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체류 외국인도 응급의료 받을 수 있어야

국내 체류 외국인 수가 늘면서, 각종 사건ㆍ사고도 증가하고 있다. 당국 또는 시민단체에서 외국인 행려환자, 행려사망자 처리, 또는 신원 미상 교통사고 피해자 처리로 애를 먹는 사례가 늘고 있다. 현행 보건복지부의 ‘의료급여사업 지침’에 따르면, “환자의 거소가 불분명하고, 시군구청, 경찰관서, 소방관서 등 행정기관이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서 정하는 응급진료를 받게 하였으며, 부양의무자(1촌 이내의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가 없는 무연고자이거나,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능력이 없거나 부양받을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을 행려환자로 인정한다. 외국인이 행려환자로 오인되거나 신원미상 상태로 장기간 방치되어 사회적 파장이 컸던 두 건의 사건을 회고해보기로 한다.

1993년 11월, 서울 광진구의 공장 근처 분식점에서 라면을 먹은 네팔 여성 이주노동자 찬드라 쿠마리 구룽(Chandra Kumari Gurung, 당시 36세) 씨는 식사를 마친 후에야 지갑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식당 주인은 한국어가 서툰 구룽 씨가 횡설수설한다고 판단하고, 경찰에 무전취식했다고 신고했다. 경찰관은 행색이 초라한 외모를 보고 그를 행려환자로 오인했다. 동부경찰서에서는 하루 만에 그를 청량리정신병원으로 이송하였다.

청량리정신병원에서는 그에게 ‘선미’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아무도 그가 외국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후 그는 서울시립부녀보호소를 거쳐 용인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 그는 서툰 한국말로 자기가 네팔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려 했으나, 아무도 그의 말을 경청하지 않았다. 그는 정신병원에서 손이 묶인 채 강제로 약물을 투여 받으며 지내야 했다. 2000년 3월 한 정신과 의사에 의해, 그가 정신질환자가 아니라 네팔 사람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는 6년 4개월 만에 감금상태에서 풀려났다.

2002년 5월 26일 새벽 4시 충남 천안시 성환읍 11번 국도변에서 태국 남성 이주노동자 캄푸 프롬쁘라서트(Khamfu Promprasert, 당시 25세) 씨가 자동차에 치여 쓰러졌다. 그는 ‘뇌좌상 뇌출혈’ 수술을 받은 후 다행히 의식은 되찾았지만, 기억상실증에 걸려 자신의 모국어는 물론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이름, 국적, 나이조차 모르는 그를 ‘샤밈’(Shamim)이라 불렀다.

사고 현장에 남아 있던 수첩 첫 장에 방글라데시어로 ‘샤밈’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이 수첩에 적힌 모든 전화번호로 연락을 취했으나, 모두가 모른다고 했다. 탐문 수사와 지문 조회를 통해서도 신원을 밝히지 못했다. 2년이 훌쩍 지난 후, 한 방송사 취재팀이 그 수첩의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전화번호로 연락하여, 그가 일하던 농장 고용주와 연락이 되었다. 그리고 주한 태국대사관에 보관 중인 여권 사본을 통해 그의 신원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농장 고용주는 사고 이전에도 그가 종종 말없이 사라지곤 해서, 그가 다른 곳으로 직장을 옮긴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친구들은, 사고 당일 프롬쁘라서트 씨가 친구 생일잔치에 참가했다가 새벽 3시경 친구와 다투고 혼자 사라졌다는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친구들은 그가 불법체류 신분인 탓에 경찰에 실종 신고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경찰의 부주의와 농장 고용주의 무성의, 친구들의 침묵 탓에 프롬쁘라서트 씨는 2년 5개월 동안 병원에 홀로 방치되어 있었다.

경찰관 또는 사회복지시설 직원의 태도는 얼마나 개선되었을지 궁금하다. 신원 미상의 외국인 무연고 행려환자에게는 어떤 응급의료 서비스가 주어질까를 생각해 봤다. 최근 한 정부 관계자로부터 “국내 거주 외국인은 사회복지사업법 상 행려환자 보호시설 입소나 행려사망자 처리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설명을 들었기 때문이다. 기초생활보장법에서 급여 대상으로 인정하고 있는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결혼이민자’에게만 그 기회를 제공하고, 기타 외국인은 치료도 하지 않은 채 강제 퇴거 대상으로만 보고 있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앞섰다.

응급의료를 받을 권리는 ‘세계인권선언’과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인권규약’ 및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협약’ 등에서 명시하고 있는 ‘인간의 기본권’이다. 국적이나 체류자격 등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라는 뜻이다. 인간의 기본권 보장 영역에서조차 내국인과 외국인을 구분하는 속 좁은 행정이 대한민국의 국격을 떨어뜨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러한 우려를 완벽히 불식하기 위해서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응급의료권자의 범주에 국내 체류 외국인도 포함하도록 명시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