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시간, 역사의 땅

[고춘식의 시상] 고춘식l승인2009.10.19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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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국가의 이름으로
피맺힌 절규를 <방치(放置)>하는
참으로 가당찮은 현실을 본다.

오늘 우리는,
<무관심>과 <무대응>이
이토록 잔악무도한 폭력이 되고 있는
참으로 믿어지지 않는 현장을 다시 목격한다.

9개월이 아니다.
269일이 아니다.
6,456시간이 아니다.
387,360분이 아니다.
23,241,600초?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그들이 비웃으며 방치한 시간들,
그 잔인한 시간들은 이미
매섭고 차디찬 비수(匕首)들이 되어
절망을 살고 있는 기가 막힌 가슴들을
샅샅이 저민다, 뒤적인다.
확인하면서 살점을 발라내고 있다.

대한민국의 현직 대통령은
269일, 그 터무니없는 세월 동안
눈썹 하나 까땍 않고
가난밖에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서 <나라>마저 빼앗아 버렸다.
<나라>를 빼앗긴지라 <국민>이 못 되는 <사람>들이
여기서 지금 통곡하고 있다.

무슨 큰 잘못을 했기에
아버지들의 온 몸이 불에 타고
남편들의 생명이 일망타진되고,
가난들이 초전박살을 당해야 했는지 아직도 모른다.

도대체 무엇이 아직도 모자라
이토록 잔인하고 철저하고 끈질긴 복수,
끝도 모를 모독으로 앙갚음을 당해야 하는지 모른다.
이 작고 가난한 절규 하나를 잠재우기 위해
갖가지 <국가> 권력 기관들이 똘똘똘똘 뭉쳐서
서로 자기들만 아는 눈짓을 하고 있는 그 이유를 모른다.
국가 총동원령을 내린 그 이유를 모른다.

아, 그러나 그 비겁과 야만의 시간이 길어진 그 세월에
새로운 시작들이 이곳에서 잉태되고 있으니 놀라워라.
새로운 역사들이 태동(胎動)하고 있으니 놀라워라.
새로운 광야의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으니 놀라워라.

가장 야만적인 살육이 자행된 이곳이
이제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그 야만이 범접하지 못하는 땅이 되었지 않은가.

온 국토, 온 산하, 온 국민의 가슴을
온통 거짓과 꼼수로 먹칠을 해대는 정권,
그러나 이곳만은 그 정권의 거짓과 위선이
감히 침범하지 못하는 땅이 되었지 않은가.

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방치한 이 땅에,
이 아스팔트 위에,
손가락으로 파서 새겨 놓은 <사람들>의 증언,
피 묻은 역사의 증거들이 선명하지 않은가.

민주, 인권과 자존과 사람다움을 새롭게 깨우치고
그 다짐들을 새겨 넣은 부르짖음이 뚜렷하지 않은가.

비겁투성이의 철면(鐵面)의 나라에서,
비굴 아니면 굴종을 선택해야 하는 부끄러운 나라에서,
유일하게 <인간>으로 숨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나니
그 누구도 오염(汚染)시키지 못할
성역(聖域)을 이루어 놓았지 않은가.

지금 여기는 <비인간>이 다스릴 수 없는 유일한 땅이다.
지금 여기는 저들만의 대한민국을 거부하는 유일한 땅이다.
권력자의 눈치를 보는 법(法)들이 들어올 수 없는 땅이다.

이곳은 더럽혀지고 처참해진 대한민국에서
오직 하나뿐인 지순(至純)한 영토가 되었으니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지금 이 269일의 <현장(現場)>은
국민과 생명과 인권과 가난을 무참히 모독하는 자들의
준열한 법정(法廷)이 되고 있지 않은가.
서슬 푸른 형장(刑場)이 되고 있지 않은가.

2009. 10. 15.




고춘식 전 한성여중 교장

고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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