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 앞 헌책방

책으로 보는 눈 [103] 최종규l승인2009.11.09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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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전>을 쓴 김규항 님은 천주교를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책 <예수전>에는 ‘하느님’이라고만 적고, <200주년 신약성서>를 판본으로 삼습니다. 김규항 님은 책 머리말에서 <200주년 신약성서>를 판본으로 삼은 까닭은 “이 성서에서만 예수가 반말을 하지 않기 때문(13쪽)”이라고 밝힙니다. 우리 나라에는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온갖 성경이 많이 나와 있는데, 참말로 이 가운데 ‘반말 안 쓰는’ 성경은 ‘한국 땅에 천주교가 들어온 지 이백 해를 기리는 해에 맞추어 새롭게 옮겨낸’ 성경 하나뿐입니다. 그런데 천주교 쪽에서도 이 책은 거의 안 쓰고 안 읽습니다. ‘새로 옮긴’ 성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늘 새로 옮긴 성경으로만 다루고 말하고 읽고 하지, ‘제대로 잘 옮긴’ 성경이라 할지라도 오래된 책은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래도, 제가 사는 동네에서 지난해까지 주임신부를 맡은 ㅂ신부님은 ‘다른 신부님들은 아무도 안 쓰는’ 판본이었으나 바로 이 <200주년 신약성서>로 미사를 올리고 강론을 하고 성경을 읽고 나누었습니다.

서울 마포구 염리동 큰길가에 아주 조그마한 헌책방이 하나 문을 열었습니다. 이제 꼭 두 달이 되었습니다. 간판에는 책방이름이 따로 적혀 있지 않으나 책방이름은 ‘유빈이네 책방’입니다. 좁은 자리에 마련한 헌책방인데 책꽂이를 ‘바퀴 달린 세 겹’으로 장만했습니다. 그야말로 마지막 빈틈까지 책꽂이이자 창고처럼 마련했다고 할까요. 이 놀라운 헌책방을 염리동 사람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궁금합니다. 누구보다 염리동에서 가장 가까운, 그러니까 이 헌책방 옆으로 고작 40미터쯤에 있는 전철역하고 가장 가까운 대학교인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은 몇이나 이곳을 알고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적어도 인문학을 하는 학생이거나 이 대학교 교수라 하는 분들은 이곳을 알아보고 찾아간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난 화요일, 몸살 기운이 가득하여 걷기도 어렵던 날 낮에 엉금엉금 기듯 ‘유빈이네 책방’을 찾아갑니다. 몸이 아프니 눈도 흐릿하여 책을 보기 어려웠지만, 서울 이화여대 앞쪽에 새로 생긴 놀라운 헌책방에 찾아가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시간 반 남짓 찬찬히 둘러보며 이 책 저 책 구경합니다. 여러모로 쏠쏠하다 싶은 책과 함께 <강이, 나무가, 꽃이 돼 보라>(나무와숲, 2004)라는 책이 눈에 뜨입니다. 데이비드 스즈키와 오이와 게이보 두 사람이 쓴 책인데, 데이비드 스즈키는 캐나다 사람이지만 핏줄기는 일본사람이고, 오이와 게이보는 일본 사람이지만 핏줄기는 한국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둘은 ‘어느 나라 어느 겨레’ 붙이임을 떠나 옹근 마음결과 생각밭으로 당신들 삶을 꾸리며 이 땅과 사람을 사랑하고 믿습니다.

“비인간적 인간들을 만들어 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다 …근대성이란 새것이 최고라고 믿는 것이다. 그 말은 곧 옛것은 좋지 않다는 뜻이 된다.”(103, 109쪽)

동네에 있는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니지 못하게 하며 좋다는 학교 옆으로 집을 옮기는 오늘날 한국 땅에서는 누구나 ‘사람 아닌 사람’ 길을 걷습니다. ‘사람한테서 벗어난 사람’ 자리에 뿌리를 내립니다. ‘사람을 잊는 사람’이 되고, ‘사람을 버리는 사람’으로 바뀝니다.


최종규 1인 잡지 <우리 말과 헌책방> 내는 사람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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