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가 끝나고 함께 점심을 하기로 했다. 내 앞자리에 인도네시아에서 온 여성 대표 2명이 마주 앉았다. 모두 10여년을 한국에서 살아온 고참들이다. 이들은 인도네시아 국어인 '바하사'를 쓰지 않고 한국어로 자녀교육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10여년을 넘게 한국에 살다보니 한국말이 더 편하다고 한다. 남녀 쌍둥이를 낳은 젊은 엄마가 옆에 앉은 두 아이를 갖은 스리랑카에서 온 아주머니에게 하나를 더 낳으면 정부에서 지원을 해준다고 셋째 아이를 낳자고 성화다. 그러자 낳기만 하면 뭐하냐, 키우면서 드는 돈은 생각안하냐고 핀잔을 준다.
이들의 수다에 여행학교를 돕는 젊은 여성 자원활동가들은 말 한번 못 붙인다. 그래도 난 자원활동가들이 고맙다. 대학생과 직장인들로 구성된 자원활동가 그룹 '아싸브이'팀 30여명은 거의 매주 한 번씩 모여서 역할도 나누고, 춤도 개발하면서 참 재미있게 일을 한다.
이들 중에 한 학생운동가 출신의 말을 빌리면, 요즘에는 학생운동은 점차 시들고 시민사회단체에서 자원활동을 하는 것이 대세란다. 자신들의 이력을 다양하게 쌓기도 하고 여러 단체 경험을 통해 실전을 익히는 것이 취업에도 도움이 되고,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이유야 어떻든 지금 이들은 자신이 아닌 이웃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쪼개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초에 용산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에 우리 모두는 마음 아파하고 있다. 용산참사 현장에서 조문을 하면서 나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인 선택을 다시금 생각했다. 마침 아시아에서 주거환경 개선프로그램을 함께 논의하는 모임이 태국에서 있었다. 한국이 소위 선진국 대열에 있다고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가난한 이들이 많으며 비닐 하우스촌에는 공중화장실이 제대로 없어서 주민들이 불편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습기 차고 화재위험이 많은 비닐 하우스촌에서 누가 살고 싶어서 살겠는가. 어쩔 수 없는 막장에 누울 자리를 선택한 이웃들에게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곳에 참석한 10여개 아시아국가 시민사회단체들은 관심과 지원 의사를 나타냈다.
우리가 제안한 것은 비닐하우스 촌 주민들이 필요하다는 공중화장실을 지을 수 있는 자금을 지원하고 비용을 점차 갚으면 다시 옆 동네에 필요한 공공사업에 쓰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가난한 주민들이 마을에 공공시설을 만들기 위해 모임을 하고, 사업에 소요된 비용을 장기적으로 갚는 일이 자립의 힘을 키우는 과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마을 공공사업 프로젝트는 아시아 10여개국에서 올해부터 진행될 예정이다.
필리핀에는 한국의 ODA(정부개발원조) 지원프로젝트로 인해 수만명이 강제이주를 해야하는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 이주 정착지 중에는 마닐라시내에서 3시간 떨어진 '카부야오'가 있다. 국내언론에도 소개되어 잘 알려진 이 동네에는 1만여세대 5만여명이 쓰레기 더미, 허허벌판에서 정착하며 살아야했다. 아이들은 피부병으로 고생했고, 병원이 없어서 열병에 10여명의 아이들이 죽었다.
이후 초등학교와 고등학교가 각각 세워졌지만 부모들이 일자리를 잃으면서 아이들은 밥 한덩이와 바나나 한 개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영양실조로 집중력이 떨어진 아이들이 한달에도 수십여명씩 학교를 그만두었다.
다행히 한국의 한 재단의 지원을 받아 아이들을 위한 급식 프로그램을 하기로 했다. 이웃을 돕지만, 그 방법이 단순 구호사업이 아닌 주민들의 자립을 먼저 생각했다. 지역 주민들에게 '아이들 급식 방법으로 첫번째는 패스트 푸드점에서 식사를 사오는 방법이 있고, 또 하나는 여러분들이 식당을 열면 여러분들에게 점심을 구입해서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방법이 있습니다. 어떤 방법을 선택하시겠어요?' 라고 물었다. 주민들은 식당을 열고 자립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고, 올해 초에 식당이 개업되었다.
미국에 유명한 필 박사가 ‘가족이 먼저다’(Family First)라는 캠페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줬다고 한다. 물론 가족이 무엇보다 우선임에 틀림이 없다. 동시에 우리 가난한 이웃이 소중함으로 이웃을 서로 돌봐주는 마음(Neighborhood First)를 함께 만들 때 가난한 우리 이웃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우리 경제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 생각한다.
나효우 아시안브릿지 운영위원장
나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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