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가 중병과 ‘불상현(不尙賢)’

최근 중고교 학생들의 잇따른 자살로 온 나라가 술렁이고 있다. 대구의 한 중학생은 부모님에게 애끓는 유서를 남기고 생목숨을 끊어 읽는 이들로 하여금 깊은 슬픔에 잠기게 만들었다. 교과부 통계에 의하면 집단 따돌림으로 인한 피해 학생 수가 2005년 4567명에서 2010년 1만3748명으로 5년 동안 3배가 넘게 증가했다고 한다.

학생들의 집단 괴롭힘과 자살 증가현상은 비단 학교와 교육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가족과 지역 등 우리 사회 공동체가 총체적으로 중병에 걸렸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의 경우, 교사인 부모님과 착한 두 형제가 함께 사는 너무도 정상적으로 보이는 가정에서 그토록 참혹한 사고가 일어났다는 사실에 더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이런 사건들은 우리 사회의 ‘한살림’이 파괴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현상들이라고 볼 수 있겠다. 교실이나 가정 어느 한 곳이 병든 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한살림이 중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내 아이만 무사하다고 안심할 일이 아니다.

20여 년 전에 원주를 중심으로 ‘한살림’ 생협 운동을 일으켰던 장일순은 ‘내 아이가 무사하니 계속 이렇게 가도 좋다’는 생각을 ‘문밖에 요강 내놓기’로 비유한다. 내가 싸놓은 똥을 문밖에 내놓은 채 내 집안만 깨끗하면 된다며 살고 있지만, 그 길의 끝은 필연적으로 ‘다 같이 망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문밖으로 버린 똥과 오줌들이 강물을 오염시켜서 언젠가는 내가 먹을 물이 오염되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우리는 공동체가 중병을 앓으며 멸망의 길로 가는 이유를 모르지 않는다. 모든 구성원들이 내 자식이 다른 아이들을 짓밟고라도 일등하기를 염원하기 때문이다. 장일순은 모두가 망하는 시스템을 벗어나 ‘새 판을 짜야한다’고 말한다. 그는 노자의 말 ‘불상현(不尙賢)’을 빌려 먼저 ‘현명함을 숭상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십 년 전 이 땅의 어머니들처럼 말이다.

그때의 어머니들은 아이가 학교에서 성적표를 갖고 와 “엄마, 저 50명 중에 50등 했어요”라고 말하면, “어이구 우리 아들 잘했네”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고 한다. 그분들은 50등이 잘하는 건지 1등이 잘하는 건지 알지도 못했으며 알 필요도 없었다. 자식을 사랑하는 일에 조건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자식이 몸 건강하고 말썽 피우지 않고 잘 커서 나중에 좋은 일을 해주길 바랐을 것이다. 그런 어머니들 밑에서 자랐던 이들은 놀 때 실컷 놀고 공부하고 싶을 때 공부하여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았다.

그러나 지금 어머니들의 사랑에는 조건이 붙어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일류 직업을 얻을 수 있는 일류 대학에 갈 만한 공부실력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의 그런 강요나 기대가 오늘의 아이들을 괴물로 만들고 있다. 그것이 자식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일이라는 걸 모른 채, 또는 알면서도 눈을 질끈 감은 채 공부 감옥에 가두고 있는 현실을 돌파할 수 있는 길은 ‘현명함을 숭상하지 않는다’는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1등만 모든 것을 가져가는 승자독식의 룰은 누가 만든 것인가? 승자를 승자로 만들어주는 것은 결국엔 패자들이다. 승자독식의 시스템이 강화되는 것은 다수의 패자들이 ‘나도 언젠가는 승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십 년 동안 달려온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한살림이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진 상태인 것이다.

장일순은 ‘밥 한 그릇에 우주가 담겨 있다’며 이렇게 말한다. “태양과 바람, 흙과 물 등 온 우주가 힘을 합해서 쌀 한 톨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를 먹여주는 나락 한 알뿐 아니라,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에도 온 우주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한살림’인 것이다.

한살림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세속적 승리와 성공을 얻게 해줄(지도 모르는) 현명함을 숭상하지 말아야 한다. 장일순은 경쟁과 성공의 길에서 스스로 ‘버려진 자들’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버려진 자는 외롭고 무력하지만, ‘버려진 자들’은 새 판을 짜는 사람들이다. 많은 돈을 얻게 해주지 못해도 땅을 살리는 농민의 길을 가는 사람들, 필요치 않은 것을 아껴서 조금 비싸더라도 친환경 제품을 소비하는 사람들, 내 아이가 ‘경쟁에서 이기는 삶보다 함께 상생하는 삶’을 살길 바라는 사람들에 의해서 한살림은 회복되어 갈 것이다.

장일순은 한살림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더 당당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세상에서는 버려진 자들 같지만, 우주에서는 온 땅과 하늘이 먹여주고 살게 해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경쟁과 성공, 현명함을 내려놓으면 우주가 키우는 사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