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열은 없고 차이만 있을 뿐이다

철학여행까페[86]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l승인2009.11.16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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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과 긍정의 철학자 질 들뢰즈[1]

미셸 푸코는 “아마도 어느 날 이 세기는 들뢰즈의 시대라고 불릴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들뢰즈는 이에 대해 “우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웃게 만들고 그 외의 다른 사람들은 격노하게 만들려는 의도를 지닌 농담”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푸코의 선언은 맞아 떨어졌다. 들뢰즈를 옹호하든 비판하든지, 그를 제대로 이해하건 안하건 간에 그를 빼놓고 철학을 이야기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으니까.

그런 들뢰즈가 1995년 11월 4일 파리 시내 자신의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자살했다. 프랑스 지식인 계층에서 자살은 충격적이기는 해도 아주 드문 사건은 아니다. 유명한 맑스주의자 루이 알튀세르는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쏘아 자살했고, 니코 풀란차스는 투신자살을 했다.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마지막 좌파 총리였던 피에르 베레고부아도 아파트 스캔들에 휘말리자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권총 자살을 했다.

충격을 준 투신자살


그래도 생성과 긍정의 철학을 이야기했던 들뢰즈가 자살을 선택했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고 그 이유를 궁금해 했다. 그러나 그가 왜 자살을 선택했는가에 대한 개인적인 이유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다만 추측해 볼 수 있는 정황은 있다. 들뢰즈는 평생 고질적인 호흡기 질환으로 인해 고통을 받았다. 그는 죽기 몇 년 전부터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왔고, 죽기 얼마 전에는 인공호흡기로 연명하며 침대에 누워 지내 왔다. 그는 그런 삶을 더 이상 내버려 둘 수 없었을지 모른다. 젊었을 시절에 그는 자살에 대해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자살하는 자는 자연을 거역하는 것이 아니다. 말하는 방식을 바꾸면 자신의 창조자를 거역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연이 그에게 남겨 놓아 준 유리한 길을 선택한 것에 의하여 이 자연의 충동에 따르는 것이다… 죽은 것에 의하여 우리는 자연의 명령의 하나를 완수하는 것이다.”(<경험론과 주체성>)

어쩌면 그는 수동적 죽음이 아니라 능동적 죽음인 자살을 통해 ‘고통에서 벗어나 자연의 명령’을 완수하려 한 것은 아닐까. 흔히 말하듯, 죽음은 거대한 삶의 한 과정일지 모른다. 죽음을 통해 우리는 개별적 삶을 매듭짓고, 그것을 통해 또 다른 개별적 삶과의 차이를 말하고, 삶의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들뢰즈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들뢰즈는 파리의 17구역에서 태어났다. 그는 청소년기를 빼고는 이곳을 벗어나지 않고 살았다. 그의 아버지는 엔지니어로 1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이며 보수적이고, 반유대적이기까지 했다. 들뢰즈의 형은 독일군 점령시기에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아우슈비츠로 가는 도중에 사망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 난 들뢰즈는 전쟁 전에 공립학교에 다녔다. 독일군이 프랑스를 침공했을 때 그는 노르망디에서 가족과 함께 휴가 중에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1년 동안 학교를 다녔다. 노르망디에서 한 교사를 알게 되어 그 교사의 영향아래 지드, 보들레르, 그리고 다른 저자의 책들을 읽게 되었다. 이때 처음으로 학문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파리로 돌아와서 국립중등학교인 앙리 4세 리세에 다녔다. 그곳에서 고등사범학교 입시를 준비했지만 입학시험에 통과하지 못했다. 대신 1944년에 소르본느 대학교에 입학해 철학을 공부하였다. 장 이폴리트와 조르주 캉길렘 등에게서 배웠다. 1947년에 흄에 관한 연구를 해 졸업논문인 <경험론과 주체성: 흄에 따른 인간 본성에 관한 시론>을 썼다.

1948년에 그는 교사자격 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1956년까지 아미앙, 오를레앙, 파리의 리세 등 여러 고등학교에서 가르쳤다. 그는 1956년에 작가 D. H. 로렌스의 작품들을 불어로 번역한 번역가와 결혼을 했다. 1953년에는 그는 졸업논문으로 제출했던 <경험론과 주관성>을 책으로 펴냈다. 이때 그의 나이는 28살이었다.

이동희
가타리
푸코와 가타리와의 우정


1957년에 소르본느 대학의 철학사 분야의 조교가 되었다. 이 무렵부터 매우 독특하고 개성적인 그의 강의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1960년에 국립과학연구센터(CNRS)의 연구원으로 일을 했다.

1964년에는 리옹 대학의 강사가 되었다. 흄에 관한 책을 펴낸지 10년 만에 그는 여러 가지 중요한 저작을 연달아 펴낸다. 1962년에 <니체와 철학>(Nietzsche et la philosophie), 1963년에는 <칸트의 비판철학>, 1964년에 <프루스트와 기호들>, 1965년에 <니체>, 1966년에 <베르그송주의>를 부지런하게 펴냈다.

