난 정치적 장점으로 작용했다. 기존의 정치는 가라, 말하자면 껍데기는 가라는 식이다. ‘알맹이가 꽉 찬 정치를 보여 다오’이다.

오바마가 연방 상원 의원으로 나설 때, 그는 언론도 중앙 정치에서도 철저하게 외면한 주변부의 풋내기였다. 출마 기자회견에 단 한명의 기자도 참석하지 않았다. 무참한 시작이었다.그러나 그는 그런 초라한 현실에도 굴하지 않고 보통의 사람들을 열심히 만나러 다녔다.풀뿌리 시민운동의 공동체 조직가로 활약해온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보통의 미국인들이 과연 무엇을 갈구하는지 듣고 대안을 구상해나갔다. 중앙정치의 전문가나 고참 정치인들의 견해에 앞서 미국인들의 속마음을 열고 들어가 보았던 것이다.

이러면서 그는 미국정치의 근본목표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미국인들의 갈망과 요구를 가장 먼저 앞세운다, 이들의 뜻이 모아져서 정책과 정치의 근간이 되는 통로를 만든다, 이들에 대한 감동과 설득, 그리고 소통의 언어를 매일 열심히 훈련하고 실제로 사용한다 등으로 오바마는 미국정치에 보통사람들의 희망을 중심테마로 내세워갔던 것이다. 그의 언어는 진지했고 감동적이었으며 정치인으로서 매우 뛰어난 지적 설득력으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아나갔다. 미국 정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언어, 다른 지도력, 다른 영혼을 가진 정치의 실체와 만나게 된 것이다.

시민운동 조직가의 품성

그러나 오바마가 그렇다고 해서 기존정치의 전통과 완전히 결별한 것이 아니다. 도리어 그는 미국정치의 민주주의 전통과 깊이 만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미국인들 자신의 정치적 전통과 그 역사를 새롭게 복구하는 것이 미국의 미래를 위해 절실하다고 보는 것이다.그것은 무엇인가? 그건 보통의 미국인들이 자신의 주권, 권리를 다시 회복해서 미국 전체의 발전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정치를 만드는 것이다.

오바마는 특히 부시 8년 집권기간에 무너진 이 권리를 재탈환해서 미국 정치의 민주적 역동성을 발휘할 수 있게만 된다면 미국은 희망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나라가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기대와 노력이 어떤 성과를 거둘지 당연히 미지수다. 그러나 경제위기의 한파에 몰린 미국인들이 축 처지지 않고 미래에 대한 새로운 기대에 차 활력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하나로도 이미 오바마는 미국정치의 중심에 올바른 변화의 기운을 불어넣은 셈이다. 보통의 시민들이 주역이 되는 시대, 그런 미국 정치의 현실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실로 우리로서도 깊은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지금 그와는 너무나 다른, 시민들의 권리가 법적으로 박탈되고 민주주의 정치는 포악스럽게 붕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시민사회신문 편집주간

김민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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