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해에 걸쳐 읽는 책

책으로 보는 눈 [79] 최종규l승인2009.03.19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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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불편>(달팽이)이라는 책이 2004년에 나왔습니다. 저는 이 책을 2005년에 처음 장만했고, 2009년인 올해까지 네 해에 걸쳐 아주 더디게 읽는 한편, 읽은 대목을 다시 읽고 또 읽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죽 한 번 읽은 뒤 새로 한 번 더 읽을 수 있지만, 이 책만큼은 더디게 읽는 가운데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읽고 또 읽고를 되풀이합니다. 이렇게 읽는 재미가 한결 새삼스럽고 남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자전거로 출퇴근’ 하는 사람이 제법 늘었다는데, 자전거 출퇴근과 함께 ‘삶을 통째로 바꾸기’를 했다는 사람은 아직 얼마 못 봅니다. 그나마 도시에 사는 여느 사람이 할 만한 ‘삶 바꾸기’ 가운데 자전거 출퇴근이 가장 손쉬우면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곤 합니다. ‘1회용품 안 쓰기’와 ‘가공식품 안 먹기’ 따위는 몹시 힘든 일인가 싶어 안타깝습니다.

저는 냉장고와 세탁기를 비롯해 텔레비전과 비디오와 전자레인지며 가전제품을 안 씁니다. 집에서 쓰는 전기제품은 셈틀과 전등과 손전화 세 가지입니다. 아주 많은 분들께서는 어떻게 세탁기를 안 쓰느냐고, 적어도 냉장고는 써야 하지 않느냐고 여쭙니다만, 튼튼한 두 손이 있고 손빨래하는 재미가 대단히 큰데, 한낱 기계한테 빨래하는 즐거움을 빼앗길 수 없을 뿐더러, 제가 아끼는 옷을 제 손이 아닌 기계한테 맡길 수 없습니다. 그때그때 가장 싱싱한 먹을거리를 생협 나들이로 장만해 먹으면서 제 몸을 살찌우는 한편 제 혀를 즐겁게 하는 밥을 차려 먹는 즐거움이 몹시 큽니다.

철없을 뿐더러 철지난 데다가 갖은 풀약과 항생제와 비료를 뒤집어쓴 먹을거리 들을 냉장고에 가두어 놓고서 배를 채울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저와 옆지기한테도 그렇지만, 우리 둘이 키우는 아이한테도 그렇습니다. 아기 기저귀와 옷가지를 날마다 수없이 빨아대는 일은 시간이며 품이며 몹시 많이 드는 일이나, 이렇게 시간이며 품을 들이는 가운데 아이사랑을 온몸으로 배우고 온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자주자주 생협 나들이를 하면서 도시살림임에도 우리 손까지 들어오는 먹을거리를 늘 되돌아보게 되고, 허튼 밥을 먹지 않는 일은 우리 몸과 함께 우리 땅과 우리 이웃 모두를 살리는 길이 됨을 느낍니다.

이제 네 해 만에 <즐거운 불편>을 덮으며, 이 책은 저와 옆지기와 아이가 모두 읽는 책이 되겠다고 느낍니다. 먼 뒷날 아이가 자라 이 책을 읽으며 ‘우리 집에서는 이런저런 일을 똑같이 하고 있었네, 이런저런 일은 우리 집에서 아직 못하고 있었네.’ 하고 느끼면서 ‘그러면 나는 무얼 하면 좋을까’를 생각하리라 믿습니다. ‘불편’이란 우리 삶을 고달프게 하는 걸림돌이 아니라 우리 삶을 한결 즐겁게 살찌우는 밑거름임을 돌아보리라 믿습니다.

기계힘을 빌지 않고 손힘을 쓰면서 꾸리는 삶이란 ‘도시물질문명’을 거스르는 뒷걸음이 아니라, 도시이고 시골이고를 넘어 사람이 사람됨을 고이 가꾸면서 아름다워지는 길임을 깨달으리라 믿습니다. 엄마 아빠가 왜 책 하나를 여러 해를 두고 차근차근 읽고 새기는가를 곱씹으며, 책이란 자기 삶에 어떻게 스미며 녹아드는가를 헤아려 보리라 믿습니다.


최종규 1인 잡지 <우리 말과 헌책방> 내는 사람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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