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결과 자체는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낮은 투표율에다가 중앙정치의 이슈가 주도한 선거분위기가 악재로 작용했고, 후보에 대한 민주당의 네거티브 공세 때문에 힘든 선거가 되었다. 또한 주체들의 준비부족, 역량부족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필자도 포함된 이야기이다. 필자는 평소에 지방선거에의 참여 필요성을 주장해 왔던 사람이다. 시흥시장 선거에서도 시민사회와 진보정당의 연대에 의한 독자후보 출마를 지지했던 사람이고, 시민사회와 풀뿌리운동가들의 지지선언을 제안했던 사람이다. 따라서 필자 스스로 비판과 평가, 반성의 몫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다. 아직 시흥지역에서도 평가가 진행 중에 있지만, 이번 선거와 관련해서 비판받을 부분이 있으면 달게 받겠다.
한편 필자가 이번 선거를 통해 생각한 점들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다. 우선 시흥시장 보궐선거에서 시민사회와 진보정당이 힘을 모아 선거에 대응한 것은 의미있는 시도였다고 본다. 시민사회는 정치적 중립성의 신화(?)에서 벗어나서 보다 적극적인 참여의 필요성에 공감했고, 진보정당은 큰 틀의 연대를 위해 스스로 후보를 내지 않고 무소속 후보를 지지하는 용단을 내렸다. 이런 연대의 시도는 앞으로도 이어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두 번째는 민주당을 어떻게 볼 것인가란 문제에 대해 치열한 토론과 정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이 문제에 대해서는 시민운동 내에서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 이 문제에 대해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선거에서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한다. 민주당과 단일화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안팎에서 논란에 휩싸이기 쉽기 때문이다. 이번 시흥시장 보궐선거의 과정에서도 그런 모습들이 나타났다.
필자는 지금의 민주당이라는 정당과는 최소한 지방선거에서는 연대하기 어렵겠다고 생각한다. 이번 시흥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은 처음에는 부패에 연루된 인사를 공천했다가 갑자기 후보를 바꾸는 행태를 보였다. 스스로 운동권(?) 출신이라고 주장하는 바뀐 후보의 공약을 보면 개발정책 일색이다. 한나라당과의 차별성이 무엇인지도 분명하지 않은 정책으로 조직선거를 통해 당선되는 것이 우리의 지역정치, 더 나아가 정치전반에 무슨 희망을 던져줄 수 있는가? 그리고 지역토호세력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한 민주당과 어떻게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수 있는가? 그래서 지금의 민주당이라는 정당과는 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지역별로 민주당조직의 성격에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또한 민주당이 근본적인 혁신을 한다면 문제가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민주당을 전체적으로 보면, 혁신의 의지도 능력도 없고, 잡다한 성향들이 뒤섞여 있는 정체성이 불분명한 집단일 뿐이다.
세 번째는 ‘시민후보’라는 방식에 대해 냉철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방자치 부활 이후에 여러 지역에서 ‘시민후보’라는 타이틀로 시민사회 출신의 후보가 출마한 경험들이 있다. 굳이 ‘시민후보’라는 타이틀을 쓴 이유는 시민운동, 시민단체와 연결된 후보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은 시민운동에 대해 높은 신뢰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 영향으로 ‘시민’후보라는 것도 별로 호소력이 없는 브랜드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보다 자기지향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유권자들에게 정치적 비전을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정치적 시도가 성공하려면 기득권 미디어를 뛰어넘을 수 있는 기획과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중앙 미디어들은 친이-친박, 민주당-정동영과 같은 흥미성 이슈들을 중심으로 선거보도를 이어나가며 유권자들의 관심을 매우 좁은 시야에 갇히게 했다. 따라서 새로운 정치적 시도가 기존 미디어에 의해 제대로 다뤄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런 기존 미디어를 극복할 수 있는 전략이 없이는 새로운 정치적 시도가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어쨌든 이번 시흥시장 선거를 통해 필자 스스로 배우고 느끼고 반성한 점들이 많았다. 그리고 시흥에서 수고하신 여러 분들,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지선언까지 하신 시민사회와 지역의 여러 분들께 정치변화를 갈망하는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오늘의 쓴 경험이 내일의 약이 되고, 오늘의 실패가 내일의 거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하승수 제주대 법대 교수
하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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