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조성만의 이름을 알게된 때는 1990년 1월, 추운 어느 날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광주 망월동 묘역을 찾은 날, 겨울이라 일찍 해가 저무는 그 묘역에서 나는 깔끔한 인상의 그를 처음 만났다.

1964년 12월 13일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1988년 5월 15일 서울 명동성당 교육관 옥상 위에서 할복, 투신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조성만. 묘지 앞에 놓은 영정 사진속에서 그의 미소는 잔잔했다. 너무나 많은 이들이 갖가지 이유로 죽임을 당하고, 또 죽음을 선택하는 비극이 계속되던 그 시절. 조성만의 죽음 역시 적지않은 이들에게 크나큰 아픔으로, 그리고 상처로 남아 있다.

그 후 조성만을 다시 만난 곳은 유가협이었다. 1993년 3월, 당시 나는 전국 민주화운동 유가족협의회(약칭 ‘유가협’)의 간사로 일을 시작했다. 유가협은 민주화 운동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열사들의 가족들이 모여 그들이 못 다 이루고 떠난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이루고자 만든 단체였다.

조성만 열사.

그곳에서 다시 조성만을 만났다. 유가협 사무실의 벽면을 가득 채운 열사들의 사진속, 조성만은 온화한 미소를 띄우며 웃는 듯 아닌 듯 그렇게 회색빛 사진으로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정확하게 조성만이 왜 그처럼 짧은 스물 네해를 살고 사진속의 미소로 남았는지 알게 되었다.

인간을 사랑하고자 했던 조성만

1988년 5월 15일 오후 3시 40분경, 서울 명동성당 교육관 옥상에 한 청년이 섰다. 그날은 80년 5월 광주항쟁을 피로 물들인 전두환, 노태우 군사독재정권을 규탄하는 행사가 준비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 행사에 참가한 이들로 분주하던 그 때 청년의 외침이 울려 펴졌다.

“공동올림픽 개최하여 조국통일 앞당기자”
“민주인사 가둬놓고 민주화가 웬말이냐”
“분단 고착화하는 미국놈들 물러가라”

이어 하늘위로 5월 꽃잎처럼 유인물이 흩뿌려졌다. 찰라, 많은 이들이 차마 목울대로 넘어오지 못한 ‘안돼’라는 비명이 터지기 전, 조성만은 칼로 자신의 배를 그어 할복한 후 교육관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비명과 흐느낌, 울부짖음과 충격으로 명동성당 들머리가 들썩였고 또 어떤 이들은 실신하기도 했다.

떨어진 이는 조성만이었다. 그리고 투신과 함께 뿌려진 유인물에는 그가 목숨을 던지며 이 세상에 남기고 싶었던 외침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아멘’으로 시작하는 이 유인물에서 그는 ‘척박한 땅, 한반도에서 태어나 인간을 사랑하고자 했던 한 인간이 조국통일을 염원하며 이 글을 드립니다.’라고 적고 있었다.

신부가 되고 싶었던 조성만이 죽음을 선택한 이유

누군가는 말했다. 왜 죽냐고. 살아서 싸우지 않고 쉽게 목숨을 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결 행위를 찬양하고 미화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도 목청을 드높인다.

그러나 이처럼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그들이 절대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또 다른 깊이가 있다. 그것은 절박함이었다.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 민중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불의한 권력을 참고 보지 못하며 그것에 굴복할 수 없는 뜨거운 마음이 그것이다. 그리하여 누구에게나 단 하나밖에 없는 가장 귀하고 소중한 그것을 바쳐 순교하는 심정으로 이 세상에 단 한마디를 외친 것이 바로 지난날 저 70, 80, 90년대를 관통한 민주화 열사들의 피눈물 행진이었다.

조성만 역시 그러했다. 그는 신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신부가 되지 못했고 심지어 그가 자살했다는 이유로 장례미사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하지만 조성만과 함께했던 많은 이들은 그가 남긴 유서의 마지막 구절을 읽으며 조성만이 또 다른 예수의 길을 걸어갔다고 기억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떠오른 아버님, 어머님 얼굴. 차마 떠날 수 없는 길을 떠나고자 하는 순간에 척박한 팔레스티나에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한 인간이 고행 전에 느낀 마음을 알 것도 같습니다.”

조성만이 떠난 후 새롭게 태어난 조성만의 기록 ‘사랑 때문이다’

2011년 5월, 조성만이 떠나간 후 꼭 스물 세 번째 다시 오는 그 5월이다. 그리고 이 5월에 떠나간 조

성만을 기록으로 되살려 놓은 책이 한권 출간되었다. 조성만 평전 <사랑 때문이다> (오마이북, 저자 송기역).

누구의 일생을 담은 평전이라는 것이 통상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소소한 일상의 삶과 고뇌를 담는 것이 일상적인 형식인데 이 책은 달랐다. 조성만의 죽음 이후 남아 있는 이들의 기억과 상처에 대해 서두를 채웠다. 누군가에게 조성만은 ‘아픔’, 그 자체였으며 또 누군가에는 끝없는 ‘미안함’으로, 그리고 또 누군가에는 기억하기 싫은 ‘망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모두에게 한결같은 공통점이 있었다.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1985년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노래하고 있는 가수 박준의 말이 그것이다.

“그가 떨어진 그 자리에 가면 죄스러워. 조성만이라는 세 글자는 항상 나와 함께 있어. 내 인생에서 예수라는 인물은 신앙의 중심이고 시작이고 끝이야. 성만이의 죽음이 신앙적으로 나에게 준 것이야.”

조성만의 존재가 특별한 이는 또 있었다. ‘길 위의 신부’로 널리 알려진 문정현 신부님이다. 74년 사법살인으로 알려진 인혁당 사건 사형수 8인의 구명과 진실을 위해 온몸을 던져 싸워왔고, 또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내내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반대와 용산 철거민 참사 사건 등에서 싸워온 그가 천주교 영세를 준 이가 바로 요셉 조성만이었다. 그런 문정현 신부가 이 책, 조성만 평전 <사랑 때문이다>에서 고백한다. “(조성만은) 나의 신앙의 스승이다.”

실제로 문정현 신부는 지금까지 개최된 조성만의 추모식에서 늘 "성만이는 저의 스승입니다. 조성만 요셉의 죽음을 시작으로 미국에 대한 의식이 변했습니다"라고 말해왔다.

조성만, 그가 목숨을 끊은 진정한 이유는...

조성만의 외침은 현재 진행형이고 남은 숙제다. 그가 유서에 남긴 남북의 통일은 고사하고 민족의 평화는 더 멀어졌으며 민주주의 역시 묘연해져 버렸다. 이미 스물 몇해나 지난 조성만의 죽음을 왜 지금 다시 우리가 기억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그것이 이미 과거로 끝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가 가야할 길이기 때문이라고 답해주고 싶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대의명분에도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는 안된다고 말하면서 그 자신은 지금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이중적인 모습을 되돌아 보라고 권하고 싶다. 광우병 촛불집회에 참석한 이들에게 무더기로 떨어지는 벌금에 대해, 그리고 삶의 근거인 전세금을 가압류하고 월급을 차압하며 촛불을 든 이들을 압박하는 이 정권의 횡포에 무감각한 우리들의 모습을 반성하자고 말하고 싶다.

그렇기에 여전히 명동성당 교육관 위에 서 있는 조성만은 우리에게 다시 외친다.
“내가 목숨을 끊은 진정한 이유는 바로... 사랑 때문이다.”

고상만 객원기자

고상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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