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중심시민사회운동을”

'당연의 세계 낯설게 보기' 정수복 박사 대담 정리=전상희l승인2007.09.03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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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NGO’ 마인드는 지적·도덕적 추락… 전문화·정책입안도 한계
한국사회로부터 비판적 거리 확보 위해 ‘방법론적 단절’ 단행을


스스로를 ‘자유롭게 떠도는 지식인(freely floating intellectual)’이라고 일컫는 시민운동가 정수복 박사(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초청연구원)가 600쪽 분량의 방대한 저서를 들고 한국을 찾았다.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생각의나무)이 바로 그것이다. 부제는 ‘당연의 세계 낯설게 보기’. 기존의 ‘한국인론’과 달리 정수복 박사는 이 저서에서 총체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인의 감추어진 초상화를 그려내고 있다. 한국사회의 관습, 관행, 습관, 가치관이 언제 어떻게 형성됐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원리를 밝힌 것이다. 특히 정 박사는 한국인 공통의 사고방식을 ‘문화적 문법(cultural grammar)’이라는 용어로 정리했다. 우리가 말할 때 문법을 의식하지 않고 말하듯, 의식하지 않고 행위하게 하는 것이 바로 문화적 문법이라는 것이다. 정 박사는 특히 정치지향적인 한국시민사회운동을 같은 맥락에서 질타했다.
<시민사회신문>은 지난달 29일 본사를 내방한 정수복 박사와 본지 설동본 편집국장과의 아주 특별한 대담을 마련했다. 문화적 문법의 부정적 효과에 관심을 집중하면서 이러한 문법들이 근대를 만나면서 생긴 ‘일그러진 근대’의 극복 방법을 모색해보고 한국시민사회운동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해 본다./편집자주

▲설동본 편집국장(이하 설)=
최근 신정아 사태로 불리는 허위학력 논란과 43일만에 막을 내린 아프간 피랍 사건으로 사회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하지만 이러한 사태를 부른 근본적 원인과 치유방법이 미미한것도 문제다. 우연이 일치인가. 정 박사께서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이라는 저서에서 황우석 파동과 함께 이러한 현상을 말하고 있다.

“2007년은 도덕적 위기”

▲정수복 박사(이하 정)=책에서 황우석 파동을 언급해서 그런지 신정아 사태가 터지자마자 매체들이 관심을 보였다. 황우석 박사는 자연과학계, 신정아씨는 문화계, 지광스님은 종교계를 대표한다. 한국의 정신·문화·윤리를 다루는 영역이 부패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1987년 정치적 위기에 이어 1997년이 경제적 위기였다면 2007년은 도덕적 위기다. 이번 사태는 학벌사회의 폐해와 함께 ‘근거없는 낙관주의’, ‘속도지상주의’, ‘수단방법중심주의’ 등 문화적 문법의 파생적 문법과 같이 작용해 발생했다. 자기능력 이상의 것을 최대한 빨리,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이뤄야 한다는 생각이 학력위조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런 문법들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한 누구나 황우석·신정아 씨와 지광스님이 될 수 있다.

▲설=아프간 피랍자들이 무사히 풀려났다. 하지만 기독교에 대한 비판여론이 높다. 아프간 사태에서 확인된 한국 선교활동의 한계를 한국 기독교의 특성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정=서양에서 들어온 기독교는 개인을 중시하고 현실을 부정하는 논리인 반면 한국문화의 사상적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무교(巫敎)와 유교는 인간과의 관계와 현실을 중요시한다. 또한 무교와 유교는 교묘하게 얽혀져 무교·유교응결체로 작용하는데 근대사회가 되고 새로운 문화적 문법을 만들려면 이 응결체를 깨야 한다. 문화적 문법의 근본적 문법이 대개 이 응결체에서 나왔다. 하지만 근대화 과정에서 기독교가 들어올 때 이 응결체를 깨지 못하고 고스란히 안고 기독교를 덮어 씌워버렸다. 그 결과 무교·유교응결체를 핵으로 하는 한국화된 기독교가 되면서 여기에 자기민족중심주의나 감정우선주의 등의 파생적 요소도 결합해 한국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다. 이런 성격이 그대로 해외선교에도 반영됐기 때문에 타종교에 대한 이해부족 등의 한계 등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근복적·파생적 문법을 깨라”

