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버와 루스벨트, MB

[편집인 레터] 김주언l승인2009.02.09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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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30년 전, 디스코 볼 아래에서 춤추고, 개인용 컴퓨터라고는 들어 보지도 못했던 그런 시대에 만들어진 공화당의 경제논리를 갖고 여전히 논쟁을 벌이고 있다.”

“뉴딜은 노동 집약적인 경제-즉 보다 많은 예측 가능한 임금을 추구하는 것으로 충분했던 경제였지, 거대한 부와 부가 더 광범위하게 퍼진 경제는 아닌 것이다-를 위해 만들어졌다. 오늘날의 세계에서 우리는 둘 다 가져야 했다.”

오바마 측근이 한국에 있었다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비서실장인 람 에마뉴엘은 지난 2006년에 출간된 그의 저서 ‘더 플랜’에서 이렇게 밝혔다. ‘미국의 새로운 비전과 민주당의 도전’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민주당의 정책방향을 제시하여 오바마 당선에 기여했다.(이 책은 지난해 8월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의 번역으로 리북에서 출간됐다) 에마뉴엘은 자신에게 전화가 걸려오자 너무 바쁘다며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화를 바꿔줄 정도로 오바마 대통령의 측근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에마뉴엘이 한국에 있었다면 이명박 정부에게 똑같은 비판을 쏟아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명박 정부는 누가 뭐래도 30년 전으로 역주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IMF(국제통화기금)가 올해 경제성장률을 -4%로 예측하는 등 민생이 파탄지경에 이르렀는데도 1% 강부자만을 위해 세금을 깎아주고 종부세를 무력화시켰다. 건설업자들의 배만 불리는 ‘전국토의 공사장화’를 추진한다. 이명박 정부는 이를 ‘녹색 뉴딜’로 포장했지만, ‘삽질 경제’라는 걸 국민은 다 안다.

이명박 정부는 강부자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법’이라는 이름의 그물망을 짜고 있다.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하는 ‘MB 악법’ 제정에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의 정치사찰을 꿈꾸고, 개인 전화를 감청하려 한다. 소통의 도구인 방송과 인터넷 장악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공영방송과 은행 등을 재벌이나 족벌신문에게 나눠주려는 음모를 숨기지 않는다. 자신들의 거짓말을 은폐하기 위해 역사 왜곡을 서슴지 않는다. 화해와 상생의 남북관계를 일거에 무너뜨려 이제는 경제위기에다 전쟁위기까지 불러일으킨다.

30년 전 유신독재의 악몽이 떠오른다. 에마뉴엘의 지적대로 ‘디스코 볼 아래에서 춤추고 개인용 컴퓨터라고는 들어보지 못했던’ 유신독재 시절의 암울했던 자화상을 보는 듯하다. 정보기관의 사찰과 도청, 감시, 연행, 고문 등 악독한 공안탄압이 눈에 보이듯 선하다. 1987년 6.10시민항쟁 이후 어렵게 쌓아 올렸던 ‘절차적 민주주의’가 하루아침에 무너져 가고 있는 것이다.

과거 군사정권들은 군대를 이용해 정권을 잡고, 정보기관을 정권안보의 첨병으로 활용했다. 이제 이명박 정부는 경찰과 검찰, 법 등 사법체계를 권력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말끝마다 부르짖는 법치는 자신들의 탐욕은 ‘합법’으로, 국민의 권리는 ‘불법’으로 만들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6명의 고귀한 목숨을 앗아간 ‘용산 참사’를 대하는 이명박 정부의 태도를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김석기 경찰총장 내정자의 문책여부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은 “일하다가 실수한 것을 문제삼으면 누가 일하겠는가”라고 옹호했다. 경찰은 진실은폐를 시도하며 여론조작에 나섰고, 검찰은 ‘경찰 무죄, 철거민 유죄’라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김석기 퇴진을 요구하는 것은 체제전복이라고 윽박지르고, 용산 참사를 도심테러의 산물이라고 몰아 부쳤다. 유신정권의 공안통치를 방불케 한다.

유신정권 공안통치 방불케 해

1928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허버트 후버가 대통령에 취임한 지 7개월 만에 대공황이 터졌다. 후버 대통령 재임 중 미국인의 총소득은 절반 이하로 떨어지고, 무역액은 3분의1 이하로 줄었다. 공식적인 실업률은 25%였지만 실질 실업률은 40% 이상일 것으로 추정됐다. 후버는 낙관론을 버리지 않았고, 근본적 실패를 부인하여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더구나 후버는 1932년 여름 연금을 앞당겨 달라며 워싱턴에 몰려든 참전병사 2만여명의 시위대인 ‘연금 부대’를 군대를 동원해 강제로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결국 차기 대통령은 시어도르 루스벨트에 돌아갔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취임 후 연금 부대가 다시 찾아왔을 때 부인 엘리너를 보내 설득했다. 엘리너는 커피를 권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노래를 부르며 그들의 아픈 마음을 달래줬다. “후버는 기병대를 보내줬고, 루스벨트는 마누라를 보내줬다"는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루스벨트는 빈민구제에 힘을 기울이고, 제도개혁을 추진하여 대공황을 이겨냈다. 빈민 구제를 좌경화로, 제도개혁을 체제전복으로 여겼던 후버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이명박 정부는 경제위기를 이른바 ‘녹색 뉴딜’로 극복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철거민을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6명이 희생됐다. 여당 의원들은 ‘체제 전복’ ‘도심 테러’ 운운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후버인가. 루스벨트인가. 국민의 판단에 맡긴다.


김주언 편집인

김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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