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힘의 원천’이 몰락하다

바이든 정부의 대내적 붕괴와 대외적 불가능성 이혜정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l승인2023.11.23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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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바이든(J. Biden) 정부의 대외정책 독트린은 무엇인가? 9월 말 미국의 한 시사 저널의 행사에서 국가안보보좌관 설리번(J. Sullivan)은 자강, 동맹, 글로벌 사우스에서 미국 리더십의 강화, 그리고 절제된(disciplined) 군사력 운용방식이라는 네가지 주요한 수단을 통해서 상호의존 시대의 지정학 경쟁을 펼치는 것이라고 답했다(“National security adviser Jake Sullivan delivers remarks on threats to democracy,” PBS NewsHour 2023.9.30).

국의 ‘절제된 방식’의 대표적 성과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하면서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끄라이나를 지원할 여력을 확보한 점, 가자지구의 긴장완화를 포함한 예멘 내전의 휴전 등으로 중동을 9·11 테러 이래 가장 조용하게 관리한 점이었다. 그 효과로 “다른 지구적 중점 과제들을 위한 자원을 확보하고 중동의 새로운 갈등 위험을 줄이고 미국의 이익이 훨씬 더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보호되었다.” 10월 2일 설리번은 이러한 주장을 담은 ‘미국 힘의 원천’이라는 제목의 원고를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했다(“The Sources of American Power,” Foreign Affairs 2023년 11-12월호).

중동의 안정이 깨지고 미국 힘의 한계가 드러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10월 7일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 영내에 침입하여 1200명을 살해하고 240명을 납치하는 전대미문의 테러공격을 감행하였다. 이스라엘은 즉시 하마스 절멸을 목표로 천명하며 가자지구에 대한 전기, 식량, 연료, 물 공급을 끊고 대규모 공습을 시작했고, 27일부터는 가자지구에서 지상전을 전개했다. 한달 만에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만명을 넘어섰고, 그중 4천명이 어린아이들이었다.

10월 18일 바이든의 이스라엘 방문 이후 설리번은 「미국 힘의 원천」의 웹 버전에서 중동 관련 내용을 수정하였다. 중동의 안정에 대한 선전은 삭제되었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의 해법으로 2국가론이 언급되었으며, 이스라엘에 대한 일방적 지원과 함께 가자지구의 인도적 지원에 힘쓰고 있는 바이든 정부는 여전히 ‘절제된 접근’을 추구한다는 내용이었다.

바이든 정부의 대응은 절제되지도 효과적이지도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유엔의 공식명칭이기도 한 ‘(이스라엘에 의해서) 점령된 팔레스타인 땅’(The Occupied Palestine Territory)의 비극을 전혀 대변하지 않은 채 하마스를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방공망과 탄약 등을 긴급 지원하면서 오스틴(L. Austin) 국방장관은 미국의 군사지원이 무조건적이며, 이스라엘은 자신이 옳다고 판단하는 모든 것을 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인도적 지원 단체들과 아랍, 그리고 국제사회 전체가 비판한 연료와 식량 등의 금수 조치를 통한 가자 포위(seizure)나 대규모 민간인 피해를 수반하는 공습과 지상전이 모두 하마스의 절멸을 목표로 한 이스라엘의 자위권에 포함되는 것이었다.

구떼흐스(A. Guterres) 유엔 사무총장처럼 하마스의 테러가 진공상태에서 발생한 것이 아님을 지적하지 않은 채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인정한 바이든 정부는 뒤늦게 민간인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소규모 정밀포격 등을 조언하고, 인도적 교전중지를 제안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휴전 요구를 단호하게 거부하고, 미국의 ‘조용한 외교’에 대해서는 2차대전 중 미국이 독일과 일본의 도시들을 폭격한 사례, 특히 핵무기를 사용한 것을 자위권의 전례로 일깨워주며 제한적으로만 인도적 교전중단에 합의하고 있다.

