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경기 남부에 소재한 모 경찰서에 인권 교육을 간적이 있었다. 수사 일선에서 근무하는 경찰관을 상대로 인권교육을 하려니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해야하나 내심 고민스러웠다. 교육을 받는 경찰관 역시 이 의례적 교육 시간을 어찌 견뎌야 하나 하는 표정이었음은 물론이다.

강단에 서면서 질문을 하나 던졌다. “춘향전 읽으셨죠?”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스러움과 당연하다는 표정이 교차한다. “그럼 춘향전을 우리나라 헌법으로 보았을 때 춘향이가 어떤 헌법적 권리를 박탈당하였는지 한번 말씀해 보실까요?” 결과는 놀라웠다.

그래도 법을 다루고 법 조항을 들어 업무를 보시는 분들이니 평균 이상은 답이 나오리라 기대했는데 사실상 초보적 수준 이상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기에 그럴수도 있겠지만 다시 묻고 싶다.
“그럼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가?”

헌법을 안 가르치는 대한민국 교육

간단히 보면 춘향이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헌법 제10조)와 관기의 딸이라는 이유로 수청을 강요당하였으므로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차별받지 않을 권리’(헌법 제11조)를 박탈당하였다. 그 외에도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않고서는 체포, 구속당하지 않을 권리’와 ‘고문 받지 않을 권리’(헌법 제12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춘향이는 자신의 권리가 이처럼 박탈되었음을 알고 있었을까. 문제는 춘향이가 헌법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초, 중, 고교 등 무려 12년간의 정규 과정을 거쳤다 할지라도 우리는 사실상 헌법의 전문을 읽을 기회조차 없다. 아시다시피 헌법은 한 국가의 최고 규범이면서 동시에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한 최고 상위의 법이다. 따라서 법치주의 국가에서 내가 가진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권리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뭔가 부당하고 억울하다는 피상적 느낌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나에게 보장된 어떤 헌법적 권리가 침해되었다라고 설명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개개인이 무식해서가 아니라 국가가 그 권리를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가는 왜 그 권리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것일까. 국민이 아는 만큼 권리 주장이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5월, 촛불집회에 참석한 이들은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과 2항을 노래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이 주옥같은 헌법 조문을 노래하며, 그리고 국가가 가르쳐주지 않은 이 소중한 권리를 ‘제대로’ 알게 되면서 벅차오르는 묘한 기쁨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반대로 국가는 힘들어졌다.

시위가 많아지고 권리만 주장하는 몰상식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어수선해졌다고만 생각할 것 같다. 대충 윽박지르고 달래면 스스로 사그라지는 국민이 아니라 조목조목 내 권리를 주장하며 당당한 국민으로 서고자 하는 국민들이 많아질수록 통치하기가 어렵다고만 생각할 것이라고 본다면 너무 과할까?

‘헌법’을 정규 과목으로

2008년 12월 29일. 당시 법무부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청소년에 대한 헌법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교육 자료를 보급할 계획이며, 또한 모의 헌법재판을 통해 헌법을 가르치는 시범학교도 두겠다고 했다. 그로부터 2년여가 지난 오늘날까지 이 정책은 책상 서랍 안에 잠들어 있다.

헌법은 권리와 국민의 의무를 같이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국방, 납세, 교육, 근로의 의무는 요구하면서 권리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것은 국가의 비양심이다. 나는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헌법을 배우는 그날이 어서 오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춘향전을 읽으며 그가 박탈당한 ‘헌법적 권리’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답할 수 있는 그날이 올 때 진정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믿는다.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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