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이 사람으로 대접받는 군대를 꿈꾼다

고상만l승인2011.07.04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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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투 손실? 놀라운 군의 인명경시 개탄…반인권 행태 '현재 진행형'
군 의료사고 사망? 피해자 68만여 명에 달하는 것 어떻게 설명할지 의아심
당장 정성 쏟지 않으면 불행한 죽음 반복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해야

1990년 12월경이었다. 국가의 명을 받고 군인이 되고자 훈련소에 입소한 첫날, 아직 모든 분위기에 낯선 훈련병들이 강당에서 어색해하고 있었는데, 각 내무반장으로 임명된 선임병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잠시 후. 내무반장 완장을 찬 한 선임병이 "잘 들어라, 몸이 아픈 훈련병이 있으면 앞으로 나온다, 실시!"라고 외쳤다. 순간 망설였다.

사실 그때 나는 허리 디스크를 심하게 앓고 있었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구속된 후 여러 차례 심한 집단 구타를 당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한겨울 차가운 마룻바닥에 모포 하나만 깔고 생활하면서 그런 것인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후부터 아프기 시작한 허리가 입대를 앞두고 말썽이 나고 말았다.

입대하기 하루 전날, 아버지는 그런 나에게 검은 고무줄로 꽁꽁 묶은 MRI 촬영 필름을 말아서 건네주었다. 처음엔 그게 뭐냐고 하니 허리 디스크를 입증할 기록이라면서 "잊어버리지 말고 꼭 갖고 있다가 몸이 아픈 사람을 찾을 때 제출하라"고 하셨다.

아프다는 훈련병을 군홧발로 짓밟던 군대의 기억

나갈까 말까. 망설이던 중이었다. 이왕 들어왔는데 처음부터 아프다고 하면 뒤로 빼는 것 같아 싫은 느낌도 있었고, 또 MRI 촬영 필름까지 가지고 나가 보여주는 것도 뭔가 부끄러웠다. 놀라운 상황을 목격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10여 명의 훈련병이 아프다며 앞으로 나간 순간, 선임병들의 무자비한 폭력이 시작되었다. 군홧발로 걷어차고 주먹으로 치고... 온갖 욕설과 폭력 앞에 무너지는 그들을 보며 나와 함께 있던 훈련병들은 큰 충격과 공포, 혼란감으로 흔들렸다.

"이 새끼들이 빠져서 아프다고? 안 맞아서 아프지? 이따위 정신 상태를 가지고 입대했으니 군대가 썩었지, 이 새끼들아! 어디 아프다고 계속해봐!"

아프다고 나간 10여 명이 그렇게 처참하게 얻어맞고 짓밟히던 그 순간을 나는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면서 잘못했다고, 살려달라고 호소하던 그 친구들. 나는 그 후로 훈련소에서 아프다고 한 훈련병을 본 기억이 없다.

20년도 더 지난 이 사건은 지금 생각해볼 때 '말도 안 되는 사건'이어야 한다. "정말 무식한 그때는 그랬지"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같은 군대에서의 반인권 행태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임을 뉴스를 통해 접하면서 나는 잊었던 내 기억 속 깊은 곳에서 숨어 있던 이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지난 2월 27일 신병 훈련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정아무개(20) 훈련병 사건은 그래서 나에게 충격적이었다. 나도 중이염 증세로 고생한 적이 있어 그 고통이 얼마나 극심한지 잘 알기에 더욱 그렇다.

온종일 흐르는 고름과 먹먹함, 그리고 뇌를 찌르는 것처럼 전달되는 통증. 문제는 아픔을 호소하는 훈련병에게 제대로 된 치료는 고사하고 꾀병이라며 오히려 온갖 욕설과 인격적 모독을 가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군 당국의 처사에 기성세대로서 나는 너무나 미안하다.

정 훈련병이 숨진 후 그가 입고 있던 옷에서 발견되었다는 쪽지 형태의 유서 내용은 차마 다 읽기도 전에 눈을 젖게 한다.

"엄마, 자랑스럽고 듬직한 아들이 되지 못해서 미안해요. 2월 4일부터 귀가 먹먹했는데 아직 안 나았어요. 진짜 불편해서 의무실과 병원을 자주 갔는데, 이젠 아예 꾀병이라고 합니다. 혹시나 식물인간이나 장애인 되면 안락사해 주세요. 너무 슬퍼하지 마시고 원래 없는 셈 해주세요. 정말 미안해 엄마. 사랑해."

이 유서를 읽었을 부모의 심정을 생각하니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 미안해서, 그 스무 살 청년의 절망과 고통에 나는 뭐라고 위로해줄 말을 찾을 수가 없다.

"안락사 해달라"는 정아무개 훈련병...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1999년 1월이었다. 당시 나는 판문점에서 의문사한 김훈 중위 사건을 전면 재조사하기 위해 구성된 특별합동조사단(단장 양인목 중장)의 민간 측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당시 같은 자문위원이었던 이덕우 변호사와 함께 김훈 중위 관련 수사기록을 열람하기 위해 국방부 특조단 사무실을 출입했다.

