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의기구 아닌 합의기구다

[시론] 김서중l승인2009.03.09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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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악법이라 비판받는 한나라당의 미디어 관련 법안 처리가 100일 간의 휴전(?)을 맞이했다. 그 기간 동안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묘수를 찾아내기를 바라지만 기대는 난망하다. 한나라당이 결국 소위 사회적 논의기구 즉 ‘미디어 발전 국민위원회’를 구성하는데 동의했지만 그 논의기구의 실효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한나라당 쪽에서 논의기구가 자문기구임을 힘주어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 지난 회기 동안 한나라당이 언론 악법 관련하여 보여준 태도가 비민주적이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내 대표인 홍준표 의원이 미디어법 처리와 관련하여 수차례 말을 바꾼 것이나, 고흥길 문방위 위원장이 꼼수를 부려 상임위 직권 상정을 하는 행위들은 논의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무시한 행태이다. 날치기 상정을 하는데 일일이 법명을 거론해야 하는 규정이 걸림돌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전 회의에서 미디어 관련 법안들을 뭉뚱그려 미디어법안이라고 지나가는 말처럼 해놓고, 그것에 근거해 법명을 일일이 부르지 않고 통과시킨 행위를 최소한의 민주적 형식과 절차라도 지킨 것이라 인정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런 중요한 ‘절차 정당성’ 문제는 이제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다. 사회적 논의기구 정체성 문제로 단계가 넘어 가 버린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직권 상정 압박이나, 형식적인 사회적 논의기구 합의가 소위 ‘형님’ 정치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형님의 일성에 공당이 강경 자세로 돌아서는 상황에서 논의기구를 통한 논의와 합의가 가능하겠는가. 1년여를 끌었던 프랑스 언론재편 논의의 결과, 신문방송겸영 완화는 무산되었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가장 강력하게 원한 것이었지만 3개월간의 언론 대토론회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적 논의기구 합의 과정에서 보인 한나라당의 정치력 실종을 고려하면, 사회적 논의기구에서 설사 합리적 제안이 나온다 한들 그것이 청와대와 정부의 뜻과 맞지 않으면 호통 한 마디에 무시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문방위 나경원 의원이 자문기구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민주당의 정치력 부재도 전망을 어둡게 한다. 시민사회 진영은 오래 전부터 민주당에게 미디어 관련 법안들을 비롯해 쟁점법안들을 막아내기 위해 의원직 총사퇴라는 배수진을 치라 주문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소수 정당의 한계만을 변명처럼 역설할 뿐이다. 지난 12월처럼 본회의장을 점거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수 정당의 한계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사즉생의 자세이다. 어떤 여당도 국민 대다수의 동의를 등에 업은 야당 총사퇴를 돌파할 정치력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스스로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 이런 이들에게 사회적 논의를 통해 합의된 의견을 입법 과정에 반영시킬 수 있는 힘이 있을 리 없다.

그래서 논의기구가 형식적 들러리가 될 자문기구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번 여야 합의를 100일 간의 기한 연장, ‘휴전’에 불과하다고 혹평하는 이유이다.

혹자는 의회가 이미 입법기구인데 별도의 논의기구가 합의기구라 한다면 의회의 역할은 무엇이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사회적 합의기구가 필요한 이유는 현재 한나라당의 미디어 관련 법안의 내용이 대의민주주의에서 국민의 포괄적 위임을 넘어 선 매우 중차대한 문제이고, 국민 대다수의 여론에 반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기구가 필요한 것이고, 여기서 수렴한 의견은 입법과정에 당연히 반영하여야 하는 것이다.

혹 이 기구의 합의안의 변경이 필요하면 여야가 합의하여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는 절차를 가지면 될 것이다. 그리고 각계각층을 망라하는 위원회 구성이 절실하다. 언론 구조의 변화는 모든 구성원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에 가능한 한 많은 집단의 대표성을 반영해야 한다.

또 한나라당이 지난해 12월 3일 법안을 제출한 이후 미디어 산업발전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제시가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없다. 심지어 일부 제시된 근거가 사실에서나 논리에서나 부정당했다. 따라서 이는 정치적 논쟁이 아니라 전문가들이 사실에 근거해 깊이 있게 분석해서 결론을 내려야 할 사항이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사회적 논의기구는 합의기구로 수정하고, 다수의 국민 대표들로 구성한 의결기구와 학계, 현업, 언론시민단체, 법률가 등 전문가 중심인 실행기구라는 이중 조직을 가져야 하며 그 활동에 기한 제한 같은 것은 없도록 여야간 재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김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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