미국은 결과적으로, 하마스가 기지로 사용하고 있다며 사원과 병원, 난민촌 등을 자위권을 명분으로 거침없이 폭격한 이스라엘의 ‘살육극 공범’이 되었다. 그 후과로 중동의 갈등에 다시 발목이 잡히면서, 대내외적 중점 과제에 투자할 도덕적·물질적 자원을 확보하는 데 장애가 발생했다.

가장 직접적으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중동 전체로 확산되지 않더라도, 바이든 정부가 추진했던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 정상화, 인도에서 중동을 거쳐 유럽으로 연결되는 경제회랑 건설 등은 적어도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이 진행되는 동안은 실현 불가능하다. 도덕적 권위에 대한 타격도 심대하다.

요르단 등이 제한한 휴전결의안은 유엔총회에서 압도적인 찬성(120개국)으로 통과되었는데, 미국은 소수의 반대국가(14개국) 중 하나였다. 국제사회, 특히 글로벌 사우스에서 미국의 리더십이 중국이나 러시아 등과 비교해서 지니는 대안적인 가치(value proposition)를 제고하고자 했던 설리번의 꿈은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바이든이 이스라엘을 방문해 글로벌 사우스의 반발을 사는 동안 뿌찐(V. Putin)이 시 진핑(習近平)이 주재하는 중국의 일대일로 회의에 참석한 것은 대단히 시사적인, 미국의 고난을 상징하는 국제적 풍경이다.

설리번이 미국외교의 주요 수단으로 제시한 자강과 동맹에 미치는 파장은 비록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결코 간단치 않다. 러시아의 우끄라이나 침공에 맞서 바이든 정부가 주요 7개국과 우끄라이나의 대응을 조율하면서 나토(NATO)의 확장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것과 달리,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에서 바이든 정부는 G7과 서구 전반은 물론 미국 내부적으로도 단합된 대응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가 서구 전반의 이념적, 종교적, 정치적 분열의 이슈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석유 의존 등으로 중동문제 전반에서 여타 G7과 궤를 달리해온 전통을 유지하고 있고, 프랑스는 미국의 동맹국들이 대부분 유엔총회 휴전결의안에 기권한 것과 달리 찬성을 하며 팔레스타인의 인도주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으며, 유럽연합 관료조직 내부에서 폰데어라이엔(U. von der Leyen) 집행위원장의 친이스라엘 편향에 대한 반발도 심각한 상황이다. 나토와 인도·태평양지역의 동맹을 현대화하고 서로 연계한다는 바이든 정부의 동맹정책 이상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관련해서는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미국정치의 분열과 기능장애는 10월 7일 하마스의 테러 직전에도 하원의장 축출로 계속 악화일로에 있었다. 바이든 정부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러시아-우끄라이나 전쟁, 그리고 중국의 도전을 연계시키며,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필수국가’ 미국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우끄라이나에 대한 지원과 중국 대응 명목 등으로 1060억 달러의 긴급 대외원조를 요구하였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가 관성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원하면서 인도적 위기를 초래했다며 국무부 고위 관료가 공개적으로 사직을 발표하기도 했고, 미국이 제공한 무기가 민간인 살상에 이용되는지를 살펴보겠다는 국무부 정책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데 대한 반발과 비판도 제기된다.

이스라엘 지원으로 아랍 유권자와 청년세대의 반발이 거세어 바이든의 범민주연합에 균열이 생기고 있으며, 공화당과 트럼프(D. Trump)의 미국우선주의 추종세력은 우끄라이나에 대한 추가 원조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고, 민주당 내 진보진영은 즉각 휴전을 요구하며 이스라엘 지원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스라엘 지원을 찬성하는 중도파 민주당 의원들도 이스라엘에 지원되는 무기 내역을 의회에 공개하지 않는 바이든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설리번은 중산층 재건과 경제안보, 그리고 군비증강을 자강의 주요 정책으로 제시했는데, 이들을 위한 예산을 어떻게 확보하고 분배할 것인지에 관한 기존 대립구도에 더해 대외원조 전반에서의 제정파들 간 대립이 착종되고 있는 것이다.

이혜정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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