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적 이해관계 앞세워 진보적 경제체제 운영할 수 있는 의식 기초 마련
평화 의제는 이제 대원칙…한반도·동북아 평화 수립 절대필요성은 명약관화
정치공학 유연함 속 대중 관심 정치력으로 전환시키며 결과물 내놓는게 관건

자유주의 세력과도 통 크게 손 잡을 준비 한다면 정세 변모 확신
원칙 위에 방식 유연성 추구하지 못하는 진보는 교조화된 보수세력
진보세력 결집이 모든 것 해결 열쇠 아니지 최소한의 의무이자 출발점

2011년의 정세에는 결정적 관건이 하나 있다. 그것은 진보세력의 결집이 이루어질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다. 이에 따라 올해와 내년의 정치지도는 짐작할 수 없는 격동을 겪어낼 것이다. 그런데 진보진영의 대통합은 그간 말은 이래저래 있었으나 속도나 질감에서 우리 모두를 만족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없다.

연대회의

올 한해 진보진영은 어떤 원칙위에서 누가 함께 할 것인가의 문제를 기본적으로 이명박 정권의 후계체제를 종식시키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는 선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지난 4일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신년하례회에서 참석자들이 떡 케이크를 자르고 있는 모습이다.

어떤 원칙 위에서 누가 함께 할 것인가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이명박 정권의 후계체제를 종식시키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라는 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어떤 원칙과 구호도 공염불에 그친다. 이는 우리가 이미 이명박 정권 아래에서 절절하게 경험해본 바다. 이걸 분명히 보지 못하고 다른 어떤 명분이 우선이 된다면 그것은 지금의 시대가 요구하는 진보의 역량 결집에 실패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물론 진보의 내용이 곧 이명박 정권의 청산과 그 후계체제의 등장을 막는 것으로 완성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런 기초 위에 서 있지 않고서는 그 어떤 화려한 진보의 정책과 내용도 구체적 실현의 길을 찾을 수 없다. 판을 갈아엎지 않고서는 진보정치의 꿈은 뜬 구름이 될 것이 뻔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보진영 내부의 논의는 진보란 그런 것이 아니며, 진보의 원칙과 내용이 보다 먼저이며 이것이 함께 정리되지 못할 경우 장기적 전망은 세울 수 없다는 논리가 펼쳐진다.

#냉혹한 선거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선거 공간이란 냉혹하다. 한국정치에서 선거의 실패는 정치의 실패로 이어지고, 정치적 존재감의 실종으로 결과 되고 만다. 혁명이 아니라면 선거에서 이기는 것은 최우선적 전략의 목표다. 대중들의 의지를 모으고 이것이 표가 되도록 하면서 정치적 존재감을 극대화하는 작업없이 진보정치의 장기적 전망은 현실적 토대를 갖지 못한다. 자기들끼리도 힘을 합치지 못하는 정치적 역량의 수준이면서 어떻게 대중들을 설득하고 복잡하기 그지없는 정세를 뚫어나갈 것인지 대중들은 의심하게 되어 있다.

이 자와는 이래서 싫고, 저 자와는 저래서 싫다면 남은 사람들끼리 어떻게 해보겠다는 것인데. 그렇게 이리 저리 치고 나면 얼마가 남을까? 한꺼번에 진보의 열매를 얻겠다는 것은 망상이다. 최소의 공통점이 있다면 손을 잡고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차이는 일단 존중하면서 정권인수가 성공하는 때부터 여유를 가지고 하나씩 풀어나가야 한다. 물론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정권 인수에 실패하고 나서 겪을 일보다는 훨씬 쉽다.

#정의, 평화, 복지

이제 이 시대의 진보는 어떤 점에서 하나가 될 수 있는가?

첫째, 정의로운 경제 공동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신자유주의의 빈익빈 부익부의 특권적 경제체제는 거부되고 있으며, 공정한 사회의 목표가 하나의 대세가 되었다. 따라서 자본주의 자체의 폐기를 내걸지 않는다면, 일정한 수정작업을 통해 공동체적 이해관계를 앞세워 진보적 경제체제를 운영할 수 있는 의식의 기초는 마련된 셈이다.

둘째, 평화의 의제는 이제 움직일 수 없는 원칙이다. 한반도의 평화, 동북아시아의 평화체제가 수립되지 않는 한 모든 것이 무너진다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군사적 대치와 충돌은 누구도 바라지 않는다. 북한 체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비판, 그리고 북한체제에 대한 현실적 접근은 구별되어야 하며, 그 구별의 목표는 군사적 조처를 최소화하며 평화의 안전장치를 구축하는데 있다.

셋째, 이로써 우리가 지향하는 바는 복지사회다. 이 나라의 특권체제가 청산되고 공동체의 책임이 모두를 구하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최근 복지논쟁이 세금 논쟁으로 변모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의미 있다. “증세”가 부담으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에서, 불균형한 예산구조와 세금제도의 모순을 함께 드러내고 증세로 생기는 부담이 개인이 치루는 비용 이상을 사회적으로 감당해주는 결과로 나타난다면 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령, 사교육비 부담이 한 가족 당 100만원이었는데, 증세액이 10만 원 정도로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면서 공교육의 혜택이 높아지면 이는 이익이 된다. 증세는 부담이 아니라 사비용 감축과 연결된 세금 제도로 인식되는 순간부터, 상황은 달라진다.

