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선택과 시민사회

"개인자격 아닌 단체차원 지지 선언할 시점" 김주언l승인2011.09.23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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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지향 갖춘 후보 공개적 지지는 아무 문제없어
‘시민단체 엄정 중립’ 보수주장은 정치운동 막으려는 술수

“우리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정치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4대강 사업도, 용산 참사도, 무상급식 문제도 모두 마찬가지다.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조금만 다른 리더십을 가지면 얼마든지 좋은 사회로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은 이미 참여연대 때부터 했다. … 많은 사람들이 왜 시민운동 영역에 머물러 있느냐고 물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정치도 사회도 후퇴하고 민생은 도탄에 빠지는데 당신만 혼자 고고하게 손에 물 안 묻히고 사느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박원순 전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지난 21일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시민들과 함께 서울시장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고고하게 손에 물 안 묻히고 사느냐?

그동안 끈질긴 정계입문 권유를 뿌리치고 시민운동에 머무르기를 고집했던 박원순 변호사의 서울시장 출사표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독재정권 시절로 역주행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시민사회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권력의 가혹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중립을 금과옥조처럼 지켜왔던 시민운동진영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온 것이다. 시민사회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계적 중립’이란 방관자적 입장에서 벗어나 스스로 몸을 던질 줄도 알아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래서 박 변호사의 출사표는 시민사회에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박 변호사는 우리 사회에 시민운동의 뿌리를 내린 1세대 시민운동가다. 언론인 김중배 선생 등과 함께 참여연대를 만들어 시민사회를 정착시키는 데 커다란 공헌을 했다. 그는 시민운동을 한 단계 끌어올린 인물로 평가된다. 참여연대를 그만둔 뒤에는 ‘아름다운 재단’과 ‘아름다운 가게’를 설립하여 우리 사회에 새로운 기부문화를 정착시켰다. 이어 그는 ‘21세기 실학운동’을 기치로 내건 희망제작소를 설립, 시민의 다양한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여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정권 비판세력은 언제까지 좌파인가

그는 시민운동가 이전에는 잘 알려진 인권변호사였다. 서슬이 시퍼렇던 전두환 정권 시절 권인숙 성고문사건과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보도지침 사건 등 굵직굵직한 사건의 변호를 맡았다. 그는 수임료 한 푼 받지 않고 독재정권의 폭압에 맞서 싸운 민주투사들을 위해 궂은 일을 자처했다. 특히 독재정권이 비판세력의 입을 막기 위해 남발한 국가보안법 위반자들의 변호를 맡으면서 목도한 국가폭력과 국가보안법의 문제점을 망라한 책 ‘국가보안법’ 1, 2, 3권을 출간하기도 했다. 2006년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 부문을 수상한 것은 이러한 노력의 당연한 결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기자회견 및 성명발표, 집회시위와 제도개선 및 입법청원 등을 중심으로 한 시민운동은 이명박 정부 들어 한계에 부닥쳤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국가운영에 반영하는 거버넌스를 적극 도입했다. 시민의 정치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시민사회를 적으로 간주했다. 자신을 비판하는 세력을 ‘좌파’로 몰아붙이며 일방적 독주체제로 후퇴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시민사회 상징적 인물인 최열 환경재단 대표와 박원순 변호사를 파렴치범으로 몰아갔다. 검찰은 환경운동연합의 회계처리를 문제삼아 최 대표를 법원에 넘겨 아직도 재판이 진행 중이다. 재판과정에서 검찰의 기소내용이 대부분 무혐의로 밝혀졌으나 최 대표는 아직도 곤욕을 치르고 있다. 박 변호사에 대해서는 ‘먼지털기식 수사’를 벌였으나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 국정원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급기야 박 변호사는 국정원의 사찰을 폭로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는 더 나아가 시민단체들을 고사시키려 했다. 10년 동안의 민주정부에서 공고화한 것으로 여겨졌던 ‘87년 체제’가 한 순간에 무너진 것이다.

거버넌스 구축은 시민단체 목표

시민사회는 출로를 찾아야 했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 불어닥친 ‘광우병 촛불시위’는 시민운동에 새로운 자극제가 됐다. 시민사회는 이제 기계적인 정치적 중립만이 최고의 가치가 아니란 점을 인식하게 됐다. 더욱 적극적인 정치운동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시민단체들이 ‘생활정치 운동’을 내걸고 내년 총선과 대선에 대비하여 ‘내가 꿈꾸는 나라’를 결성하려는 움직임도 본격화했다. 이 시점에서 시민운동의 맏형으로 일컬어지는 박원순 변호사의 출사표가 던져진 것이다

그렇다면 시민사회는 박 변호사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시민사회 진영은 박 변호사를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박 변호사는 시민단체들이 추구해온 목표를 서울시정에 반영할 수 있는 후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시민단체들은 단체 차원에서 대놓고 지지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개인 자격으로 지지모임을 구성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시민사회 인사 250여명은 ‘(가)서울시장 선거 박원순 시민후보 추대모임’을 발족해 활동에 들어갔다.

이제 시민사회도 개인 자격이 아닌 단체 차원의 적극적 지지도 필요한 시점이 됐다. ‘시민단체의 엄정한 중립’을 주장하는 보수언론의 주장은 시민단체의 정치운동을 막으려는 술수에 다름 아니라는 점을 깨달을 때도 되었다. 단체의 목표와 같은 지향을 갖춘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다는 말인가. 박 변호사가 시장에 선출 된 이후 만의 하나라도 초심을 잃고 시민사회를 배반한다면 퇴진운동을 벌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시민사회와 함께 우리가 꿈꾸는 서울을 가꾸어 나가도록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이 시민단체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배반한다면 퇴진운동 벌일 수도

“오랫동안 가난한 사람과 부자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생태와 녹색이 숨 쉬는 도시, 사람의 냄새가 풍겨오는 거리, 문화와 예술이 삶 속에서 녹아있는 생활공간, 역사의 향기와 삶의 기억들이 살아나는 고향 같은 서울을 꿈꾸어 왔다. 요란하게 외치지 않아도 돋보이고, 누가 꾸미지 않아도 아름다운 그런 서울을 꿈꾸어 왔다.” 박 변호사의 출사표 중 일부이다. 박 변호사와 시민사회가 함께 꿈꾸어왔던 서울이 눈 앞에 펼쳐질 날을 기대한다.


김주언 편집인

김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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