김상택 기자
정수복 박사

▲설=정 박사께서는 문화적 문법을 “사회구성원들의 행위의 밑바닥을 가로지르는 공통의 사고방식”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을 12가지로 정리하면서 근본적 문법과 파생적 문법으로 나눴는데, 말하자면 계층, 성별, 나이, 직업, 교육수준, 출신지역, 정치적 입장에 관계없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유할 수 밖에 없는 공동의 문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정=그렇다. 문화적 문법은 우리가 말을 할 때 문법을 의식하지 않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속에서 행위할 때 무의식적으로 행위하는 것으로 무엇인가 저 깊은 곳에서 우리의 행동을 막는 것이다. 현세적 물질주의, 감정우선주의, 가족주의, 연고주의, 권위주의, 갈등회피주의 등이 근본적 문법의 구성요소다. 이는 서구의 종교와 이념이 유입되기 이전에 한국의 무교, 도교, 불교, 유교 등 종교사상과 문화전통을 바탕으로 형성된 문법이다.

파생적 문법은 1876년 일본과 조일통상조약을 맺으면서 개국을 했을 때부터 130년동안 만들어진 문법들로 감상적 민족주의, 국가중심주의, 속도지상주의, 근거없는 낙관주의, 수단방법 중심주의, 이중규범주의 등이 있다. 일본이 근대문명을 받아들여 한국을 압박하자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부국강병하기 위한 역사적 상황이 있었고 그렇게 해서 파생적 문법이 만들어졌다. 과거의 근본적 문법을 해체하고 부정해 전근대를 뛰어넘었어야 하는데 그 문제점들을 고스란히 안고 새로운 것이 들어와서 파생적 문법이 발생하게 됐다.

“양복입고 상투 튼 한국 근대화”

▲설=130년 전 주권을 잃었으니 국가가 중심이 돼야 했고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선 민족의 순수성과 우수성을 강조해야 했던 것 아닌가. 해방 이후 경제 살리기에 정부가 중심에 섰던 것처럼 시기마다 필요한 문법들이 있었고 제 역할을 했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문법이 담당했던 역할은 줄어들고 부작용이 커져가고 있다. 민주화, 세계화, 남녀평등, 남북평화 담론의 시대가 되면서 과거 문법이 현재에 뒤쳐져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고 새롭게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인데 여기서 서구사회의 문화적 문법이 우리와 차이가 나는 지점에 말할 필요가 있겠다.

▲정=근본적인 차이는 개인주의 발달에 있다. 서구사회는 중세와 전근대사회를 벗어나기 위해 르네상스가 있었고 종교체계인 가톨릭을 깨기 위해 종교개혁이 있었다. 계몽주의 사상으로 인권과 과학과 합리주의와 개인주의 사상이 형성됐고 이를 바탕으로 왕권을 부정하고 공화주의와 민주주의 사회를 만든 정치혁명인 프랑스 혁명이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전근대적인 문화적 문법을 해체시키고 인본주의적, 개인주의적, 합리적인 문화적 문법을 만들어 교육과 정치, 법, 제도에 실현시켰다. 한국의 경우엔 겉으로만 근대화 됐다. 정치적으로 민주주의, 경제적으로 시장경제를 했을 뿐이다. 양복입고 상투 튼 꼴이다.

▲설=정치가나 기업인들은 문법을 활용해서 권력을 쥐고 이득을 얻어왔기 때문에 문화적 문법을 고칠 생각이 없었던 게 큰 병폐인 것 같다. 정신·문화·예술·종교 쪽 사람들이 문법을 고쳐 나가야 한다. 과거 사고방식과 세계관을 비판하고 해체한 다음 새로운 것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한국의 지식인, 종교인, 문화인들은 한국의 전근대성과 봉건성, 낙후성에 편승해 이를 활용함으로써 현세적 이익을 추구했다는 판단이다. 이제 이러한 문화적 문법의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얘기해보자.

