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건 진짜 민심이다

1995년의 제1회 지방선거(68.4%)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비율인 54.5%의 유권자가 참여한 2010년 6월 2일 지방자치제 선거는 작은 ‘선거 혁명’이라 할 만하다. 그동안 집권 여당은 늘 엉터리 여론조사를 근거로 “여권 대세론”를 폈지만 막상 민심의 뚜껑을 열고 보니 현실은 영 ‘딴판’이었기 때문이다. 이 현실에 대해 조중동 등 집권 여당에 밀착된 거대 언론사들은 놀랍게도 침묵했다. 좋든 싫든 현실은 현실인데, 왜 침묵시위를 하는 걸까? 핵심은 ‘진실에 대한 두려움’이다.

핵심은 ‘진실에 대한 두려움’

우선, 눈앞에 드러난 현실을 보자. 이번 제5회 지방선거에서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은 서울에서조차 겨우 0.6% 차이로 승리를 구가한 반면, 전체로 매우 힘겨운 싸움을 벌인 끝에 광역단체장 6석을 차지했다. 여당이 가볍게 압승할 것이라는 예측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반면, 야당인 민주당은 인천을 비롯한 7곳의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그동안 억눌렸던 가슴을 활짝 펼 수 있었다. 민심이 정말 무서웠던 하루였다.

민심이 집권 여당의 오만방자함과 안하무인에 가장 큰 역공을 가한 것은 경남, 강원, 충청이었다. 특히 경남의 김두관 도지사 당선자는 농민 운동에서 시작해서 마을 이장, 군수, 장관직을 두루 거친 입지전적 인물이다. 경남 도민들이 이 분을 도지사로 뽑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선거 때에나 시장 통을 돌며 표를 달라고 악수만 해댈 것이 아니라, 평소에 풀뿌리 주민들에게 겸허하게 다가가는 그런 정치와 행정을 해 달라는 것이다.

‘레드 콤플렉스’는 없다

군수나 시장 등 기초단체장 228개 선거구에서도 풀뿌리 민초들은 한나라당 82곳보다 훨씬 많은 92곳에서 민주당을 선택했다. 무소속도 36명이나 선택했다. 소수 야당이긴 하지만 민초들은 자유선진당 13명, 민노당 3명, 국민중심연합과 미래연합을 각각 1명 뽑았다. 4년 전 지방선거에서 서울의 25개 구청장을 싹쓸이했던 한나라당은 강남권 3석과 강북의 중랑 등 4석만 건진 반면, 민주당은 무려 21석이나 확보했다.

한편, 16개 교육감 선거에서는 서울(곽노현), 경기(김상곤)를 비롯해 모두 6곳에서 진보성향 후보를 뽑았다. 무상급식, 혁신학교, 청소년인권조례, 일제고사 강행 금지 등 진보적 교육 정책에 대해 민심은 적극 지지한 셈이다.

이제, 이 작은 선거 혁명은 우리에게 어떤 ‘진실’을 가르치고 있는지 ‘두려움’ 없이 살펴보자. 가장 우선 강조할 것은, 이젠 과거와 달리 집권 여당의 프리미엄이나 북풍(이번의 경우 천안함 사태)과 같은 ‘레드 콤플렉스’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민초들은 때로는 우왕좌왕하지만 결국에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능력이 있다. 시대는 21세기인데, 권력자들이 20세기 중반의 사고틀에 갇혀 있다면 결국 자가당착에 빠진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빗나간 여론조사, 자가당착에 빠져

둘째, 선거 국면에서 늘 나오는 ‘여론 조사’의 함정이다. 평소에 사람들이 어떤 생각과 태도를 보이는지에 대해 생활 속에서 관찰하기보다 다급한 나머지 전화로 여론조사를 한답시고 자동응답기를 돌려대듯 하는 것은 제발 그만두는 것이 좋다. 그런 전화를 성실히, 때로는 질문자의 의도에 맞게 순순히 받아줄 사람들이 도대체 어떤 집단들일지 조금만 상상해보면 안다. 그런 여론 조사는 기득권층이 스스로 속도록 자기 함정을 파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특히 전체 표본 중 비응답자의 수를 제외하고 응답자만으로 찬반 여론을 따지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셋째, 과연 지금의 민심은 무엇을 말하는지 잘 살펴야 한다. 민심은 소수의 건설업자와 부실 은행을 위한 미분양 아파트 매입이나 공적 자금 투입에 짜증을 내고 있으며, 식수 오염과 생태계 파괴를 동반하는 4대강 공사를 중단하기를 요구하고 있고, 지방의 균형 발전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세종시 수정안 철회를 바라고 있다. 또한 지금 민심은 극소수 엘리트 중심의 수월성 교육이 아니라 평등성과 인간성에 기초한 교육 혁신을 바란다.

기득권 경쟁 없는 대동 세상을 위하여

어떤 미디어에 따르면 “죽은 노무현이 산 이명박을 이겼다.”거나 “노풍이 북풍을 이겼다.”고 하지만 나는 꼭 그런 식으로 보진 않는다. 풀뿌리 민초들이 똘똘 뭉쳐서 돈과 권력을 쥔 기득권 세력과 끊임없이 싸워나갈 때, 그리하여 더 이상 기득권 경쟁이 필요 없는 그런 대동 세상을 열어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풀뿌리 민초의 완전한 승리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갈 길은 멀다. 그럼에도 왠지 오늘은 기분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