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담긴 함의

[시민광장] 강국진l승인2010.02.01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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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26일 내가 운영하는 블로그(www.betulo.co.kr)에 <“북한에 퍼줬더니 핵개발”이라는 편견 혹은 거짓말>이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대통령이 외신과 인터뷰하면서 밝힌 “북한에게 많은 돈을 지원했지만 북한은 결과적으로 핵무기를 만들었다”는 발언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대북지원 예산 현황자료를 분석해 밝힌 글이었다. 그 글은 다음뷰(Daum View)와 믹시(Mixsh)에도 올라갔다. (다음뷰와 믹시는 쉽게 말해 블로그 글을 모아서 한눈에 볼 수 있게 서비스해주는 곳이다)

뜻하지 않은 상황은 11월 30일 블로그 주소를 바꾼 뒤 <편견 혹은 거짓말>을 12월 1일 아침에 다음뷰와 믹시에 다시 올리면서 일어났다. 생각지 않게 인기 글이 됐다. 이틀 동안 댓글이 29개가 달렸다. 믹시를 통해 내 글을 본 사람이 이틀 동안 2천436명이었다. 다음뷰를 통해 읽은 사람은 13일 밤 10시 현재 3천333명이었고 148명이 내 글을 ‘추천’했다.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인 ‘대북 퍼주기’ 논쟁을 다루고 있고 방문자수도 웬만큼 되고 댓글도 통틀어 54개나 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댓글도 속내를 꽤나 적나라하게 드러낸 글이 많다. 이 정도면 최근 인터넷문화에서 시작해 우리 사회의 토론문화의 한 단면을 짚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우선 눈에 들어온 건 인터넷은 더 이상 젊은이 전유물이 아니라는 새삼스런 깨달음이다. 다음뷰를 통해 어떤 사람들이 내 글을 봤는지 확인할 수 있는데 한마디로 ‘40대 이상, 수도권 거주 남성’이 대다수였다. 3천333명 가운데 50대 이상이 33%나 됐고 40대도 28%나 됐다. 30대는 24%, 20대는 13%였다.

한국이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일극 패권사회’라는 점은 내 글을 읽은 사람 중 서울이 44%, 경기가 26%, 인천 7%라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수도권이 77%나 된다. 부산이 7%, 광주 6%라는 점과 극명한 차이다. 나 자신 서울시민이지만 정말 무서운 ‘서울 제국’이다.

댓글을 하나씩 다시 읽어봤다. 뭐라고 해야 할까. 한숨이 나왔다. 개인적으로 지금도 최고의 사설로 꼽는 게 지난 1992년 대선 직후 한겨레신문 사설이었는데 그 글은 “국민들은 그 수준에 맞는 민주주의를 가진다”였다. 그런 면에서 지금 정부가 보여주는 민주주의 수준은 딱 우리 수준이라는, 다소 뼈아픈 결론이 가능하다. 그 점은 댓글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절실히 느낀 점이기도 하다.

댓글 54개 중에 29개가 내 글에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내용이다. 그건 좋다. 나를 실망시킨 건 욕이 난무하고 아전인수 격인 비방이 넘쳐난다는 점이었다. 그런 글들의 또 다른 특징인지 모르겠지만 건강한 대화를 이어갈 만한 글은 참 적다.

나를 가장 실망시킨 건 ‘식량을 퍼줬으니까 식량 걱정 없이 무기 개발했다’ 혹은 ‘북한은 빨리 망해야 한다’같은 도대체 깊은 생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주장들이었다. 어느 댓글에서 지적했듯이 ‘돈 줬다고 하다가 돈 안줬다고 하니까 이제는 식량걱정 없어 무기 개발했다’는 식이다. “차라리 전쟁이라도 나야 한다”거나 “북한은 도와줄 필요가 없다”는 주장까지 나오면 한숨만 나온다. 박자와 대구도 잘 맞지 않는 욕설은 그나마 언급할 가치도 없겠다.

누구처럼 인터넷실명제를 하면 사이버문화가 발달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인터넷 익명성 보장은 민주주의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사이버세상에서 우리의 수준이 딱 이 정도라는 점은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해야 할 듯하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난 애초 대통령이 말한 ‘퍼줬더니 핵개발’이란 말이 근거가 없고, 북한에 지원한 건 현물이었고, 현물의 액수도 퍼줬다고 하기에 민망하다는 점을 무척이나 건조하게 통계수치를 인용해 밝혔다. 그런데 왜 내 글을 문제 삼는 그 많은 댓글 가운데 내가 지적한 세 가지를 재반박하는 글은 왜 하나도 없는 걸까. 왜 ‘그래도 퍼주기’ ‘그 돈 아껴 핵개발’ ‘북한에 굽신굽신’ 같은 내 글 주제와 상관없는 비난만 넘쳐날까.

난 ‘건조’하게 ‘예산수치’만 말했을 뿐인데. 여기서 댓글을 들여다보며 새삼 깨닫는 가장 큰 교훈. ‘예산’은 ‘숫자’가 아니다. 예산은 ‘정치의 최전선’이며 ‘정책의 최전방’이다.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강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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