이 저서들 중 <니체와 철학>은 프랑스에 니체 연구의 붐을 가져 왔던 책이다. 푸코는 <니체와 철학>을 읽고 열광했다. 미셸 푸코는 들뢰즈와 만나 오랫동안 중요한 우정을 나눈다. 그는 니체가 제기했던 철학의 문제의식을 들뢰즈와 평생 공유했다.

들뢰즈는 푸코가 창설한 ‘감옥정보모임’(GIP, Group d'information sur les prisons)에서 다른 지식인들과 활동했다. 이 그룹은 프랑스 감옥 시설의 열악한 상황을 널리 알리고 감옥-체제에 작동하는 권력을 기술하고자 했다.

들뢰즈는 푸코와 1978년에 ‘테러리즘’에 대한 정치적 의견과 철학 노선에 대한 차이로 결별을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의 작업에 대해 계속해서 관심을 가졌다. 푸코는 죽기 전에 들뢰즈와 재회를 희망했었다. 그러나 재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들뢰즈는 1986년에 푸코가 죽은 다음 <푸코>라는 책을 썼다. 그는 “내가 필요했기 때문에, 그리고 푸코에 대한 존경 때문에” 그 책을 썼다고 말했다.

‘68혁명’이 일어나던 해에 들뢰즈는 40대 중반의 나이였다. 이 해에 그는 박사학위논문 <차이와 반복>과 부논문인 <스피노자의 철학에서의 표현주의>를 썼다. 이 국가박사학위논문은 철학사 연구를 벗어나 이제 들뢰즈 자신의 철학을 알리는 작품이었다.

그는 68혁명을 계기로 동성애자 권리와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그 와중에도 그는 1969년에 <의미의 논리>를 출간했다. 이때 그는 알코올에 상당히 빠져 있었다. 그는 아침 일찍 <의미의 논리>를 쓰고 나서, 하루 종일 위스키를 마시고 있었다고 한다.

하루 종일 위스키를 마신 탓인지 모르겠지만 <의미의 논리>의 계열 22 ‘자기와 화산’은 알코올 중독에 대한 감동적인 분석을 담고 있다. 그는 폐가 약해 더 이상 술을 마실 수가 없었다. 그 덕분에 그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지는 않았다.

<의미의 논리>를 출간한 해에 그는 68혁명 운동의 영향으로 생겨난 실험 대학인 파리 제 8대학(벵센 대학, 후에 생드니 대학으로 개명) 교수가 된다. 1987년 은퇴할 때까지 그는 그곳에서 가르쳤다.

벵센 대학은 68혁명의 중요한 지적 실험의 장이었다. 벵센 대학은 전문적인 학자 양성이나 취업 등과는 무관한 철학적 탐구나 강의가 자유롭게 진행되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여러 계층의 대중들이 와서 자유롭게 강의를 들었다. 들뢰즈는 이 실험대학 운동을 열렬히 옹호했다. 그러나 이 실험 대학은 정부의 관료주의에 부딪혀 결국 실패하고 만다.

1969년에 그는 정신과 전문의이자 정신분석학자이자 공산당원인 펠릭스 가타리(F?lix Guattari)를 만난다. 가타리는 고등학교 때부터 전투적 좌익활동가였고, 프랑스 공산당에 대해 비판적인 이른바 ‘극좌파’ 맑스주의자였다.

그는 68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들뢰즈와 만나기 전에 이미 <정치와 무의식>, <기계적 무의식> 등의 책을 출간한 적이 있다. 가타리는 프로이트와 라캉 정신분석학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색하던 중 들뢰즈를 찾게 된다.

이동희
들뢰즈
<천개의 고원> 등 저작 열정


두 사람은 편지를 통해 서로 의견을 나누다가 의기투합하여 이후 공저를 계속해서 내놓게 된다. 그는 가타리와 함께 <자본주의와 정신분열: 안티-오이디푸스>(1972), <카프카>(Kafka, 1975), <천 개의 고원>(Mille Plateaux, 1980)을 썼다. 그는 가타리와 함께 문학에서부터 정신분석학 그리고 자본주의 분석 등 전통적인 철학의 영역을 넘어서는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었다.

80년대에 들어와 들뢰즈는 미술과 영화에 관한 책들을 썼다. 유명한 영국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을 다룬 <감각의 논리>(1981)를 썼고, 영화에 관한 책 <영화 1>(1981), <영화 2>(1983)를 출간했다.
1988년에는 라이프니츠의 철학을 다룬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를 펴냈다. 1991년에 들뢰즈는 가타리와의 마지막 공저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출간했다. 1992년에 가타리가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들뢰즈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고, 서로 보충해 주면서 서로를 사랑하듯 작업을 해왔다고 말을 한다.

그리고 그는 가타리에게 푸코와 더불어 정치가 무엇인지 가르쳐 준 사람이라고 고마워했다.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구스타프 슈바브 그리스로마신화\' 역자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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