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은 해상경계선 문제를 둘러싸고 오랫동안 대립해 왔다. 지난 1999년과 2002년 두 차례나 군사적 충돌이 발생했을 정도로 서해상군사분계선 문제는 남북의 화약고나 다름없었다. 분쟁의 씨앗은 정전협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전협정은 육상경계선, 즉 군사분계선은 명확히 했지만 해상경계선 문제는 공백으로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6.15 공동선언 발표 이후 남북관계가 발전하면서 서해상에서의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들이 진행되어 왔다. 남북은 2004년 2차 남북 장성급 회담에서 서해상에서의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함정이 서로 대치하지 않도록 통제하고 상대측 함정에 대해 부당한 물리적 행위를 하지 않으며 제3국 어선들을 단속, 통제하는 것도 협력키로 합의했다.
무엇보다 지난 2007년 2차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10.4선언에서는 서해에 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해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을 설정키로 합의했으며 그 해 11월 개최된 국방장관회담에서는 남북 간의 불가침합의를 재확인하고, 해상불가침경계선 설정과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를 논의하기 위해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구성, 운영키로 합의하기도 했다.
남북이 암묵적으로 서해상분계선에 대한 서로의 주장을 인정했고, 이를 토대로 해상불가침 경계선 설정을 논의하는데까지 이르렀다면 사실 문제는 해결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화약고였던 서해가 바야흐로 평화와 번영을 위한 남북협력의 장으로 재탄생하는 역사적 사변을 앞두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태는 원점을 돌아 심각한 후퇴국면에 놓여있다.
북한의 의사는 명백해 보인다. 북의 입장에서 남측 정부가 대화의 의지가 없는데다 군비증강과 군사훈련에 몰두하고 있는 만큼 이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대결을 피할 수 없다면 맞대응 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서해상에 남측 양국의 군사력이 증강되고 있고, 군사훈련이 상시적으로 벌어지고 있으며 만일 서해상에 ‘삐라 살포’라도 재개된다면 충돌은 불가피하다. 5, 6월 꽃게잡이 철을 점치기도 하지만 현재의 분위기는 일촉즉발이다.
사실 북한은 지난 두 차례의 교전을 통해 해상전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맞대응’을 장담한 북한으로써는 전력우세를 보장할 수 있는 별도의 대책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태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혹시 잊고 있었을지 모른다. 남북은 아직 정전상태이고 언제 약한 고리에서 전쟁의 불씨가 터져 나올 지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난 시기 남북은 화약고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애써 왔고, ‘평화정착’의 문턱까지 다가갔지만 지금은 언제 터질지 모를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좋게 발전하던 남북관계가 이렇게까지 악화된 것은 단 한 가지, 남한 정부가 북을 ‘대화’의 상대이며 화해협력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있다는데 그 원인이 있다. 지난 1년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과 11월부터 시작된 북의 경고에 대한 ‘무대응 전략’이 결국 현재의 사태를 불렀다. 만일 극도의 불신밖에 남지 않은 남북관계에서 우발적이든 의도적이든 서해상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한다면 상황은 파국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무대응’ 기조를 재천명했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북한과의 전쟁이라도 불사하겠다는 것인가. 의외로 해법은 간단할 수 있다. 충돌을, 전쟁을 바라지 않는다면 답은 하나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진실한 자세로 대화에 나서야 한다.
이연희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교육정책국장
이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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