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담대한 전환을 위한 플랫폼

시민운동 3.0/도서관의 가능성을 놓치지 말자 박영숙 느티나무도서관장l승인2023.08.07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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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의 의미와 중요성을 새삼 확인시켜주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전국 곳곳의 지자체들이 올해 도서관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온 나라가 도서관에 주목하게 되었다. 대구시가 도서관 예산을 전년도에 비해 40%나 줄이고 특히 200여개 작은도서관 예산 2억 2천만원을 전액 삭감해 눈이 번쩍 뜨이게 하더니, 서울 마포구는 도서관 예산을 삭감하고 작은도서관을 독서실로 용도변경한다고 했다가 구민들의 반발로 철회하는 과정에서 구청의 예산삭감 방침에 이의를 제기한 마포중앙도서관장을 파면했다. 경기도에서도 필자가 운영하는 느티나무도서관의 사립공공도서관 운영지원금을 전액 삭감해 논란이 되었다.

도서관이 중요하게 지켜야 할 지적 자유를 위협하는 움직임도 잇따르고 있다. 최근 한 여당 의원이 전국 고등학교 도서관에 ‘박원순 손석희 이승만 김대중 이명박 문재인 윤석열 세월호 새마을운동’에 관한 책이나 해당 인물의 저서 소장 여부를 조사하는 공문을 시도교육청에 보내더니, 충남지역에서는 일부 보수·학부모 단체들이 공공도서관에 성교육, 성평등 관련 어린이책 폐기를 요청하는 민원을 넣었다. 업무를 마비시킬 만큼 집요한 민원에 못 이긴 몇몇 도서관은 해당 도서들을 서가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취했고, 충남지사는 도서 7종에 대해 도내 도서관에서 열람을 제한하도록 결정했다.

지방분권과 자치, 거버넌스가 실종되었다. 도서관 예산삭감 문제에 대해 대구시 예산담당자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작은도서관 예산은 큰 금액이 아니라서 구·군 예산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경기도의회는 예산 책정 시 도비·시비 매칭비율이 변경되어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고 한다.

누가 온 나라 도서관을 없애도록 지침을 내리기라도 한 걸까 의문이 들 지경이다. 사례들은 여러면에서 닮은꼴이었다. 성과가 미진했거나 예산내역에 문제가 있다면 개선할 방안을 논의했어야 한다. 사회변화 흐름에 따라 도서관의 역할이 달라질 필요가 있다면 그 방향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파격적인 결정을 하면서 사전합의도 없었다. 얼핏 보면 예산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도록 눈속임하는 것도 다르지 않았다.

경기도에서 논란이 된 용인의 느티나무도서관은 24년째 민간에서 운영해온 사립공공도서관이다. 기부금으로 건물을 세웠고 해마다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도서관을 꾸려왔다(2022년 기준 8억 5천만원). 2016년 도서관법에 ‘사립공공도서관 운영을 지원할 수 있다’는 조항이 신설되면서 2017년부터 경기도와 용인시로부터 3:7의 비율로 ‘운영비’를 지원받았다. 3천만원으로 시작됐던 지원이 2021년부터 5천만원으로 늘어 더 다양한 활동을 시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전액 삭감이라니, 청천벽력이었다. 단순 계산을 하면 두 사람을 해고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뒤로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예산삭감의 이유는 알지 못한다. 의회 회의록을 샅샅이 읽어봤지만 도비·시비 매칭비율에 대한 지적과 무인대출 스마트도서관, 메타버스 같은 기술이 발전되고 있으니 ‘이런 거’는 소멸돼가고 있지 않느냐는 발언에 이어 ‘그냥 지원하지 마시죠’라는 결론이 전부였다. 의회에서 결정된 사항이지만 구체적인 배경에 대한 질의나 재고를 청할 수는 없는지 도의회 담당부서에 물었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예산복원을 호소하는 서명이 한달도 안 되어 1만건을 넘겼다. 서명은 도의회를 향한 것이었는데 뜻밖에 용인시가 ‘도서관에 경고한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하면서 일파만파로 사태가 번졌다. 서명운동이 시에 대한 왜곡, 악선전으로 시민을 오도하는 정치행위라 못 박고, 도서관이 정치적으로 파당행위를 해왔다며 이를 반성하고 중립과 공공성 회복을 약속하라는 내용이었다.

