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자정 넘긴 시간 SBS-TV의 소위 예능프로그램 ‘런닝맨’(17일 0시10분)에서 한 출연자가 “엄한 사람 잡는다.”고 말했다. ‘어만’이라고 한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바로 화면아래 자막에 ‘엄한 사람’이라는 글자가 떴다.

연예인들이 쓰는 ‘자기 식의 말과 글’을 방송에서 여과(濾過)없이 내보내는 경우가 잦다. 관계 기구들이 가끔 보고서를 내고 틀린 말을 고치라고 지적하기는 한다. 하지만 개선되는 낌새는 느껴지지 않는다.

우선 방송사가 자기 프로그램의 언어 감수(監修)를 충실하게 할 것을 권한다. 또 관계기관과 단체도 이의 심각성을 다시 인식하고 감독을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엄한’은 ‘애먼’이라는 말을 잘 못 알고 하는 소리였다. 애먼은, 사전의 풀이를 빌리자면, ‘일의 결과가 다른 데로 돌아가 억울하게 느껴지는’의 뜻이다. ‘애먼 사람 잡는다’는 말은 엉뚱한 사람에게 덤터기를 씌운다는 얘기다. 애먼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다, 애먼 징역을 살다, 해야 할 일은 제쳐 놓고 애먼 일만 붙들고 있다와 같이 쓰인다. 애먼 말인 ‘엄한’이 엉뚱하게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이 애먼이라는 단어를 ‘자기 식’으로 잘 못 알고 있는 이들이 이런 식으로 활용하는 예는 더 자주 볼 수 있다. 아마 이 글을 대하는 독자 여러분 중에도 ‘아 그렇구나!’하는 이가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방송 등의 영향이기도 할 터다. 그러나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 오래 쌓인 ‘문화’다. ‘자기 식’ 말은 그 문화의 틀에 맞게 고쳐져야 한다.

‘애먼’이라는 말(표준어)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 ‘어만’이라는 남해안 지역 말로 추정되는 사투리가 있다. 이 사투리 때문에 ‘엄한’이라는 오해(誤解)가 빚어진 듯하다. 사투리는 우리말과 글의 매우 귀한 재산이다. ‘어만’이라는 말을 굳이 배척(排斥)할 필요는 없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러나 ‘어만’을 ‘엄한’으로 알고 쓰는 것은 틀린 것이다.

엄한(嚴寒)이란 단어가 따로 있다. ‘매우 심한 추위’를 이르는 말이다. 또 엄격하다, 혹독하다의 뜻인 한자어 엄(嚴)을 속뜻으로 활용하는 우리말 형용사 ‘엄하다’와 바로 혼동된다. 이는 ‘엄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 ‘선생님의 지도가 엄하다.’와 같이 쓰는 말이다.

바르고 고운 우리말과 우리글, 우리 모두의 자존심이고 자랑이다. 애먼 단어 ‘엄한’을 경우에 맞지 않게 쓰는 것은 그 반대다. 찌질한 굴욕(屈辱)이다. 그다지 유식해 보이지 않는 점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내 체면(體面)이다. 얼른 고쳐 쓰자.

강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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