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카르텔은 어디에 있는가

백지연 문학평론가l승인2023.08.28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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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에도 어김없이 닥쳐온 폭염과 수해는 계절적인 자연재해를 넘어서 유례없는 혹독한 재난사고로 깊은 상흔을 남겼다. 중부지방의 수해와 오송 지하차도의 참담한 수몰사고, 해병대 안전사고로 시민들이 귀중한 목숨을 잃었다. 자연현상의 불가피함만으로 온전히 떠넘길 수 없는 인재(人災)에 가까운 사고였다. 이태원참사가 발생한 지 불과 8개월여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을 환기하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하다. 재난상황을 사회적인 참사로 만드는 정부의 행정적 무능과 안전불감증이 반복되는 가운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까지 파행을 거듭하면서 이제는 국가운영의 총체적 부실과 혼란을 전면으로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국가가 재난사고를 예방하고 수습하는 과정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실질적인 임무인 동시에 한 사회를 운영하는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계된다. 기후위기를 포함한 각종 재난이 일상화된 삶에서 우리는 언제든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재난의 복구와 재건은 그런 점에서 한 사회의 정치적 본질을 드러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재난에 어떤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결연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오히려 이들은 대상도 불분명한 이권 카르텔을 찾아내 재난사고의 책임을 묻겠다고 겁박하며, 부패한 카르텔을 색출하여 그들이 받아온 보조금을 폐지하고 그 돈으로 피해복구를 할 것이라는 어이없는 대책을 발표했다.

이처럼 최근 대통령과 정부의 발언에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이 ‘카르텔’이라는 용어는 적대적 정치전술을 통해 공공적 책임을 회피하는 의도로 쓰이고 있다. 정작 척결해야 할 진짜 부패한 조직은 그것을 발화하는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희한한 쓰임새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익을 독점하고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부당하게 결탁하는 조직을 뜻하는 ‘카르텔’만큼 현 정부의 탄생 기반과 정체성을 알려주는 투명한 키워드도 없다.

소위 정계와 법조, 언론, 군부, 학계를 망라하는 광범한 엘리트 카르텔이야말로 체제화된 분단현실의 토대에서 기능해온 집단이며, 이들의 기반과 동조 속에서 지금의 정부가 태어난 것 아니던가. 백낙청은 촛불혁명 이후 가장 크게 달라진 집단으로 현재 여당의 변화를 짚으며, 이들이 촛불대항쟁에서 패한 후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자기 잇속을 추구하는 집단으로 변모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정부는 올해 초 노동, 교육, 연금 방안을 개혁한다면서 주제가 다른 사안을 줄줄이 엮어 ‘이권 카르텔’로 명명해왔다. 검찰조직과 수사기관이 동원된 카르텔 척결 작업은 전임 정부를 포함하여 자신들의 이권 추진에 방해가 된다고 보는 공동체를 탄압하는 표적수사로 이어지고 있다. ‘반(反)카르텔’을 외치지만 그들 자신이 철저한 카르텔의 몸통인 셈이다. 적대적 전선 형성과 표적수사를 내세우는 카르텔의 정치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언론을 억압하고 통제하여 민주주의의 기반을 위협하고 핵심적인 공공 의제를 은폐한다는 점이다.

지금 이 순간도 카르텔 논란 속에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정치적 쟁점들이 언론에 제대로 보도되지 않으며 앞으로도 묻힐 기세다. 당장 8월 18일에 열리는 한미일 정상회담의 주요 안건인 일본 오염수 방류 문제와 군사동맹 문제 등에 대한 본격적인 보도와 비판적 분석은 거의 찾기 어렵다. 국가기관이 총동원되어 법적 절차도 무시한 채 밀어붙이는 공영방송 장악, 번역 출판 관련 기관에 대한 부당한 고발과 감사 역시 카르텔 프레임을 씌워 악의적으로 강행하고 있다. 건설 카르텔 척결을 운운하며 노동에 관련된 의제를 묻어버리는 행태도 심각하다.

무엇보다도 기득권 세력이 추동하는 이 난폭한 정치적 정동은 불안과 적대의 구도를 통해 끊임없이 사회적 혐오를 만들어낸다. 지하철과 길거리, 교실에서 우리가 만난 끔찍한 폭력은 갑자기 돌출한 사건이 아니라 바로 이런 혐오와 불안을 먹고 자란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이 세계는 현실의 잔혹한 생존체제를 강조하고 각자도생만이 유일한 출구인 것처럼 부추기며, 어차피 세상은 위험한 곳이니 당신은 그냥 ‘살던 대로 살아보라’고 속삭인다. 그러나 적을 만들고 나만의 생존을 도모하는 프레임이 약속하는 안전한 미래는 실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로지 우리의 눈과 귀를 일시적으로 막을 뿐이다. 적대와 혐오를 유일한 자양분으로 퍼올리는 이 뿌리 깊은 불신의 벽을 넘어서 새로운 정치의 시야를 만들어낼 삶의 자리가 긴급하게 필요하다.

공공적으로 정당하게 쓰여야 할 나라의 예산을 부당한 이권 혐의를 씌워 삭감하고 사회적 약자들의 생존 기반을 위협하는 지금의 정치 상황은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가 절박한 변화의 정점에 도달했음을 알려준다. 카르텔의 정치가 야만적인 실체를 드러낼수록 그것을 만들어낸 기반의 취약함도 본질을 드러내고 있다. 각자의 실천적 삶을 바탕으로 진정 맞서야 할 개혁의 대상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 함께 사유하고 고민할 때도 바로 지금이다. 폭주하는 이권 쟁탈의 정치를 어떻게 멈출 것인가. 현명한 의논과 각자의 힘을 모아야 할 때가 임박했다.

백지연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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