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단체장들에 이어 여권에서도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 대한 특별사면 문제가 연일 관심사다.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이 이 전 회장에 대한 조속한 사면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하면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와 경제회복을 기대하는 만큼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건희 전 회장을 포함한 약 70여명의 경제인에 대한 사면 건의안을 제출했다고도 했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도 지난 17일 이건희 전 회장에 대한 특별사면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같은 당 강승규 의원은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개최 등으로 한국의 지위가 한 단계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스포츠가 더 이상 뒷걸음하면 안된다며 이 전 회장에 대한 사면이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와 강원도의회도 발 벗고 나서는 모양이다. 급기야 지난 11일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국회 예결위에서 “소관부처로서 사면건의를 검토하고 있고, 신속히 검토를 마치겠다”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렇듯 정치권과 재계 인사들이 앞 다퉈 제기하고 보수 언론이 연일 확산하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 대한 사면 명분은 경제살리기와 스포츠외교다. 다시말해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로비를 위해서는 이건희 전 회장의 IOC위원 자격을 회복해야 하고 이를 위해 사면·복권하자는 것이다. 이건희 전 회장에 대한 사면이 시기상조라는 여론이 들끓고 있지만 정계 재계 체육계는 “국익적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국익을 위해 범죄를 저지른 기업인을 용서하자’는 얘기는 어불성설이다. 과거 천문학적 규모의 대선자금 비리나 기업 범죄로 처벌받은 재벌총수들에게도 하나같이 ‘경제를 살리기 위해 기업인들을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는 논리로 사면론이 나오곤 했다. 경제를 위해서 기업 범죄를 모른 척 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어디에서 찾는지 궁금하다. 또한 우리 사회 절대 다수인 보통 시민들에게는 허탈감만 주는 것이다. 법치주의는 특정한 집단의 자의에 의한 지배가 아닌 합리적이고 공공적인 규칙에 의한 지배를 통해 공정한 사회적 체계를 이루고, 사회적 갈등을 해결해 가는 것이다. 힘없는 국민들에게는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조차 무시하면서까지 법치주의의 원칙을 들이대면서 특정 기업 총수에게는 끊임없이 특혜를 부여하고, 지은 죄마저도 면해주려는 것은 우리 사회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우리 사회가 지켜가야 할 가치와 원칙을 스스로 져버리는 것이다.

이건희 전 회장 사면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 재벌문제의 핵심으로 간주되어 온 삼성그룹의 소유구조 개편이다. 이와 관련 향후 예상되는 시나리오를 법제도적 관점에서 파악한 경제개혁연대의 보고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삼성그룹은 지주회사로 전환하지 않고도 현재의 소유구조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과 이건희 전 회장의 지분 상속 문제, 관련 법률 개정 전망, 그리고 지주회사 전환시 소요되는 비용 등을 고려하여 소유구조 개편을 검토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소유구조를 규제하는 공정거래법, 금산법, 금융지주회사법 등이 삼성그룹의 기대에 맞게 개정될 지 여부도 중요한 외부변수라는 것이다. 이건희 전 회장의 사면보다 삼성이 얼마나 건전하게 발전해 나가는지를 보는 게 국민들의 희망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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