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게임이다”-비트겐슈타인(2)

철학여행까페[74]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l승인2009.07.2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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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은 전쟁이 끝난 후 톨스토이의 가르침에 따라 검소하고 소박한 생활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누이들과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 버렸다. 그리고 그는 1920년부터 1926년까지 오스트리아 남부 산골 마을로 가서 교사가 되었다.

이동희
비트겐슈타인

그는 가구가 없는 아주 작은 방에서 기거했다. 그는 철학자로서 보다는 기술 엔지니어로서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시골 공장의 증기기관이나 주부들의 재봉틀을 고쳐 주기도 했고, 학교에서는 새로운 학습방법을 실험하기도 했다.

톨스토이를 따라 검소한 생활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서 존경을 받았지만 동료 교사들과 사이는 좋지 않았다. 그는 결국 교사직을 포기하고 잠시 수도원에서 보조 정원사로 일을 했다. 이때 그의 잠자리는 연장을 보관하는 헛간이었다고 한다.

정원사 일을 그만 둔 후 그는 건축 양식에 관심을 가졌다. 2년 동안 그는 누이를 위해 초현대식의 건축방식을 도입한 집을 설계 했다. 집의 외관은 화려한 장식이 없이 실용적으로 설계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집을 돌로 된 <논리 철학 논고>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 사이 <논리 철학 논고>는 국제적인 고전이 되었다. 비인 대학교의 철학교수인 모리츠 슐리크(Moritz Schlick)와루돌프 카르납(Rudolf Carnap) 등이 그를 찾아와 철학을 다시 토론하기 시작했다.

슐리크와 카르납은 빈 학파의 주도적인 인물들이었다. 빈 학파는 20세기 철학적 사조인 논리실증주의의 요람이었다. 논리실증주의는 경험적으로 검증가능하거나 수학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정확한 형식을 가진 언표만을 진리로 받아 들였다. 빈 학파의 사람들은 <논리 철학 논고>를 새로운 ‘과학’ 철학의 성서로 여겼다.

비트겐슈타인은 1929년에 연구학생 신분으로 캠브리지에 되돌아 왔다. 이미 출간된 <논리 철학 논고>가 박사학위논문으로 제출되었다. 러셀과 무어가 구술시험을 보았다. 비트겐슈타인은 학위를 받은 뒤 캠브리지의 특별 연구원으로 강의를 했다.

그의 강의는 긴장도가 높았다. 강의라기보다는 학생들과의 대화에 가까웠다. 팔걸이가 있는 수수한 의자에 앉아서 그는 원고나 노트 없이 학생들에게 철학적 문제들에 대해 계속 질문을 해 댔다. 그 질문은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다. 그는 그러한 질문에 대해 대답이 떠오르지 않거나 대답이 시원찮으면 이렇게 학생들에게 말하곤 했다.

“나는 오늘 정말로 멍청하다. 자네들은 멍청이 선생을 두었네.”

그는 극도의 진지함과 최고조로 긴장된 집중력을 발휘해가면서 강의를 해 나갔기에 아주 강력한 정신적 압박을 느꼈다. 그는 강의가 끝나면 곧장 극장으로 달려가 정신적 압박을 해소하곤 했다.

그는 영화를 보면서 철학의 문제들을 잊어버리고자 했다. 그는 영화관 앞자리에 앉아 파이를 먹으면서 서부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리고 탐정 소설도 즐겨 읽었다. 캠브리지에서도 그의 생활은 변함없이 매우 검소했고 소박했다. 그의 방에는 안락의자나 독서용 전등도 없었으며 벽에는 그림 한 점 걸려 있지 않았다. 그런 방에서 그는 마치 금욕적인 수도승처럼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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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이 설계한 집

그는 강의실에서 새로운 철학적 문제들과 씨름하고 있었다. 학생들의 입을 통해 그가 <논리 철학 논고>와 다른 철학을 발전시키고 있다는 소문이 흘러 나왔다. 1933~1934년에 그가 행한 강의는 사유와 의미, 감각과 상상, 실재론과 관념론과 유아론에 대한 설명들을 담고 있었다.