따라서 이제 정의로운 경제 공동체,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의 평화체제, 그리고 복지사회를 지향하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우리가 큰 줄기에서 진보라고 이해하고 이를 통해 자유주의 세력과도 통 크게 손을 잡을 준비를 한다면 정세는 변모할 수 있다. 사실 진보진영이 민주당에게 좌향좌를 요구했는데 최근, 그것이 정치적 수사이든 아니든 자세를 바꾸어 나가자 도리어 당황하고 있는 쪽은 진보정당들 쪽이다.

#민주당의 좌향좌, 이거 좋은 거 아닌가?

이건 좀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다. 원조 복지정책 당이 제1야당에게 자칫 밀릴 수 있다는 식의 분위기가 퍼지는 것보다는 “그래 좋다, 분위기 만들어 가자.”하면서 대범하게 대하면서 진보대통합의 의지와 기운을 강화한다면 얼마나 좋은가? 말은 그럴 듯 한데, 내용이 빈약하잖아, 하고 시비만 걸 일도 아니다. 민주당의 경우 정치적 생존력에 대한 만만치 않은 압박 속에서 보폭이 빨라지고 있지 않은가?

이것 따지고 저것 따지면서 하나하나 세심하게 살피는 일도 필요하고, 대중적으로 통 크게 힘을 모아나가는 모습을 과시하는 것도 긴요하다. 언젠가 어느 토론장에서 말한 바 있지만, 한국 정치에 대한 대중들의 판단은 (1)누가 나와? (2)뭘 가지고 나오는데? (3)될 거 같아? 이 세 가지로 압축된다.

이에 대한 대답을 해보자. 후보의 대중적 지명도와 인기를 진보진영이 얼마나 자산으로 가지고 있는가? 정책이 또한 얼마나 대중들에게 알기 쉽고 설득력있게 말해지고 있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들끼리도 힘을 모으지 못하면서 뭘 어찌 하겠는가라는 차가운 시선 앞에서, 우리 되는 사람들입니다, 라고 할 수 있는가?

지역으로 내려가보면, 서민들이 진보정당을 선택하기 보다는 한나라당을 선택한다. 진보정당, 말은 그럴 듯 하지만 예산 하나 따올 수 있나? 이렇게 말하면 진보정당들은 내밀 카드가 취약해진다. 정치에서 몸체가 커지는 것도 중요하다. 몸이 불어나는 것을 보면서 아 저애들 뭔가 일을 저지르겠구나, 하고 관심이 모아지고 그로써 그 관심이 대중적 정치력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 진보 대통합의 정치공학적 판단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원칙을 저버리는 정치공학은 문제가 있지만, 원칙 위에 방식의 유연성을 추구하지 못하는 진보는 이미 교조화된 보수세력이 된다. 그건 민중들의 고통을 풀어내기 위한 의무를 가진 진보정치의 정작의 모습이 아니다. 원칙과 목표는 명확하되, 그것을 추구하는 방식은 유연해야 현실의 다양한 요구와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면서 힘을 집결시킬 수 있다.

그것은 진보의 이탈이 아니라 진보의 진화다. 더는 이런 정권의 등장과 반복을 우리는 용납할 수 없지 않은가? 진보일각에서는 잘 해봐야 또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재판이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간 겪은 것이 있는데 당연히 다르고 혼자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판국에 그렇게만 전망하고 있는 것은 어리석다.

#원칙 있는 유연한 정치공학, 그리고 최소한의 의무란

혹 그렇게 된다면 그걸 또 안에서 밀고 나가면 된다. 그렇게 하다가 실패해도 또 하면서 자꾸 밀고 나가는 것이 진보의 무한한 재탄생과 재구성, 재구축이 된다. 역사의 변화는 오랜 시간을 요구하고 끈질긴 의지를 필요로 한다. 실패한 것도 힘이다. 실패의 경험조차 축적되지 못한 진보는 꿈속에서 헤매는 몽유병 환자가 될 수 있다. 실패를 두려워말고, 해볼 때까지 해보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실마리가 잡히고 미로에서 길을 찾을 것이다.

진보세력의 결집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열쇠는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없으면, 그 다음은 기대할 수 없다. 이것은 진보진영의 최소한의 의무이자 출발점이다. 비빌 언덕이며 희망을 이루어내는 진지구축이다. 더는 미루지 말고, 미적거리지 말자. 강하게 말하면 그건 결과적으로 “이적행위”가 된다. 보다 빠르게 속도를 내고, 대중의 관심을 정치력으로 전환시키며 결과물을 내놓자.

시간이 많지 않다. 4월에 재보궐 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우물쭈물 하지 말고, 치고 나갈 때에는 장작 패듯이 치고 나가는 것이다. 대중들은 그로써 속이 시원해지며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고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보다 분명하게 알게 될 것이다.

김민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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