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장 노동시간, 무엇이 문제인가?

미국 잡지 <포브스>는 최근 한국 근로자의 노동시간이 연평균 2,357시간으로, OECD 32개국 중 최고라 발표했다. 1,391시간을 일한 네덜란드 근로자에 비해 한국은 1년에 966시간을 더 일한다. 사실, 이는 별로 새롭지 않다. 이미 예전부터 악명 높았기 때문이다. 정부도 오명을 벗기 위해 근로기준법을 바꾸면서까지 2004년부터 점진적으로 주40시간제를 정착시키려 했다. 이제는 대부분 기업에서 주5일제 실시가 기본 원칙이다.

문제는, 아무리 제도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주5일제’를 실시해도 그 제도와는 무관하게 실제 현실이 엉뚱하게 흘러간다는 점이다. 앞의 <포브스>지가 주목한 것은 한국의 조직 문화였다. 그것은 한마디로, 한국 기업에서는 “상사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실, “저녁 6시 칼 퇴근을 한다는 것은 승진을 포기한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포브스>는 ‘의무휴가’ 제도를 법적으로 강제하는 유럽의 예를 들어 한국도 그런 변화가 필요하다고 시사한다. 일례로, 영국은 20일, 프랑스는 35일을 ‘의무휴가’로 쓰며, 이를 시행하지 않는 기업은 법적 처벌을 받는다.

미국의 친 자본 잡지인 <포브스>가 왜 한국 노동자들의 장시간 근로에 대해 걱정을 하는지 그 동기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최근 한미 FTA에 대한 날치기 통과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한 시점에서 이런 기사가 나온 것 자체가 흥미롭다. 게다가 한국의 노동법이나 모든 법 제도 자체가 노동자들에겐 예리한 칼이지만 자본가에게는 솜방망이인 점을 본다면, <포브스>의 제안은 별 실효성이 없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과연 무엇인가?

우선, 한국의 장시간 노동 체제를 강요하는 요소로, 앞의 조직문화보다 더 심층에 사회구조의 차원이 있다. 장시간 노동 없이는 생존이 힘겨운 사회구조 자체가 문제다. 일례로, 현대자동차에 연봉 5천만 원이 넘는 노동자가 많다고 하지만 그 연봉의 절반은 상시적인 잔업, 야근, 특근 등에 힘입은 것이다.

시간당 기본급이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낮은 상태에서 초과노동을 않으면 주거비, 육아비, 교육비, 의료비 등을 충당하기 어렵다. 결국, 노동자들은 휴가나 여행, 가족과의 대화나 친교 등 온갖 인간적 삶을 희생한 대가로 좀 더 많은 임금을 받을 뿐이다. 물론 사무실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경우, ‘6시 칼 퇴근’이 상사의 심기를 건드리기 쉽기 때문에 승진은 물론 일자리 자체가 위험해진다.

따라서 이 문제를 풀려면 우선은 돈이 많이 들지 않는 사회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주거, 육아, 교육, 의료 분야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바로 임금체계, 조직문화, 시간주권 등의 변화다. 기본급의 비중이 총임금 중에서 70% 이상 되도록 높여야 하고, 조직 구성원 전체가 ‘칼 퇴근’을 당연시해야 한다.

게다가 ‘주5일제’ 또는 노동시간 단축, 나아가 ‘직장-가정 균형’이 전 사회 운동의 공통 과제가 돼야 한다. 프랑스나 독일의 경우 이미 1919년경부터 ‘8시간 노동제’를 향해 온 사회가 운동을 해온 결과 오늘날 삶의 여유를 누리면서도 효율성이 높은 사회경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 반면, D. 맥낼리 교수가 《글로벌 슬럼프》에서 지적하듯, OECD 국가 중 한국 다음으로 오래 일하는 그리스의 경우, 갈수록 사회경제적 퇴보를 겪으면서 오늘날 유럽 전체, 나아가 세계를 불안하게 만드는 최악의 ‘국가부도 위기’ 사태까지 도달해 있다.

이런 면에서 과연 우리가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 요컨대, 권력과 돈벌이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인지 아니면 삶의 질과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매진할 것인지,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 여기서 유의할 점이 있다. 그것은 기득권층이 말하는 ‘트리클 다운’ 효과란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원래 ‘트리클 다운’이란 위쪽의 물이 흘러넘치면 아래로 흘러 모두가 덕을 본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대기업이나 부자들이 돈을 많이 벌면 그 부가 온 사회로 넘쳐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 지역사회나 개인들도 잘 살게 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현실은 정 반대다. 한국무역협의의 최근 자료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세계 1위, 휴대폰 출하량은 세계 2위, 자동차 생산은 세계 5위, 무역규모는 세계 9위일 정도로 ‘우수한’ 성적이지만, 자살률이나 산재 세계 1위, 삶의 질 세계 31위, 청소년 행복도 OECD 꼴찌일 정도로 인간답게 살기 어려운 게 솔직한 현실이다. 이제부터라도 온 사회가 나서서 심각한 부와 권력의 불평등 구조를 타파하고 생산과 소비 등 삶의 구조를 혁신, 돈이 별로 없어도 여유롭게 살 수 있는 행복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개인, 조직, 국정 모두가 내부 혁신을 해야 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