학생들은 이 강의노트를 프린트해돌려 보기 시작했다. 이 책은 <파란 책>(the Blue Book)으로 사후에 출간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은 그 다음 해에 언어와 게임의 비교 등을 담은 강의를 했다. 이 때 그가 마련한강의 노트도 그의 사후에 <갈색 책>(the Brown Book>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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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프가 그린 비트겐슈타인의 누이
그는 캠브리지에서 지내다 1936년에 노르웨이에 1년간 체류하면서 <철학적 탐구>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철학적 탐구>에 담긴 내용들은 이미 강의에서 논의되었던 것들이다. <철학적 탐구>는 사후에 출간되었지만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책이다.

그는 <논리 철학 논고>에서 철학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저서인 <논리 철학 논고>에 의심을 갖게 된다. 그는 요소명제의 참도 확신을 하지 못했다. 더 나아가 그림 이론도 문제로 삼았다. <철학적 탐구>에서 그는 모든 언어적 표현은 그것이 놓여 있는 행위 맥락에 따라 좌우된다는 확신에 이른다.

“하나의 낱말이 어떻게 적용될는지 알아챌 수가 없다. 사람들은 낱말의 사용을 눈여겨보고 그것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철학적 탐구>에서 언어는 도구 혹은 게임에 비유된다. <논리 철학 논고>에서 언어는 세계에 대응하는 것으로 이해되었고, 언어의 본질은 세계의 사태를 지시하는 지시적 기능에 국한되었다. 그러나 <철학적 탐구>는 언어는 구체적인 맥락에서 그 의미가 드러나는 것으로 파악한다.

“교수생활은 살아있는 죽음”

언어는 다양한 기능과 쓰임을 가진 것으로 이해된다. 언어의 본질이란 없으며 중요한 것은 언어가 쓰이는 문맥이다. 언어는 일종의 게임과 같이 규칙을 따른다. 게임이 일정한 규칙에 지배를 받듯이 언어도 일정한 규칙에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철학적 탐구>에서는 일상 언어의 분석이 중요하다. 이러한 <철학적 탐구>의 언어적 관점은 라일, 오스틴 등으로 대표되는 일상언어학파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1939년에 그는 무어의 후계자로서 케임브리지 대학의 정교수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교수직을 맡기 전에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그는 다시 자원을 했다. 처음에는 병원에서 환자 수송요원이 되었다가 나중에서는 의학연구소의 실험실 조수가 된다. 그는 전쟁이 끝난 후 캠브리지 대학으로 다시 돌아와 교수직을 맡았다.

그러나 교수직을 2년 만에 그만 두고 만다. 그는 교수생활을 ‘살아 있는 죽음’이라고 묘사했다. 이제 그는 연구에만 헌신한다. 그는 캠브리지를 떠나 아일랜드의 한적한 농장에서 지내다 갈웨이의 해변가 오두막집에서 살았다. 어부들은 그가 새를 잘 훈련시켰다고 한다. 그는 더블린에서 1948년 <철학적 탐구>를 완성하였다.

이동희
학생들과 함께한 비트겐슈타인
언어를 철학의 중심으로


비트겐슈타인은 1949년 미국으로 여행을 가 코넬대학교의 제자 말콤을 방문했다. 그는 미국여행에서 영국으로 돌아 왔을 때 자신이 불치의 암에 걸렸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생애 마지막 2년 동안 옥스퍼드와 캠브리지의 친구들과 함께 마지막 힘을 다해 철학 작업에 매달렸다. 그가 마지막에 쓴 책은 1969년에 <확실성>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은 20세기 철학이 ‘언어적 전환’을 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다. 칸트가 인간의 확실한 인식을 규기 위해 인식 비판을 행했다면 그는 의미에 관한 물음을 언어라는 매개체에 관한 물음을 통해 제기하였다. 이제 언어는 ‘철학’의 중심문제가 된다.

비트겐슈타인은 1951년 4월 29일 그의 의사 베번의 집에서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아주 멋진 삶을 살았다고 말해 주시오.”

<비트겐슈타인 편 끝>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구스타프 슈바브 그리스로마신화\' 역자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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