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강은 수 억 년을 흘러왔다

강상헌칼럼 강상헌l승인2010.09.1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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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개발’이 재앙을 부를 것을 우려하는 글들을 얼마 전부터 주의 깊게 봅니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망가진 나라를 물려줄 수 없다는 글을 보면 빙그레 웃음이 나옵니다. 덥석 손을 잡고 싶기도 합니다.

필자는 이 ‘4대강 개발’을 반대합니다. 또 나랏돈으로 이 정책을 ‘4대강 살리기’로 포장하여 ‘홍보’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4대강 죽이기’가 되기 쉽다는 점을 저어하는 까닭입니다. 또 혈세인 예산을 정의롭게 쓰는 방법이 아니라는 점도 그렇습니다.

‘수 십 년을 흘러온...’ ‘수 백 년 자연이 빚은...’ 산과 강, 이 강토를 제대로 된 연구나 평가과정 없이 삽질부터 해댄다면 나중에 올 자연의 엄한 꾸중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등의 글이 오늘도 많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시간의 길이에 대한 인식(認識)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우선, 저 강이 ‘수 십 년’ ‘수 백 년’ 흘러왔다는 대목은 ‘수 천 년’ ‘수 만 년’으로 고쳐야 할 것입니다. 모르긴 해도 억 단위로 올려 생각해야 할 곳도 있을 것입니다. 지구의 나이는 45억년 가량입니다. 그 시간의 길이를 추측해 보실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퍽 오래 살면 대략 1백년이지요.

한반도에서도 많이 살았던 공룡이 지구의 주인공이던 시기를 아십니까? 2억 3000만 년 전인 초기 중생대에 지구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공룡, 그로부터 약 1억 6500만 년 동안 지구를 주름잡다가 6500만 년 전에 지구에서 갑자기 자취를 감춥니다.

‘인류의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2백 만 년 전부터라고 합니다. 호모사피엔스보다 훨씬 이전의, 가장 원시적인 인류의 첫 발자취부터 낙낙하게 셈한 것이지요.

지금은 박물관의 화석(化石)과 어린이들의 캐릭터 친구로만 존재하는 공룡은 까마득한 과거에 엄청난 세월을 살았군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절멸(絶滅)했다고 해서 우리는 잠깐 지구상에서 살다 간 ‘과거의 흔적’으로만 여겼지요.

존경받는 환경기자인 한겨레신문 조홍섭 기자의 ‘살아있는 한반도’ 시리즈 기사에서 시간과 우주의 뜻을 다시 새겨봤습니다. 자연과학적 접근이지만 뒷맛은 철학이더군요. 그는 또 ‘4대강 개발’을 왜 다시 생각해야 하는지를 본질로 깨우쳐 줍니다.

그에 따르면 돌탑으로 유명한 전북 진안 마이산의 말 귀 모양 두 봉우리는 1억년 세월이 빚은 ‘작품’입니다. 서울 북한산의 화강암 바위들의 나이는 1억7천만 살이고, 서해 백령도와 소청도의 바위들은 최소 8억 년 전에 생성된 것이랍니다.

그는 “한반도는 오래된 땅이어서 아무렇게나 밟히는 암석도 20억 년 풍상을 견딘 것일 수 있다.”고 썼습니다.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바위는 인천 앞바다의 섬 대이작도에 있으며 25억 살이랍니다. 제주도는 나이가 훨씬 어려 180만 살 정도라는군요.

4대강의 나이, 사람들이 얼핏 생각하는 ‘수 십 년’ ‘수 백 년’이 제 나이에 비해 터무니없이 짧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세월의 길이를 짐작조차 하지 못한 까닭에 ‘착각’이 빚어지는 것이지요. 잘해야 백 년 사는 사람이 자신을 중심에 놓고 우주의 공간과 시간을 재단(裁斷)하려는 교만을 부리다보니 착시현상이 생기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해운대 경포대 대천 등 유명 해변에 모래가 없답니다. 대부분 해수욕장들이 여름엔 트럭으로 모래를 실어 나릅니다. 흙이 쓸려가서 바닷가 건물과 아파트의 축대가 드러납니다. 면밀한 검토 없이 방파제나 해안도로를 만든 결과라지요? 재앙의 징조(徵兆)로 전문가들은 진단합니다. 망가지는 해안처럼 우리 강토(疆土)가 곳곳에서 신음합니다.

해안이나 강 등 우리 눈에 비치는 경관은 자연이 최소한 수만 년 넘게 걸려 완성한 ‘작품’입니다. 아름답기도 하려니와 안전성과 안정성이 확실한 구조일 터입니다. 스스로[自] 그렇게[然] 이룬 것입니다. 정 개발이 필요하다면 토목이론 뿐만 아니라 자연의 장엄과 섭리에 걸맞는 지혜를 모아야지요.

인간은 자연과 벋설 만큼 지혜롭지 않습니다. 이를 알고 자연을 경건하게 대하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 인간의 가치를 회복하는 착한 길이겠지요. 영국시인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는 시(詩) ‘순수의 전조(前兆)’에서 ‘눈에 보이는 것’과 ‘그 의미’ 사이를 이렇게 보듬었습니다.

한 알 모래알에서 세상을 보고 /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 그대의 손바닥 안에 무한(無限)을 쥐고 / 한 순간의 시간에서 영원을 보라.

공룡이 절멸한 것은 기후변화 때문이었답니다. 우리는 지금 기후변화의 여러 증거를 보면서도 애써 눈을 감고 삽니다. ‘4대강 개발’은 우리에게 과연 무엇일까요?

한 정치인의 성과주의가 모두의 진실의 눈을 가리는 심각한 이 상황을 당신도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우주의 크기와 시간의 길이를 늘 명상해야 합니다.

우리가 스러진 다음에도 오래, 아주 오래, 저 강은 아름다워야 합니다.


강상헌 논설주간

강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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