그런데 어느 날, 못 보던 현수막이 국방부 출입구에 게시되었다. 내용이 "비전투 손실 예방의 달"이었다. 그 뜻이 묘했다. 무슨 뜻일지 궁금했으나 도대체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놀라웠다.

'비전투 손실'이란 말이 전투와 무관한 사고나 자살로 숨진 경우를 말하는데, 인간의 죽음을 '손실'이라는 표현으로 '처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를 현수막으로 게시하고 있는 국방부의 행태는 그야말로 문화적 충격, 그 자체였다.

이런 군의 인명 경시 풍조를 확인한 사례는 또 있었다. 역시 김훈 중위 사건과 관련한 일이었다. 김훈 중위의 사망 이유를 법의학적 관점에서 토론하여 사실을 규명하자고 천주교 인권위원회 차원에서 '법의학자 공청회'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공정한 토론회를 위해 서울대와 고려대 소속의 저명한 법의학자를 초청하고 우리 측에서도 재미 법의학자인 노여수 박사를 초대했다. 그리고 이에 대해 국방부 측의 견해도 듣는 것이 공평하다고 생각해 여러 차례 국방부 측 관계자와 통화를 시도했을 때였다.

수차례 공문과 전화로, 유족에게는 고인이 어떤 경위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권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방부에서도 책임 있는 인사가 토론회에 참석해 줄 것을 호소하던 내게 대령 계급의 상대방이 했던 말을 잊을 수가 없다.

"이것 보세요, 고 선생님. 전쟁이 나면 별 달고 있는 장성들도 수도 없이 팡팡 나가떨어지는데 그까짓 중위 하나 죽은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이렇게 난리를 피웁니까. 내 보고 있기가 안타까워서 그런데 이제 그만 좀 하세요. 한심스러워서 보고 있을 수가 없어요."

그 후 내가 그에게 뭐라고 대꾸했는지는 솔직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매우 흥분한 상태였다는 점 외에는.

중위 하나 죽은 게 뭐 그리 대수냐고?

비극은 여기서 멈춰야 한다.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이 땅의 자식들을 그들 표현에 따르면 '손실'로 처리되어야 하는가.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입만 열면 강한 군대를 말한다. 그리고 강한 군대를 만들기 위해 지금까지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결정권과 지휘권을 대통령으로부터 위임받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잇따르는 부대 내 의료관련 사망 사건에 대해 김관진 장관이 언급한 것은 "(잇단 군내 의료사고에 대해) 국민에게 죄송스럽다"며 "군 의료체계와 관련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 차원의 개혁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말한 정도이다.

국방부에서 볼 때 최근 빈발하고 있는 군 의료사고 사망자나 피해자가 68만여 명(2008년 기준)에 이르는 병력에 비하면 말 그대로 한줌도 안 되는 수치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일까? 군 의료 체계 개혁은 당연히 군이 앞장서 주도해야 한다. 그런데 국방부 수장은 스스로 다그치는 정치인 앞에서 "정부와 국회 차원의 개혁에 적극 동참한다"는 주객전도식 황당한 답변을 했다.

인권운동가 입장에서 나는 군대가 인권의 개념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이라도 변하지 않는다면 군은 강한 군대도, 더 이상 신뢰받는 '국민의 군대'도 아닌, 그저 우리 자식들을 괴롭히는 무시무시한 공포 집단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관진 국방장관, 제 자식 챙기듯 장병 보살피라

안타깝지만 나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더 이상 '군 복무가 신성한 국민의 의무'라고 말 할 수 없다. 최근 일련의 사건을 두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군을 가지 않는 것이 최고'라는 인터넷 댓글에 대해 비난하는 이들보다는 찬성하는 의견이 더 많은 것을 보며 국방부 고위 관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한편 지난 5월 16일, 김상기 육군참모총장이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주요지휘관회의에서 "장병의 건강을 지키는 일은 튼튼한 국방을 유지하는 전제이자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얻는 핵심"이라며 각별한 대책을 촉구했다고 한다. 나는 이런 육참총장의 '각별한 지시'가 일선에서 어떻게 지켜지고 있는지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제 자식 챙기듯, 지금 당장 정성을 쏟지 않으면 정모 훈련병과 같은 불행한 죽음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소중한 자식을 국가와 국방부 장관을 믿고 군에 보냈는데 이처럼 허망한 죽음의 길로 내몬다면 누가 제 자식을 군에 보낼 수 있단 말인가. 징병제가 아닌 지원제라면 아마 대한민국 군대는 제대로 된 편제도 하기 힘들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짜 위기임을 국방부 장관은 알아야 한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내가 바라는 꿈은 '누구나 가고 싶은 군대 만들기'다. 때리고 욕설하고 윽박지르고 얼차려 주는 그런 군대가 아니고, 굴착기로 반나절이면 다 하는 일을 삽자루 하나 주고 일주일 내내 작업 시키는 한심한 군대가 아닌, '속된 말로' 대통령의 자식보다 사병을 더 아껴주는 '인권 군대' 말이다. 적어도 내가 꿈꾸는 나라는 바로 이런 나라다. 이 꿈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 나는 만인과 함께 꿈꿀 것이고 그 꿈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내가 꿈꾸는 나라를 위해서.


고상만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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