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이야기하는 책

책으로 보는 눈 [104] 최종규l승인2009.11.16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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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많은 사람들이 즐겨읽던 <장정일의 독서일기>라는 책을 읽은 지 몇 해 안 되었습니다. 장정일 님을 좋아하고 싫어하고를 떠나, 문학책 읽기를 뚝 끊은 채 살아오고 있는 터라, 문학책 이야기만 줄줄 늘어놓는 느낌글은 그리 입맛을 당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장정일 님 이야기를 헌책방 일꾼한테서 들으며 ‘한번 읽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서울 회기동 헌책방에서 얼핏설핏 책손으로 서로 스쳐 지나가면서 ‘내가 문학책을 안 읽는다 해도 책을 말하는 책은 다 같은 마음으로 펼치기 마련’이라고 마음을 고쳐먹고 예전 책을 하나둘 찾아내어 읽고 있습니다.

스스로 ‘출판평론가’라는 이름쪽을 내걸고 있는 표정훈 님은 지난 2004년에 <탐서주의자의 책>(마음산책)을 써냈습니다. 이해 2004년에는 저도 <모든 책은 헌책이다>라는 책을 내놓았습니다. 제가 쓴 책이 더 잘났다고 여기지 않으나, <탐서주의자의 책>이나 표정훈 님 예전 책들은 영 내키지 않습니다. 온갖 지식조각을 얼기설기 알뜰살뜰 엮은 글매무새가 놀랍다고 느낍니다만, 온갖 지식조각을 그러모은 당신 땀방울과 눈물방울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식조각을 읽으려 한다면 백과사전을 보거나 인터넷을 누비면서 정보를 모으면 됩니다. 굳이 종이에 글자를 박은 책을 사서 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서점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고 나서도 구입하게 되는 책, 그런 책을 만드는 게 저자와 번역자와 출판사의 중요한 임무이자 목적이 아닐까?”(217쪽) 같은 이야기는 다름 아닌 ‘출판평론가’ 당신한테 돌려주어야 할 이야기가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이해 2004년에는 서경식 님이 <소년의 눈물>(돌베개)이라는 책이야기를 내놓기도 합니다. 재일조선인으로 살아가는 아픔과 생채기에다가 당신이 어릴 적부터 가까이할 수밖에 없던 책이란 무엇인가를 굵직굵직 나이테를 남기듯 또박또박 적바림하는 책입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이 책 <소년의 눈물>을 읽으며 아무런 눈물을 흘리지 못했고, 어떠한 눈물도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같은 출판사에서 또다른 재일조선인이며 지식인인 강상중 님 책인 <청춘을 읽는다>를 올 2009년에 새롭게 펴냈는데, 이 책을 읽을 때에도 같은 느낌입니다. “마쓰이 히데키 선수는 야구 배트를 한 번 휘두르는 것으로 100만 엔을 벌어들이지만, 나는 1년 동안 일해도 200만 엔밖에 벌지 못한다. 그래도 이곳에서 일하고 있으면 지역 사람들이 고맙다고 말해 준다. 나는 거기에서 삶의 보람을 느낀다.”(231쪽) 같은 대목은 훌륭하지만, 이런 몇 대목을 빼고는 딱히 가슴을 적시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책에는 지식을 담기도 하지만 지식만 그러모은다고 책이 되지 않습니다. 책이야기나 느낌글이란 지식을 다루기도 하지만 지식만 다룬다고 책이야기나 느낌글이 되지 않습니다. 책을 말하는 책이라면 책 하나에 얽힌 사람들 사랑과 믿음이 고이 배어야 합니다. 책을 이야기하려는 일꾼이라면 책과 사람이 맺은 삶을 풀어내야 합니다. 돈이 있어야 산다지만 돈은 삶이 아닙니다. 책은 마음을 살찌우는 밥이라지만 책만으로 우리 삶을 살찌울 수 없습니다. 뜨거운 눈물, 환한 웃음, 따스한 손길, 시원한 목소리를 골고루 나눌 때 바야흐로 참사람이요 참책이요 참삶입니다.


최종규 1인 잡지 <우리 말과 헌책방> 내는 사람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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