지자체에서 작성한 보도자료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거칠고 격앙된 논조에 근거도 논리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의심되는 정황이 있다면 현장에 와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도서관의 생각을 물었어야 한다. 수많은 사람이 뜻을 모으고 힘을 보태 24년을 이어온 시간을 한순간에 부정당하는 것 같았다. 대체 왜 도서관을? 몇몇 개인에게 시혜를 주는 것도 아니고 도서관법과 공공성에 기반해 시민들에게 서비스를 해 온 곳인데 어떻게 이럴 수가? 시장 면담 요청은 번번이 거절당했고, 아무리 애써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거듭 확인하면서 우리는 판단중지를 선택했다.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운영방침이 달라지고, 그 일을 위해 자원을 소진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도서관 정책을 결정하는 거버넌스 구조를 다시 살필 필요가 있다. 미국을 비롯한 몇몇 나라의 공공도서관들에서 비영리조직(NPO)으로 구성된 이사회(Board of Trustees)를 참고해볼 만하다. 교수, 기업체 대표, 연구자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참여하고, 대부분 한달에 한번씩 회의를 열어 재정과 정책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결정한다. 팬데믹 기간에 온라인미팅을 가지면서 교류하게 된 미국 ‘Anythink’ 도서관의 이사회는 도서관이 혁신과 창의적인 활동을 시도하도록 부추기고 지원하면서 이를 위한 기금도 모금하고 있다.

이 제안이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하게 만드는 일이 있었다. 느티나무도서관 예산이 복원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도서관 직원들은 무급휴가를 써서 운영비를 줄여보겠다 나섰고, 지역사회에서 교류해온 단체와 주민들은 느티나무도서관 후원 챌린지를 시작했다. 이왕 하는 거 삭감된 예산 5천만원 모금을 목표로 도전해본다고 했는데 한달 만에 목표액이 초과 달성되었다.

느티나무도서관에서는 이웃들의 ‘긴급구호’로 무너진 둑을 막았고 다른 한편으로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려고 한다. 문을 활짝 열고 지역사회 전체로 통하는 물길을 내기로 한 것이다. 여름내 동네 점포들에 책꽂이를 놓아두어, 음식을 먹거나 커피를 기다리는 손님들에게 주인장들이 책을 빌려주는 골목도서관을 열고 있다. 배달 어플로 음식을 주문하면서 책을 고르면 식사와 함께 책도 배달된다. 도농복합도시인 용인에서 우직하게 친환경농업을 시도하는 농부들과 도시지역 주민들을 연계해 농촌활동을 겸한 ‘팜 파티’도 연다. 도시농업, 친환경농업, 먹거리, 공동체에 관련된 책들을 감자농장과 수박농장에 전시하고 지역 예술인들과 공연도 연다. 두렵고 힘든 삶에 맞닥뜨린 이들이 질문을 보내면 사서들이 협업하여 자료를 찾고 전문가들의 도움도 받아 참고정보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되는 콘텐츠는 이윤을 알고리즘으로 작동하는 구글이나 챗GPT에 기대할 수 없는, 로컬의 힘이 빚어내는 자료다. 도서관은 이제 삶의 변화를 위한 시민의 실험실로 거듭나고 있다. 시민들의 선택으로 뽑힌 단체장이라면 좀 더 대범하고 자신있는 태도로 시민들의 가능성을 믿고 그들을 든든한 파트너로 여기기를 바란다. 

박영숙 느티나무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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