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 그리고 특채 파동

노무현정부 평가와 관련해 지금도 계속되는 논란이 삼성과의 관계이다. 관련해서 이광재 강원지사의 이름이 자주 들먹여진다. 하지만 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관료와의 관계이다. 사실 한국의 고속성장은 관료가 주도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 들어와 관료집단은 다시금 이른바 ‘세계화'를, IMF 외환위기이후에는 또한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주도하면서 자신들의 권력을 이어나갔다. 이렇게 증대된 관료권력은 노무현 정부시절에는 FTA를 통해 전환을 맞으면서 '통상관료'라는 새로운 집단을 만들어 낸다.

관료주도 FTA는 한국 관료권력의 현 주소라 보면 되겠다. 세력이 커지면서 관료집단은 차츰 ‘이념화’경향마저 보인다. 그리고 여론을 수렴해서 정책을 입안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머리에서 나온 정책에 여론이 맞출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들 집단의 생존력은 놀라운 수준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영어 잘 한다고’ 강남아줌마들을 열광시키면서 '한국관료의 미래'로 추앙받던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정권이 바뀌자 삼성전자 사장으로 전직했다. 당시 김현종 밑에 있던 김종훈은 정권이 바뀌자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오히려 승진했고, 한덕수 전총리는 우습게도 주미대사로 '취직'했다. 관료집단 스스로 말하듯 '민주노동당이 집권해도 살아남는다'는 말이 가히 빈 말이 아니다.

관료집단가운데 특히 폐쇄적 엘리트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곳 가운데 하나가 외교부 쪽이다. 흔히 공무원에겐 영혼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자신의 입신과 승진이 이들의 영혼이다. ‘친미’적으로 훈련받고 또 이를 논리적으로 합리화하기 위해 보수적 학계가 동원된다. 국제정치학이 학계에서도 가장 보수색이 강한 곳 가운데 하나인 것도 따져 보면 우연이 아니다. 어느 듯 대한민국은 관료 그들의 나라다.

정권이 바뀌어도 적어도 경제와 외교통상관료를 혁신하지 못하면 그 정권은 실패한다는 것이 나의 잠정 결론이다. 진보개혁진영은 이 분야에 사람을 키워야 한다. 최근 순수민간에 경제전문가들이 등장하는 것은 아주 바람직하다. 시민사회내에 이 분야의 씽크탱크가 매우 긴요하다. 하지만 여전히 외교나 통상쪽은 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국내 정치문제에는 바로 바로 반응하지만, 국제문제 특히 통상문제등에 대해서는 관련 피해 집단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반응이 늦고 또 약하다. 바로 여기, 국민들 관심의 사각에서 이들의 권력이 유지된다.

지금까지 관료는 고시를 통해 재생산되어 왔다. 사실 고시제는 허다한 문제를 안고 있지만 적어도 그 정당성만큼은 의심받지 않는다. 아무리 배경있고 돈이 있어도 시험은 자기 머리로 붙어야 한다. 돈이 있다고 시험에 붙는 것도 아니고, 힘있는 부모라도 대신 시험을 쳐 줄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이유에서 강한 ‘평등주의적(egalitarian)’ 성향을 띠고 있는 우리의 정치문화에서 그 문제많은 고시제는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유명환 전외교부장관 '딸'의 특채사건을 보면서 아차 싶었다. 로스쿨이 만들어지면서 이제는 웬만한 재력이 없이는 법관은 꿈도 못꾸게 생겼구나 생각했었다. 특채가 있다는 생각을 미쳐 하지 못한 채 놓치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에서 보듯 우리 사회 엘리트집단들은 부의 세습이 완료되자 지위의 세습을 도모하고 있다. 삼성의 편법상속이 전자를 상징하고, 유명환 전 장관 딸 사건은 후자를 대표한다.

전자는 그나마 장기간의 법적 논란 덕분에 꽤 알려 진 사안이다. 후자는 모르고 있던 사안이다. 북한의 권력 세습까지를 감안한다면, 남북한 모두 세습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셈이다. 세습 논란은 필연적으로 그 정당성에 대한 강한 불신이라는 맥락을 내장하고 있다. 벌써부터 이런 말이 떠돌고 있지 않은가. “무조건 아빠를 잘 만나야 하고, 아빠는 딸을 잘 만나야 한다.” 그리고 이 불신은 우리 사회의 통합을 가로 막는 암적 요소다. 지금은 사건이 터지고 전국적으로 격렬한 비난이 확산되면서 잠시 멈칫 하고 있지만, 나는 이 지위세습 경향이 장기적으로 어떤 형태로든 계속될 것이라고 본다. 저들만의 공화국, 특권이 가득한 나라가 완성될 때까지 말이다. 남은 방법은 시민들이 나서서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하는 일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