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사마’와 5차 사법파동

[편집인 레터] 김주언l승인2009.05.25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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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에 대한 신뢰회복을 위해서는 신영철 대법관의 용기와 희생이 필요하다."(의정부지법 단독판사회의) “재판의 공정성을 침해한 신영철 대법관의 직무 수행을 신뢰하기 어렵다.”(광주지법 단독판사회의) “신영철 대법관의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인천지법 단독판사회의) “신영철 대법관의 행위가 헌법이 보장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중대하게 침해했다.”(대전고법 배석판사회의) "신영철 대법관이 사법부의 최종심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광주고법 배석판사회의)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에 대해 판사회의에서 내린 결론들이다. 지방법원에 이어 고등법원 판사들까지 신 대법관의 ‘부적절한’ 행태를 질타하고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판사들은 "이번 사태로 침해된 재판권 독립과 사법부 신뢰회복에 미흡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신 대법관이 더 이상 대법관으로 일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신 대법관은 사과문 한 장만 내놓고 버티기로 일관한다. ‘버티기’에는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한 정황이 있다. 그래서 그에게 누리꾼들은 ‘묵사마’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신 대법관은 누구인가. 그는 촛불재판 배당 몰아주기도 모자라 판사 12명에게 비밀 이메일과 전화로 압력을 넣어 사법부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훼손했다. 재판독립 침해와 정치법관의 상징이 된 인물이다. 신 대법관이 내준 것은 대법관 자리보다 훨씬 크다. 그는 사법부의 자율성을 헌납하고 정치권의 입김이 재판에 작용할 수 있도록 했다. 촛불재판을 받던 피고인들이 신 대법관에 대한 재판기피 신청을 한 것은 당연하다. 이제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사법 처리된 사람들은 신 대법관을 기피할 것이다. 이번 사태는 신 대법관 개인문제로 끝날 일이 아니다. 그를 비호하는 사법부를 국민이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재야 법조계도 반발하고 나섰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대법원장은 판사들이 행동에 나선 절박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대법원장은 신 대법관과 조직을 지키는 데 급급해 법원의 신뢰를 악화시킨 데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한변호사협회도 "대법원장이 신 대법관에 대해 경고 및 유감을 표명한 것을 보고 착잡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며 "신 대법관은 스스로 거취를 결정함으로써 법원의 신뢰와 권위가 회복될 수 있도록 도와야한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들은 신 대법관이 사퇴하지 않을 경우 직접적인 국민행동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민생민주국민회의 등 시민단체들은 3월 이후 4번째 기자회견에서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검-경에 이어 법원마저 현실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고 말 것인가”라고 지적하고 “제 식구 감싸기, 면죄부 주기로 국민을 기만하고 실망시킨 사법부의 사죄와 정치법관 신영철의 즉각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누리꾼들은 다음 아고라에서 신대법관 사퇴 청원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과거 사법파동과 한 치의 차이도 없다. 정치권력의 부당한 압력에서 서 벗어나 얼마나 자유롭게 재판을 진행할 수 있느냐를 가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사법부 독립의 문제다.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 회복을 잴 수 있는 가늠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박시환 대법관은 이번 사태를 ‘제5차 사법파동’이라고 부른다. 박 대법관은 “독재 정권 시절의 재판개입 유산을 단절하지 못해 생긴 일”이라고 지적했다. 젊은 판사들의 부르짖음은 이명박 정부가 30년 전 독재시절로 되돌아갔다는 반증일 것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취임한 이용훈 대법원장은 정치권력의 압력에 따라 이뤄졌던 정치적 판결에 대해 반성했다. 신영철 대법관이 보여준 것과 같은 행태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러나 이번 파동을 보면서 이 대법원장의 과거사 반성은 허언에 그친 것은 아닐까 의아심이 든다. 무너져 내린 법관들의 자긍심과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신 대법관이 자진 사퇴하는 길밖에 없다. 신 대법관은 개인의 알량한 자존심과 명예 보다도 사법부의 독립과 신뢰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번 기회에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사법부 개혁이 필요하다. 사법부내 관료적 위계질서를 타파하고 헌법에 보장된 재판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확립하기 위한 법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특히 법관 인사제도의 근본적인 변화가 절실하다. “법원장이 판사를 평정하는 인사 및 승진 제도를 바꾸고 대법관을 승진으로 이해하는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현재 방식에서는 판사들이 길들여진다. 길들여진 판사들은 판결도 길들여지고 재판이 천편일률화한다. 주류의 가치관만 담고 소수를 보호할 수 없게 된다.” 박시환 대법관의 지적이다.


김주언 편집인

김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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