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계의 반대로 여성부 폐지가 좌초되긴 했지만 현재 여성부는 가까스로 명맥만 유지하고 있고 존재감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정책의 문외한인 인사를 여성부 장관으로 임명하는 것은 여성부를 무력화하고 정체성을 훼손시키고자 하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내정 철회를 요구하는 여성단체의 의견은 무시되었지만 국회 청문회에서 철저한 검증을 통해 국민의 여론에 호소하는 길 밖에 없었다.
9월 18일 국회 여성위원회에서는 백희영 여성부 장관 후보 청문회가 열렸다. 청문회가 열리기 전 회의실 앞에서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들이 백희영 후보자 임명을 반대하는 손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벌였다. 반대 이유는 간단했다. 백희영 후보자는 영양학 분야의 전문가이지 성평등 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경력과 전문성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특히 여성부는 우리 사회의 성차별 관행과 가치관, 제도 등을 변화시켜야 하는 책무를 지닌 부서로서 장관의 뚜렷한 철학과 소신이 무엇보다 중요한 부서이다. 이런 우려 속에서 장관 청문회를 지켜본 여성단체 활동가들은 백희영 후보가 전문성 결여 뿐 아니라 도덕성에서도 많은 의혹이 드러나는 것을 보면서 장관으로 임명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첫째, 백희영 후보는 각 부처의 여성정책을 총괄하고 조정할 수 있는 리더십과 전문성이 전무하다. 여성부가 추진하는 각종 정책 현안에 대해 ‘업무보고를 통해 들었다’거나 ‘더 알아보고 대답하겠다’는 답변만 되풀이할 뿐, 정작 본인이 알고 있는 내용은 거의 없었다. 특히 혼인빙자간음죄 및 간통죄, 군가산점의 위헌성에 대해서 이미 여성부가 인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의견을 말할 수 없다’는 식의 무성의한 답변으로 일관했으며, 국가인권위 축소에 대한 질의도 ‘내가 대답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회피함으로써 ‘인권’에 대한 철학을 의심케 했다.
둘째, 백희영 후보는 자신의 전문성과 여성부 업무를 연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는데 아마도 이는 여성부를 여성가족부로 확대하려는 계획과 연관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는 참여정부의 여성가족부를 여성부로 축소 개편한 것에 대한 반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가족업무가 복지부로 이관되었지만 새로운 시각에서 가족정책을 수립하지 못하고 잔여적 수준에서 가족업무가 수동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리고 가족업무가 다시 복지부에서 여성부로 이관된다면 새로운 시각에서 가족정책을 수립, 집행할 수 있는 인사가 여성가족부의 수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백희영 후보는 영양학의 권위자이다. 현재 가족문제의 핵심은 가족의 영양이 아니라 가족돌봄의 사회적 지원이 절대 부족하다는 점과 다양한 가족에 대한 맞춤형 지원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백희영 후보가 가족정책까지 총괄할 경우 여성문제를 가정 내 문제로 협소화하고, 성역할이 고정화되는 가족모델이 강화되는 것이 더 우려된다. 이는 백희영 후보가 그동안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어려웠다는 토로를 하면서 이를 사회적인 문제로 바라보는 인식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셋째, 여성지도자들의 강점인 도덕성 측면에서도 몇 가지 의혹이 제기되었다. 아들의 병역문제에 대해서 풀리지 않는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증빙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의혹만 키웠다. 현역으로 징병되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재심을 요구해 공익으로 근무했다는 것인데 이는 특권층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 병역비리 유형과 매우 유사하다. 그리고 살지도 않을 재개발 지역의 아파트를 여러 차례 구입한 후 팔았다는 질의가 나올 때는 아연실색했다. 일과 가정을 양립하느라 힘들었다는 토로는 편법과 투기까지 하느라 그랬던 것으로 보인다.
도덕성이라는 기본기를 갖고, 전문성과 소신이라는 개인기까지 갖춘 고위공직자가 출현하길 기다리는 것이 헛된 꿈인가. 너무 당연한 것이 너무 희귀한 세상이다.
이구경숙 한국여성단체연합 정책국장
이구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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