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투표제와 아전인수 셈법

[강상헌 칼럼] 강상헌l승인2009.06.0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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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민주당 김종률 의원이 각종 선거의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지하철역 터미널 등 다중통행장소에 투표소를 설치하자는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률안은 통합선거인명부 도입 운용의 근거규정 마련, 면적이 넓은 도농복합선거구의 투표소 추가 설치 등의 내용도 담았다고 한다.

투표를 많이 하도록 하여 선출직 공직자들의 대표성을 높이자는 생각은 중요하다. 저조한 투표율을 생각하면 ‘과연 저 인물이 시민의 대표인가’, ‘저런 이들의 집합을 국민의 대의(代議)기관으로 여길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투표를 잘 안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던지 간에 투표율은 높여야 한다. 심지어 투표와 선거는 민주주의와 동의어가 아닌가.

그러나 이번 발의된 법률안은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핵심을 비끼고 있기 때문으로 필자는 판단한다. 쉽게 투표소를 찾을 수 있도록 편의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낮은 투표율이 투표소를 가기 어려워서, 편의성이 낮아서만 생긴 결과였을까?

왜 유권자의 책임은 묻지 않는가? ‘기권할 자유’라는 얘기도 들린다. 낮은 투표율 자체가 의사표시라고 냉소하는 이도 있다. 대세(大勢)에 영향을 못 주는 내 한 표 정도야 없어도 그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많겠다.

지난 대선(2007년) 63%, 총선(2008년) 46% 투표율 수치는 그 전의 선거에 비해 낮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총선에서 30%대의 투표율을 보이는 곳이 20여개 소에 이른다. 최근 들어 벌어지고 있는 교육감선거의 경우 15~20% 정도의 투표율을 보였다.

예상은 더 악화되는 방향이다. 가령 35% 투표율에 35% 득표한 당선자라면 유권자의 12.3%의 지지를 얻은 셈이다. 100명 중 12명의 지지로 ‘대표’가 되다니, 좀 많이 아쉽다 생각되지 않는가?

선거(투표)는 시민의 권리이면서 의무다.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전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기권의 자유라는 ‘주장’도 일리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최선이 없다면 차선(次善)을 고르고, 모두 나쁘다면 그 중 덜 나쁜 쪽을 고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영국 정치가 윈스턴 처칠의 얘기지만, 더 설명할 필요가 없는 원칙론일 터다.

중앙선관위은 매번 선거가 끝나면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장치를 만들자는 의무투표제에 관련한 의견을 국회에 낸다. 필요성에 대한 공감은 크다. 그러나 정작 국회에서는 메아리가 없다. 이번 법률안 발의는 이런 생각의 틀에서 보면 좀 뜬금없는 것이다.

저조한 투표율, 물론 시민으로 하여금 정치를 허망하게 바라보게 한 정치가들의 소행이 이제까지 쌓여온 결과도 그 탓의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그 정치를 고칠 유일한 시민의 의사표시 수단인 투표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망발이다. 이런 저조한 투표율로 나타나는 시민의 정치의식 부재 또는 왜곡은 치료가 필요한 정도라고 느껴진다.

투표를 하지 않으면 벌금이나 사회봉사를 부과하기도 하고, 불참의 이유를 적은 사유서를 제출하게 하는 나라도 있다. 몇 번 연신 투표하지 않으면 선거권에 제한을 두는 나라도 있다. 20여개 나라가 이런 식의 제도를 채택한다. 벌금 액수 등은 심리적 부담을 주는 정도지만 효과는 ‘만점’이란다. 30% 정도 투표율이 의무투표제 이후 90% 정도까지 높아졌다고 한다.

매번 투표에 참가하지 않는 사람들은 대개 의무투표제를 반대할 것이다. 이런 생각 또는 ‘그럴 것’이라는 개연성을 ‘여론’이라고 포장하여 의무투표제 관련 논의를 은근히 막는 분위기가 국회에 없지 않다는 말도 들린다.

의무투표제로 새롭게 투표에 참여하게 될 유권자들이 대개 젊은 층일 것이며 이 계층은 ‘바꿔보자’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현재 국회의원인 자신의 차기 당선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셈법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이제까지처럼 낮은 투표율의 선거라면 보수 성향의 노장층의 영향력이 커서 자신에게 유리할 것이며 자신의 지지기반 구성이 다양하더라도 자신을 뽑아준 현재의 유권자 층을 일부러 나서서 뒤집을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 수상한 세월에 한가한 얘기라고 타박하실 이도 있겠지만 비중 있는 야당의원이 대표발의한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 소식에 소회를 적어 보았다.

유권자의 책임을 묻기가 황공해서 정공법(正攻法)인 의무투표제를 피하는 것인가? 필요하다면 (일부)유권자에게 구박을 받을 법안도 내놓아야 한다. 의무투표제의 필요성에 견주면 투표소 가는 길을 편하게 하는 일쯤은 변죽을 울리는 것에 불과할 터다. 누가 제 발등 찍을 일을 스스로 할 것인가, 역사는 그를 기억한다.


강상헌 논설위원

강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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