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우리 시대가 벼랑 끝에 서있다는 진단과 위기감은 절정에 이르렀다. 이를 부정할 사람은 거의 없다. 정치와 경제, 사회 등 삶을 이루는 모든 곳과 때에서 부조리와 부정은 말기 암세포처럼 번져 치유책을 찾기 어렵다.

예를 들어 권력형 부정부패, 고용불안과 청년실업, 고물가, 사교육과 입시지옥, 살인을 부르는 학교폭력 따위가 구체 증상이고, ‘전근대적 노사분규’도 여전히 보이는 또 다른 항목이다. 여기서 ‘전근대적 노사분규’란 권력과 주도권을 쥔 사용자가 상식과 법을 무시하고 악용하여 힘없는 근로자를 억눌러 기본 권익을 해치는 현상을 말하는데, 요즘 국민대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행태가 그 전형이다.

대한민국 대학 강사는 계약기간이 통상 6개월이며, 대개 계약서 자체를 주고받는 일이 없고 임금(강사료)은 4개월 치만 받는다. 국민대 역시 ‘6개월 계약 4개월 임금’ 체제를 이어왔고 한 번도 강사에게 ‘계약서’라는 것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러다 2010년 봄 학기부터 국민대학교 이성우 총장은 불현듯 각과 조교를 통해 계약서를 내놓으며 서명을 강요했고, 계약기간이 4개월이다. 한때 대학 강사를 보호하자는 사회 분위기가 일며 4개월 치만 주었던 임금을 6개월 치로 주어야 될 가능성이 나타나자 그에 따른 재정손실(?)을 사전에 막고자 한 것이요, 고용보험기간을 4개월로 줄여 대학이 부담하는 비용을 아끼려는 계산이다. 2012년에도 국민대 총장은 ‘4개월짜리’ 계약서를 강요하며, 한술 더 떠 ‘2012년 2월 15일까지 계약서 원본을 내지 않으면 해고하겠다.’는 메일로 보내왔다.

국민대학교에서 벌어진 ‘전근대적 노사행태’는 이것만이 아니다. 다 알다시피, 비정규직 차별과 그에 따른 양극화 현상은 우리 시대 가장 큰 사회병폐다. 이에 정부와 국회는 ‘한 직장에서 2년 이상 근무한 근로자는 정규직로 여겨야 한다는’ 비정규직 보호법을 1997년 내놓았다. 국민대학교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2년째 근무한 강사들을 강제해고하거나 한 학기 휴직을 강요하여 비정규직이 정규직을 상승(?)하는 것을 사전 차단했다. 약자를 보호하자는 법을 거꾸로 악용하는 데 국민대학교는 1997년부터 앞장서 온 것이며, 2012 현재에도 그러한 행태를 쉼 없이 되풀이하고 있다.

강사 노조는 계약 당사자인 총장에게 계약 내용을 토론·조정할 것을 2011년 봄 학기 초부터 네 차례나 요구했지만 총장은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으며, 왜 ‘4개월짜리 계약서’인지, 왜 ‘2년마다 강제해직’인지 단 한마디도 설명하지 않았다. 게다가, 국민대학교 홈페이지에 있는 ‘종합정보시스템 내 대량메일업무별 발송서비스 사이트’를 2012년 현재 완전히 폐쇄하여 앞뒤 상황을 국민대 전 성원에게 알릴 길을 원천봉쇄했다. 정당한 권리요구에 비민주적인 태도로서 맞선 것이다.

국민대학교에는 1000여명 대학 강사가 학생을 가르친다. 4개월짜리 굴욕적인 계약서를 강요받으며 어떤 자부심과 긍지로써 강사가 강단에 서란 말인지 자문한다. ‘4개월 계약서’는 첫째, 강사가 마땅히 지녀야 할 최소 소속감과 존재감을 무시하고 둘째, 강사가 방학 중에도 다음 학기 강의를 연구 준비한다는 현실을 부정하여 결국 학생을 제대로 가르칠 여지를 해치므로 폐해가 크다.

‘2년 뒤 강제해직’ 악습은 저임금과 신분불안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묵묵히 교직에 임하여 대학을 지탱해온 강사들을 보호하기는커녕 강사 교육 환경을 생존권 차원에서 열악하게 하여 역시 학생 학습 환경을 근본에서 해치므로 심각한 반사회·반교육 행위다.

대학 강사가 강의환경과 처우를 개선하려는 것은 학생을 잘 가르쳐보고자 하는 데 뜻과 목적이 있다. 정체성과 소속감이 오그라들어 신분이 불안하고 지독한 저임금에 늘 시달려서야 대학 강사들이 능력과 성의를 한껏 기울여 올바른 스승으로 서기가 불가하거나 퍽 어렵다.

고달프다. 앞서 말했듯, 오늘날 구태를 벗어 참된 새 틀을 짜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자멸할 상황에 마주해 있다는 주장이 속속 나오고 있다. ‘참된 새 틀’이란 국민대학교 현상에 어린 것과 같은 ‘권력횡포형’ 고질부터 바로 잡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기본 된 상식과 정의를 먼저 세우지 않으면 변화를 이룰 수 없거나 시작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대 현상은 이 차원에서 봐야 하고, 바로잡기 주체는 학부모를 비롯한 시민일 것이다.

황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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