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무단횡단을 허하라

바퀴가 지구상에 나타난 것은 수메르인이 만들었다는 4000년 전쯤인데 그동안 탈 것이 신분의 높낮이의 수단이자 전쟁과 이동, 짐의 운반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면서도 지구전체의 문명화를 가져오는데는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자동차가 지구상에 나타난 100년쯤부터 어느덧 우리 사회는 자동차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고, 자동차가 가져온 인류의 변화상은 실로 놀라울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그 편리함만큼이나 그 댓가는 치명적이다.

자동차는 지구상에서 가장 비싼 소비재이고, 가계 지출의 약 1/3 정도(미국에서는 차량 1대소유당 1년에 8,000 $~8,500 $로 계산함)를 차지할만큼 가계부담을 준다. 또한 도로와 주차장 등 엄청난 토지의 사용, 교통사고로 인한 수많은 사람들의 살상과 장애인 양산, 교통혼잡으로 인한 시간과 연료의 낭비, 도로로 인한 생활권의 분절, 개인적 생활방식으로 인한 공동체상실과 인간성 상실의 위기, 도시의 팽창과 확장으로 인한 도심공동화의 문제, 유독한 배기가스의 배출로 인한 아토피, 천식, 환경적 질환과 암환자의 급증, 소음과 진동으로 인한 각종 물질적·정신적 피해 등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부작용을 갖고 있음을 알면서도 자동차의 안락함에 푹 빠져있다.

국토해양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교통사고 피해자 중 가장 취약한 집단이 보행자로 나타났다. 보행자가 교통사고를 당할 경우 매우 치명적이어서 사망할 확률이 차량사고로 인한 사망률 2.4%보다 2배 이상 높은 5.0%로 나타났다. 2007년 전체 교통사고의 사망자수 6166명 가운데 보행 중 발생한 사망자 수가 2232명을 차지해 36.1%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영국 21.3%, 호주 14.2%, 미국 11.4%, 프랑스 11.4%를 비롯해 OECD 가입국가의 평균 보행자 사망률(총 사망자 대비)인 17.4%를 2배 이상 웃도는 수치로 우리나라 보행자 환경의 열악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지방 국도는 대도시 지역에 비해 보행자를 위한 안전시설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2007년 제출된 건설교통부 대국회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일반국도 중 95.5%가 인도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더욱이 지방 국도는 대도시보다 상대적으로 차량의 속도가 빨라서 보행자 사고 발생 시 사망률이 14.2%로 대도시 지역의 3.4%에 비해 훨씬 높은 편으로 나타났다. 당초 인간에게 이동의 자유를 가져다주었던 도로는 폭주하는 자동차 문명 속에서 죽음의 도로로 바뀐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해마다 교통사고로 약 100만명이 숨지고 부상자는 약 5천만명 정도가 발생한다. 1차 세계대전이 4년 4년개월동안 약 930만명 사망, 2300만명이 부상을 입었다. 베트남 전쟁은 전쟁기간 약 20여년동안 사망 250만, 부상 1500만명에 이른다. 베트남전쟁이 1차 세계대전보다 훨씬 치열하고 길었음에도 적은 사망자가 난 것은 20세기초반보다 의약품, 응급처치기술, 헬기 등 응급의료장비가 월등했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21세기 첨단응급의료시스템에서 해마다 1백만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한다는 것은 1차 세계대전 당시였다면 그때보다 훨씬 많은 사망자가 생긴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 지금 우린 거리에서 자동차와 자동차, 자동차와 사람과의 세계전쟁을 치루고 있는 셈이다. 단지 총칼과 대포로 싸우지 않을 뿐.

길은 단지 오고가는 곳 일뿐 아니라 동시에 사람들의 확대된 생활공간이고 커뮤니케이션의 장소였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훌륭한 놀이터였었다. 어린이들은 가장 좋은 놀이공간의 하나였던 길을 차츰차츰 자동차에게 빼앗겨 어느새 길에서 어린이들이 노는 것은 금기시되게 이르렀다. 그들의 놀이터였던 공터, 들판들까지도 자동차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모두 주차장으로 바꾸어버렸고 결국 아이들에게 남은 공간은 집을 제외하고는 ‘어린이놀이터’ 밖에는 남아있지 않게 된 것이다. 또한 그 ‘어린이놀이터’는 겨우 법적 설치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블록개발할 때 귀퉁이에 만들거나 해서 슬럼화하거나 아예 방치되어 버리기가 일쑤다.

단군이래로 어린이가 집앞에서 놀지 못하는 세대가 언제 있었던가. 무엇이 문명이고 무엇이 야만인지 헷갈린다. 어린이 사망사고 1위는 단연 보행중 교통사고다. 이중 학교주변보다 생활도로상에서 일어나는 교통사고가 대부분이다. 어린아이들에게조차 자신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것을 강요하기에 이르렀다. 걸어다니면서 장난치거나, 뛰어다니지 못하고, 튀어나오면 안된다고 하면서 아이들의 자연스런 행동유형을 억제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누가 어린이들에게 사방이 위험한 장소로 변하도록 허락했는가. 유아,어린이 사망원인 1위는 단연 교통사고다. 해마다 1천여명의 어린이들이 죽고, 몇 십만명이 부상당하는 상황에서도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가해자인 어른들의 암묵적인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어서 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걷는 것이 주된 형태였던 도시가 자동차가 움직이기 편리하게 만듬으로써 점점 거대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도시가 보행의 규모에 맞게 설계되는 게 아니라 자동차의 통행규모에 맞게 설계되면서 점점 보행자가 설 공간이 줄어들었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남는 것이다.

학교나 공원, 물건 하나를 사는 것까지도 자동차를 필요로 하게 되고, 관공서, 목욕탕, 병원과 같은 시설 또한 자동차로 움직여야만 가능하게 되는 공간구조를 갖게 된 것이다. 이런 구조가 극대화된 사회가 아마도 미국사회일 것이지만 한국의 많은 도시의 경우도 이런 팽창된 도시 구조를 갖고 있다.

며칠전 필자는 가까운 지인인 젊은 대학교수가 횡단보도를 건너다 자동차에 치여 숨지는 사건을 접했다. 부쩍 상가집 조문객이 되는 기회가 많아지는 요즈음 암, 뇌질환, 교통사고로 숨지는 비교적 젊은 고인들을 볼 때 마다 이 시대의 야만, 자동차문명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유럽의 대부분의 도시나 캐나다처럼 ‘차라리 무단횡단을 허하라’ 그것이 도심내에서 자동차를 길들이는 유일한 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