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생선을 굽듯이

[시론] 손혁재l승인2009.03.19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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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취임 1주년이 지났다. 이런 저런 주제로 지난 1년을 되돌아보는 토론회들이 열렸고, 여론조사도 많이 실시되었다. 전문가들은 물론이고 여론조사 결과 드러난 국민들의 평가도 대체적으로 부정적이었다.

인수위원회 시절의 '어린쥐' 파동부터 강부자·고소영 내각, 광우병 우려가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100만 촛불, 역사교과서 강제 수정, 4대강 정비라고 포장한 대운하 추진, 입법전쟁, 그리고 용산참사로 이어진 지난 1년. 그러나 무엇보다도 5년 만에 취업자수 감소, 10년 만에 경상수지 적자, 수출감소폭 7년 만에 최대라는 경제위기가 부정적 평가의 근거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4년이 남았다. 지금부터라도 잘한다면 앞으로 4년 동안은 국민의 박수와 격려만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이명박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아마도 소통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국민이 대통령에게, 그리고 한나라당에게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는 게 급선무다. 지난해 100만 촛불 앞에서 이 대통령은 소통의 부족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뒤로도 소통은 여전히 부족했다. 국민과의 소통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소속정당인 한나라당과도, 박근혜 의원 측과의 소통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난 2월 이명박 대통령은 <워낭소리>란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았다. 아마도 개봉 7주 만에 관객 200만을 모으고, 열 몇 개에 지나지 않던 스크린이 200개를 넘겨 기적이라는 평가까지 받으며 단연 주목받는 영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는 사람들이 많던데 이명박 대통령은 <워낭소리>를 어떻게 보았을지 궁금하다.

영화를 보면 워낭소리나 소 울음소리만 들어도 할아버지의 눈이 반짝이는 장면이 나온다. 소와 할아버지가 서로 의사가 통하는 순간이다. 요즘 유행어로 말하면 말 못하는 소와 할아버지 사이에 소통이 이뤄지는 것이다. 그런데 왜 같은 말을 쓰면서도 정치권,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과 소통하지 못하는 것인지 정말 안타까울 뿐이다.

소통을 하지 않는다면 연말연시의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던 입법전쟁은 지난 2월에 이어 앞으로도 계속 되풀이될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런 점은 여야가 날카롭게 맞섰던 사안인 언론관계법을 논의할 사회적 논의기구를 만든 것이다. 회의론도 많지만 아무쪼록 사회적 논의기구가 입법전쟁에서 ‘얼음잔’(ice glass)의 구실을 했으면 좋겠다.

얼음잔이란 신용카드를 물 잔에 집어넣어 냉동실에 얼리는 걸 말하는데 카드를 덜 쓰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한다. 그렇게 하면 뭔가를 사고 싶어도 얼음이 다 녹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얼음이 녹을 때쯤 되면 구매충동이 많이 가라앉기 때문에 카드소비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얼음잔을 빨리 녹이기 위해서 전자렌지에 돌리면 신용카드의 마그네틱이 다 망가지기 때문에 참고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언론관계법을 충분히 논의하기에는 100일이 그다지 긴 시간은 아니겠지만 사회적 논의기구가 여야 충돌, 국민과 대통령의 충돌을 막는 얼음잔의 구실을 했으면 좋겠다.

이 대통령이 소통하지 못하는 까닭 가운데 하나는 속도전이라는 강박관념 때문인 것 같다. 추진력이 강하고 가시적인 성과를 선호하는 이 대통령은 속도를 중시한다. 그러나 정치는 속도전으로 밀어붙여서 될 일이 아니다. 용산참사도 속도전의 불행한 결과일 것이다. 막무가내재개발로 개발이익 챙기려는 재벌의 '욕망'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철거민농성을 박살내려는 경찰의 '욕망'이 어우러져 벌인 속도전이 여섯 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노자는 정치를 작은 생선 굽듯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너무 센 불로 구우면 밑은 누렇게 붙어서 까맣게 타고 급히 뒤집으면 살점이 다 떨어져 나가 모양이 흐트러져 버린다고. 약한 불에 서서히 구워야 노릇노릇 구워지고 뒤집을 때도 모양을 유지하고 가볍게 뒤집어진다는 것이다. 산업현장에서 잔뼈가 굵어 속도전에 익숙한 이 대통령은 더디 가더라도 함께 가는 것이 정치라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막스 베버는 정치인을 '정치를 위해 사는 사람'과 '정치에 의해 사는 사람' 두 부류로 나눴다. ‘정치를 위해 사는 사람’은 정치를 삶의 목적으로 선택한 정치인들을 말하고, ‘정치에 의해 사는 사람’은 정치를 삶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정치꾼들을 말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가슴을 열고 국민과 소통하며, 국민과 보조를 맞추어 천천히 걸어야 할 것이다.


손혁재 경기대 교수

손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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