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상위 20% 위한 저금리 대출, 집값상승·가계부담 증가시킬 것 

한국은행의 가계부채 조절 요청 무시한 금융정책 전면 재검토해야
무주택 서민, 출산·육아 가구에는 대출이 아니라 안정적인 장기임대주택 공급해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집값 부양에 진심인 윤석열 정부의 노력이 눈물겹다. 국회예산정책처에서 발행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주택구입·전세자금(융자사업) 사업의 일환으로 내년 1월부터 대출신청일 기준 2년 이내에 아이를 낳은 가구를 대상으로 2023년 출산가구부터 적용되는 ‘신생아특례대출’을 실행할 것이라고 한다.

저출생 대책으로 대출 확대를 내세운 것도 적합하지 않은데, 그 명목적 구실 뒤에 있는 숨은 의도 역시 저출생 문제 해결이 아니라 부채를 동원해 집값을 부양하기 위한 것이 아닌지 매우 의심스럽다. 윤석열 정부는 집값 부양과 건설사 살리기를 위해 민간금융을 동원하는 것을 즉각 중단하고,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저출생 대책에 맞지도 않는 ‘빚내서 집사라’ 대책 대신 장기공공임대주택을 대거 공급하여 20년 이상 부담가능한 비용으로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우선이다.

지난 상반기 서민 내집갖기 명목으로 집행된 특례보금자리론이 중산층의 주택구입 자금 마련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이것이 결국 치솟는 가계부채와 집값상승이 원인이 돼 지탄받은지 불과 몇개월이 지나지도 않았다. 지난 수년 간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금융협회(IIF)와 같은 주요 국제금융기관들이 경고했듯이 한국의 전체 가계부채는 국내총생산(GDP)를 넘어서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고 앞으로 가계부채를 줄이지 않으면 장차 여러 경제주체들을 위기(crisis)에 빠뜨릴 수 있을 정도로 위험(risk)이 커진 상황이다.

한국은행도 여러 자료를 발표해 가계부채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있으며, ‘가계부채와 연관성이 높지만 생산성이 높지 않은 부문(부동산)에 대한 대출집중도’가 심하고, 이는 다시 ‘자산 불평등을 확대’시키고 있으므로, 금융기관의 가계대출 취급유인 조정과 가계의 대출 수요 조절 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관련 자료). 그러나 윤석열 정부 아래 금융당국은 이를 무시하고 가계대출 취급유인을 ‘창조’하고 있고, 가계의 대출 수요를 부추기고 있으니 개탄스럽다.

국회예산처가 밝힌 신생아특례대출을 조금만 살펴보아도 이 정책의 목적은 저출생 대응이 아니라 집값 부양에 있음이 확연히 드러난다. 신생아특례대출은 비록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이루어지기는 하나 연소득 1.3억원, 자산 5.06억원까지 대상자로 포함하며, 대상주택가격은 9억원까지 인정돼 5억원 한도까지 지원된다. 2022년 가계금융복지조사(관련 자료)에 따르면 소득 5분위의 연소득 중앙값이 1억2805만원이니, 사실상 상위 20%에 해당하는 사람도 정부 정책자금의 혜택을 받아 저금리(3.3% 이내)로 주택구입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러한 신생아특례대출의 공급 규모는 무려 26.6조원으로 책정되어 있다.

그러나 지난 특례보금자리론 사례에서 보듯, 이러한 대출 정책은 다시금 집값을 올려 무주택 서민들의 장기적인 내집 갖기 계획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고, 집값 인상에 이은 임대료 인상으로 서민 주거비 부담은 더욱 무거워 질 것이다. 여기에 가계부채 증가 그 자체만으로도 서민 차주의 부채 원리금상환 부담을 높여 가계소비를 위축시키고, 장기적인 경제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 정책의 과오에도 이토록 무리하게 부채 주도 주택정책에 나서는 이유가 무엇인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신생아특례대출 계획은 출생률 제고를 구실로 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한 금융을 확대한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겠지만, 저출생 방지를 위한 사회정책의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 대한민국의 출생률 저하 문제는 장차 사회의 존폐를 가늠하는 중요한 문제로 민간의 금융자본(정부의 직접 융자 8.767조원을 제외한 약 18.7조원)을 끌어와 대중들의 ‘내집마련 욕망’을 충족시켜주면 자연히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다.

정부는 저출생문제 해결을 위해 재원을 투입해 출산, 보육에 대해 직접 지원과 사회적 인프라 구축 방안, 특히 노동시간 단축과 성평등 정책 마련에 고심해야하며, 서민의 미래를 갉아먹는 대출에 의존해 각자도생식 해결을 지속적으로 강요하기 보다는 서민들이 자신의 소득으로 감당할 수 있는 양질의 주거를 공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차라리 무주택 서민, 출산·육아 가구를 위해 공공에 환매하는 조건이 붙은 토지임대부 주택과 같은 부담가능한 분양주택과 양질의 공공임대주택을 확대 공급하는 것이 훨씬 실효성 있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저출생 대책을 구실로 대출을 조장하고 가계부채 부담을 증가시키는 일련의 정책을 반드시 재고하기 바란다.

(2023년 11월 3일)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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