“개인주의가 문화적 문법 해체 핵심”

▲정=한국전쟁 이후 우선 물질적으로 잘 먹고 잘 살자는 생각으로 온 사회가 경제적 중산층을 목표로 삼았다. 80년대 이후엔 독재 체제 하에서 생각의 자유를 갖지 못하니까 사회는 정치적 시민층을 꿈꿨다. 이제는 우리가 인간답게, 의미있게 살려면 문화적 교양층이 돼야 한다. 사람들이 이 세 가지의 균형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문화적 문법을 고쳐가는 계기라고 생각한다. 그 동안 한국사회가 있었던 문화적 교양층을 살려 문화적 문법의 변화를 주도할 계층은 특히 신세대와 여성이다. 신세대는 개성, 즉 자기다움이 뭔지 아는 개인주의 세대다. 아직 소비영역에서만 개성이 강조되는데 신세대들이 자기 삶의 영역에서 개성을 찾는다면 문화적 교양층이 된다. 여성의 경우엔 가부장 사회에서 억압받고 불평등하게 대우받은 경험이 있어서 다른 영역의 불평등을 이해하고 해결해나가기 위해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신세대·여성이 문화적 문법 변화 주도할 '문화적 교양층'
         시민운동은 삶을 바꾸는 운동… 세속적 물질주의 깨야
         개인 특성 존중 방향으로 사회운동 패러다임 전환 시급


▲설=정 박사께서는 문화적 문법을 해체하기 위해선 개인주의가 핵심이라고 설파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대체로 개인주의란 말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인다. 특히 한국은 유교사상에 오랫동안 영향을 받았는데 유교는 사람간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나의 의미를 발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개인은 부정적인 느낌을 준다고 생각한다.

▲정=근대사회로 넘어오면서 한국의 지식인들이 유교를 비판하지 않았고 사회가 빨리 바뀌다보니 혈연, 학연, 지연에 기대서 개인보단 인맥을 맺어 안정적인 자리를 확보하느라 급급했다. 가정과 학교, 미디어, 종교 등 모든 사회영역이 개인보단 집단에 초점을 맞췄다. 개인주의에 대한 부정적이고 소극적 의미만 알았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개인주의 논의가 없었다. 헌법과 민주주의 등 서구의 형식은 받아들였으면서 그 본질인 개인주의에 대해서는 저항이 완강했다.

“시민운동, 개인주의 발달 필수”

▲설=이런 문화적 문법이 정치, 경제 뿐 아니라 시민운동에도 영향을 미친 게 문제 아닌가. 시민운동의 힘은 도덕성에 기반을 둔 자기 희생에 있는데 권위주의와 속도지상주의 등의 파생적 문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시민운동영역은 그래도 다른 영역보다 지적, 도덕적 자원의 재창출이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에 내부적인 성찰과 반성 작업이 시급하다고 보겠는데 지금 정 박사께서는 문화중심 시민사회운동으로의 이동을 얘기하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정=한국 사회운동은 60년대 이후 늘 정치지향적이었다. 국가권력을 제대로 만들면 사회가 잘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국가권력이 민주화되고 정부에서 사회운동이 주장한 내용을 제도로 만들어냈다. 시민운동 세력의 아이디어와 대안 제공 기능은 떨어지고 지적, 도덕적 자원은 고갈되고 있다. 12가지 문화적 문법이 계속되고 있는데 시민사회는 이를 깨트리는 근본적인 변화를 해야 한다. 시민사회운동 세력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다른 영역을 감시하는 기능을 살려야 한다.

