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볼까, 절망을 볼까

[시민운동 2.0] 최승섭l승인2009.10.19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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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이 열린 2000년.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당시 뉴스에서는 총선을 맞아 시민사회단체가 감행한 낙천낙선 운동이 끊이지 않고 보도됐다. 정치에 아무 관심도 없던 나로서도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았으니 사회적으로 미친 파장이 어느 정도였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최근 시민운동의 정치참여에 대한 논의가 다시 나오고 있다. 지원금 삭감, 시민단체 사찰, 진보지식인 퇴출 등 상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역사가 흘러간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리라. 낙천낙선 운동은 시민의 정치참여에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고 성과도 톡톡히 거뒀다. 그러나 실정법 위반, 정치중립성 논란, 보수세력의 결집화 등 시민운동의 발목을 잡았다는 평가 역시도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지난 8일부터 전남 강진에서 열린 전국시민운동가대회에서도 시민단체의 정치참여가 뜨거운 논쟁을 불러왔다. 내년 지방선거까지 남은 시간은 약 7개월. 촛불정국과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시민사회는 그야말로 제대로 헛발질 했다. 이 문제는 누구나 동의를 할테니 이쯤 한다치고,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다. 내년 지방선거는 앞으로의 우리사회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시험대다. 더불어 시민단체의 새로운 기회와 공멸의 지름길 둘 중 하나라는 데에는 많은 활동가들이 동의하는 듯하다.

언제부턴가 정치는 우리 삶과는 다른 영역으로 치부됐다. 정치투쟁, 정치 논쟁, 정치적 속셈 등 어감도 이상하게 변하고 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을 준비하던 사람에게서 느껴지던 정치적 순결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정치하겠다는 사람은 욕심 많은 사람으로 전락하는 현실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문국현 의원을 보자. 지난 대통령 선거를 운 좋게도 취재현장에서 가깝게 지켜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만해도 청렴, 성실의 대명사였고 대학생이 존경하는 인물에서도 상위권을 지키던 그가 이제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당시 현장에서 그에 대해 가장 많이 들리는 말은 “좋은 사람 한명 또 떠나간다”는 말이었다. 정치인을 취재하고 정치로 밥 먹고 사는 사람들조차 정치를 혐오하고 있었다.

얼마 전 보도된 대학생 의식조사를 보면 한비야, 안철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상위를 차지했다. 노 전대통령은 시기상 논외로 치고 1, 2위 모두 정치와는 철저히 경계를 긋고 활동하는 사람들의 차지가 되었다.

‘희망과 대안’이라는 정치조직의 출범을 앞둔 지금 시민사회의 눈은 대체로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의 시민운동가대회 마지막 날 강연에서도 그의 출마를 권유하거나 묻는 질문이 절반 정도를 차지했을 정도니 말이다.(박원순 이사는 ‘율도국’ 대통령이라면 생각 있다고 살짝 비껴갔다) 이제 지방정당 구성까지도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렸다. 여전히 많은 활동가들이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제 정치 참여는 시민운동의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그러나 그 논의를 보면서 딴 생각이 들었던 건 나뿐이었을까? 활동가 대회를 다녀 온 뒤 지인들에게 박원순 변호사의 출마에 대해 묻고 다녔다. 대다수의 답은 “나온다면 신선하고 기대도 되나 결국 그도 변할 것”이라는 말이었다.

내년 지방선거를 준비하기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주제넘게도 ‘20대 XXX론'의 당사자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이 민망함을 넘어 부끄럽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지금 대다수의 대중(최소한 20대는)은 정치에 아예 관심이 없다. 누구의 말대로 이미 우리는 국가의 최고지도자에 경영인을 선출했다.

흔히 20대의 보수화를 우려하지만 우리는 보수화되었다기 보다는 정치에 혐오를 느꼈다는 표현이 더욱 적절하다. 민주화된 정부에서 마음껏 정치를 욕할 수 있었고 또한 정치인들이 욕할꺼리를 무수히도 많이 제공해주었기에 정치에 대한 혐오는 더욱 심해졌다. 결국 대중의 혐오로 인해 정치는 점점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가고 있다. 앞선 조사에서 또 한가지 눈여겨볼 부분은 존경하는 외국인으로 ‘정치’ 지도자, 오바마 미국대통령이 뽑힌 사실이다. 한 친구는 외교부장관 반기문과 유엔총장 반기문은 느낌상 전혀 별개로 느껴진단다. 국내정치는 더 이상 존경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내년에 누가 당선되고 그 후에 누가 집권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정말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정치에 혐오를 느끼는 국민과 정치 사이의 간격을 줄이는 게 선행되어야 한다. 지금껏 진보가 받아온 공격 중 하나가 “대안을 제시하라”는 것이었다. 시민사회는 그 역할을 맡을 ‘희망과 대안’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7개월 후 우리는 대안을 통한 희망을 꿈꾸고 있을까, 대안조차 통하지 않는 절망을 보고 있을까?

최승섭 희망제작소 해피리포터

최승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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