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은 언제였나

색깔있는 역사스케치69 정창수l승인2010.09.13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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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피우면 소화가 잘된다. 그리고 이미 인이 박혀서 금지하면 큰 혼란이 생긴다.”, “흡연은 건강을 해치니 비옥한 땅에 백해무익한 담배를 심어서는 안 된다.” 마치 요즘의 흡연 찬반론자들의 논쟁 같지만 놀랍게도 조선시대의 이야기다. 하지만 왕들은 공감하면서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미 하나의 문화가 되었고 자신들도 담배를 피웠기 때문이다.

특히 정조는 대표적인 흡연 예찬론자로서 <일득록>에 “추위와 더위를 막아주고 식후에 소화를 돕고 변을 볼 때 악취를 덜어준다. 특히 글을 쓸 때나 사람들과 대화할 때, 조용히 사색할 때나 사람에게 유익하지 않은 것이 없다”라고 극찬하고 있다.

담배는 인조16년(1638)의 실록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1616년에 전달되었고 1621년 이후 흡연자가 증가하고 상업화되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지봉유설>을 보면 그 이전에도 흡연자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하멜표류기>에도 조선인은 4,5세 때부터 담배를 피우는 담배의 천국으로 묘사되어 있다.

1730년대에는 이미 진안, 장수 같은 고을에서 주민 전체가 담배농사를 지을 정도로 확산되었다. 조정에서는 서울의 엽초전이라는 시전에 독점권을 주었다. 그러나 많은 일반 상인이 막대한 이익이 남는다는 이유로 담배를 밀거래 하자 이런 조치는 무력화된다. 담배 거래는 정조 때 신해통공(1791)으로 완전히 자유롭게 되었다.

우리 담배를 처음 대규모로 수출한 사람은 인조의 첫째아들 소현세자의 비 강씨이다. 소현세자와 강씨가 인질로 심양관에 머물렀을 때 당장 먹고사는 것과 시장에서 사고 팔리는 조선포로를 구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래서 돈을 벌기로 하고 꿀, 면포, 가죽, 종이 등 다양한 물품을 사고팔았는데 그중 담배가 대표적인 품목이었다. 나중에는 땅을 빌려 농사를 지어 팔기까지 했는데 9년 동안 많은 포로를 구출하고도 남아 4700석의 쌀과 많은 양의 담배를 남겼다고 한다. 대단한 여인이다.

조선에서 흡연 논쟁은 계속되었으나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담배는 이미 생활 속에 자리를 잡았다. 일본에서는 1609년 금연령을 공포하였으나 효과가 없었고 1619년에는 아예 재배금지령을 공포하였으나 결국 막지 못했다. 중국에서는 1638년에 청나라 태종이 금연령을 선포하고 흡연확산을 막으려 하였으나 이미 인이 박힌 사람들이 담배를 끊을 수가 없어서 담배 값이 폭등하고 조선으로부터 밀수가 성행하자 얼마 가지 않아 해제했다.

인도와 페르시아에서는 더 심한 예를 볼 수 있다. 인도 무굴의 황제는 흡연자의 귀를 찢게 했고, 페르시아에서는 코와 귀를 잘랐다. 그러나 이런 모든 시도에도 불구하고 흡연을 막을 수는 없었다. 무엇이든 못하게 하면 더 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유럽에서는 처음에 담배를 별로 피지 않다가 약이 된다고 하는 이야기가 퍼지자 급속도로 확산되었다고 한다.

그토록 문화화된 담배이지만 권력현상도 일어났다. 누구나 똑같이 담배를 피우는 것은 신분질서 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여긴 것이다. 따라서 왕 앞에서도 담배를 피우던 자연스런 모습은 사라지고 신분의 귀천과 상하관계에 따라서 담배를 규제했다. 담뱃대의 길이도 통제했다.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범죄로 여겨 태형까지 내렸다. 우리 민화에는 호랑이가 담배 피우는 모습이 많다. 사실 ‘호랑이도 담배 피우던 시절’은 아주 오랜 옛날이 아니라 신분귀천이 없이 담배를 피우던 이상적인 사회를 그리워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 이후에는 세금을 걷기 위해 연초세를 제정하고 전매령을 공포해 대대적으로 단속한다. 그래서 담배값이 폭등했고 격렬한 저항이 일어났다. 단속원을 살해하는 일도 일어났다. 이처럼 연초세와 전매령은 3·1운동의 간접적인 원인 중 하나일 정도였다. 조선왕조 때에는 없던 담배에 대한 세금이 생기니 백성들은 당연히 분노했다.

그러나 일제 총독부는 조선에서 거둔 세금의 20%가 담배세였기 때문에 타협하지 않고 강력하게 시행했다. 당시 전매령 위반자가 매년 2만 명으로 전체 형사범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였으니 저항과 단속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일제는 일장기를 상표로 아편도 전매했을 정도였으니 대중에게서 세금을 빼내는 데 물불을 가리지 않은 셈이다.

담배 전매제도는 해방 이후에도 그대로 존속했다. 흡연을 규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전매하는 모순이다. 담배값 인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최근 담배값 8천원 인상안이 이슈가 되고 있다. 돈벌이가 아니라 건강을 중심으로, 진정한 흡연문제를 생각해야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창수 좋은예산센터 부소장, 본지 편집위원

정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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