그 동안 시민사회운동은 정치 중심으로 정책 비판에 힘쓰느라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별로 만들지 않았다. 시민참여 유도를 위해 최대한 힘쓰고 지적, 도덕적 순수성에 대해 다른 집단보다 더 민감하게 생각하고 경계해야 한다. 또한 정부나 지자체 예산 감시 등 공적영역 활동을 해왔는데 이와 함께 사적영역의 변화운동도 같이 해야 한다. 근대사회로 가기 위해선 개인주의의 발달이 필수적이다. 시민들이 스스로에 대해 고민하게 하고 자기답게 행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민운동이라는 것이 서명 받는 것 정도로는 한계가 있다. 삶에 지친 시민들에게 다르게 살 수 있는 희망을 보여주고 사람간의 진정한 만남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사적영역 변화운동으로 가라”

김상택 기자
설동본 편집국장
▲설=개인특성을 존중하는 시민사회운동으로 모두의 다양성과 개성이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인 듯 싶다. 하지만 사회운동과 공동체운동은 모두 집단의 논리에 맞춰져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와 연동해 한국 시민운동이 지금 위기라고 말하는데 문화적 문법을 깨트리면 위기 극복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정=개인의 특성보다 앞서는 운동은 지속되지 못한다. 개인의 특성을 존중해야 하고 차이점을 대화를 통해 인정하고 획일주의에서 벗어나는 다문화 시대로 들어가야 한다. 시민운동 위기론의 대안들로 영역별 전문화, 정책 입안 능력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는 해결 안 된다. 정부나 연구소에서 할 일인데 그 동안 못했기 때문에 시민운동영역이 했을 뿐이다. 전문화보다는 내부로 들어가 지적, 도덕적 헤게모니 영역에서 역량 강화에 힘써야 한다. 지적, 도덕적 역량이 고갈됐는데 전문화해서 무엇하나. 시민단체는 어디까지나 정부나 기업에서 보지 못하는 문제제기를 자꾸 해야 한다.

▲설=시민없는 시민운동이란 비판이 회자되는데 문화적 문법과 시민사회운동이 변화할 때 시민이 어느 정도 호응해줄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정=지금까지 시민운동은 정부 정책 등에 대해 비판하고 시민들을 서명 등에 동참시키면서 시민들을 지원세력으로 활용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동원이 아닌 직접 참여의 주체가 돼야한다. 15명 정도가 정기적으로 만나 사회의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자신의 삶에 대해 대화하고 나누는 자리를 시민운동이 만들어야 한다. 큰 규모의 교육프로그램보다 소규모 프로그램을 1년 이상 지속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 이를 통해 시민들은 성찰적 개인이 될 수 있고 그들로 인해 성찰적 시민운동이 될 수 있다.

“긍정·희망운동을 말하자”

▲설=당연의 세계를 낯설게 보지 않으면 한국사회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제대로 알 수 없다고 말한 게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정 박사께서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을 ‘낯설게 보자’는 것은 우리가 사는 방식과 우리 사회가 움직이는 방식을 곱씹어보자는 뜻으로 해석된다. 특히 이를 위해 한국사회로부터 비판적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방법론적 단절’을 말하고 있는데 시민사회운동진영에는 어떻게 접목시킬수 있겠는가.

▲정=정치중심 시민운동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정치하려고 시민운동하는 사람들이 빨리 나오고 문화중심으로 시민운동 하려는 사람이 많이 들어와야 한다. 시민운동 할 사람은 세속적 물질주의, 한 자리 얻기 위해 하지 말고 다른 삶을 꿈꾸며 끝까지 하자고 말하고 싶다. 시민운동은 삶을 바꾸는 운동이다. 내 삶을 바꿔야 남을 바꿀 수 있다. 평소 운동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격려하면서, 돌보면서, 친밀한 관계를 지속하면서 함께 가야 한다. 물론 사람들이 속한 조직이다 보니 권위적 관계도 있을 수 있지만 기업과 정부는 권위적 관계가 전부라면 시민운동은 그 이상의 것이 있다.

매일 내 삶이 새로워지는 운동을 하고 서로 주고받으며 삶을 나눴으면 좋겠다. 다른 집단이 잘 하지 못한 것만 지적하고 비판하면 사람이 피폐해진다.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운동을 하면서 나와, 남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사진=김상택 기자 oopsfeel@ingopress.com


정리=전상희 기자

정리=전상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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