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양가(擊壤歌)를 생각하며

한해가 저물어가는 세밑의 마지막 날 자정을 앞두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복잡하고 다단한 한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설계하기보다는 지쳐버린 몸과 마음에 지인들과 산행을 하며 세상타령을 하면서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흉보고 싶었다.

부지런히 밤을 달린 버스는 새벽에 남쪽 큰 산 밑에 나를 내려두고 떠나갔다. 새해의 해는 뜨지 않았고, 차가운 바람 속에 눈보라만 몸을 감싸왔다. 어둠을 벗 삼아 조용히 산에 오르겠다는 희망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불가능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산 정상을 향해 길게 나있는 헤드랜턴의 모습이 마치 공사판으로 변해버린 국토를 떠나 피안을 찾아가는 생명선 같았다.

피안을 따라 산을 오르는 사람들

어떻게 하겠는가? 장터목 산장에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등산객은 많고 눈보라 몰아치니 일출을 보러 가겠다는 생각을 포기하기까지 그리 오랜 갈등이나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영하 18도라는 안내판이 거짓말처럼 눈보라에 느끼는 체감온도는 훨씬 추웠다. 함께 간 지인들과 밥은 다음 산장에서 먹기로 하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온 나라를 공사판으로 만들겠다는 사람들이 통치하는 나라를 벗어나고 싶은 작은 욕망은 그렇게 며칠 걸렸던 새해의 산행을 만들었다.

그렇게 연말연시만 되면 산에 오르는 사람이 많아진다. 더욱이 지리산처럼 큰 산에는 일출을 보러오는 등산객이 더 많아진다. 세상살이 힘이 들 때면 유독 더 많아지는 것 같다. 그 산을 자기 집 마당처럼 살아가는 지인은 연말연시만 되면 일출을 보러오는 친구들을 만나 접대하기 바쁘다며 번잡한 마음 다스리려 산에 오지 말라 한다. 마음이 번잡스러우면 청명한 산도 번잡스러워진다고 한다. 자연이 그렇게 스스로 존재하듯이 사람도 세상살이 흐름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가라 한다.

하지만 도를 닦는 도인이 아닌 바에야 ‘머리 속에 삽 한자루’가지고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어떻게 제정신으로 살겠는가? ‘녹색’이라는 단어조차도 정의가 ‘삽질’로 바뀌는 세상에서 귀를 막고 산다 한들, 오지에 숨는다 한들 어떻게 망신스러운 저 작태들을 피할 수 있을까 싶다. 산에 피난가면서도 그렇게 불편했던 마음이 다시 공사판을 만나 저들이 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오히려 차분해진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가 보이니 말이다. 세상이 모순이듯이 내 마음도 모순인가 싶다.

사실 새해 다음날 이른 새벽에 지리산 한 봉우리에서 지인 몇 사람과 앉아 세상살이 타령하면서 ‘격양가’(擊壤歌)를 떠올렸다. 잘 알려졌듯이 예전 선인들이 기록한 글에 의하면 “해 뜨면 일하고(日出而作), 해지면 잠자고(日入而息), 우물파서 마시고(鑿井而飮), 밭갈아 먹는데(耕田而食), 임금의 덕이 내게 무슨 소용있으리(帝力于我何有哉)”(장자)라는 태평성대도 있었다고 한다.

옛 선인들의 삶을 잘 알지 못하지만 그렇게 평화로운 시대도 있었는가 싶다. 격양가는 내용만 두고 보면 농민이 평화로운 세상살이 삶에 대해 노래하는 것이다. 해 뜨면 일하고, 필요하면 우물파고 일해 먹고 살아가는 세상에서 임금이 누군들 무엇이 중요할까? 어쩌면 전쟁과 살육으로 얼룩진 세상에서 반대로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모습일지 모르겠으나, 그들이 부른 노래만큼이나 세상은 평화로웠을 것이다.

현실의 삶은 고되기만 하다

하지만 옛 선인들이 부른 희망가와 달리 현실의 우리 삶은 고단하기만 하다. 무시하거나 잊고 싶고,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삽 한자루가’가 세상의 모든 기준이 되며 그 삽 한자루로 온 국토에 삽질을 하는 공사판을 만들겠다는 것이 지고지순한 국가정책으로 변해버리고 있다. 삽 한자루와 삽질에 대해 말하는 것과 글 쓰는 것도 힘든 세상이 되고, 퍽퍽한 세상살이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모욕으로 취급받는 세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산과 바다, 하천 등 인간과 생명의 숨소리 깃들어 있는 우리 터전과 삶의 정상성이 훼손되는 세상에서 사람과 생명체들의 피난행렬이 계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삽자루가 부러져야 하지 않겠는가? 삽자루가 부러지지 않고 토건세력과 자본이 우리 시대의 비전과 희망이라고 규정되어지는 세상은 역사의 퇴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2009년 삽자루로 대표되는 시대의 역행을 막아내기 위한 시민사회의 노력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격양가 따라 삽자루 걱정 없는 세상을 가꾸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