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폐지포기? 인권위 존재가치없다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부끄러워 고상만l승인2012.02.01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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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비전문가' 수장에 이어 뉴라이트 상임위원 인사가 임명되면서 '잉태된 비극'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라고 해서 만든 기구이며, 그게 민주주의다"라는 말 무색

국가인권위원회
인권활동가에게 있어 국가인권위원회는 말 그대로 '애증'의 존재다. 사랑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미움의 의미를 담은 이 '애증'이라는 단어만큼 국가인권위를 향한 활동가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단어는 없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여러 정부 부처 중 하나일지 모르겠지만 이 조직을 만들고, 또 그 온전한 독립성을 지켜주기 위해 바쳐야 했던 단식농성과 절규를 돌이켜보면 더욱 그렇다.

오늘로부터 딱 12년 전인 그때. 2000년 연말에서 2001년 새해로 넘어가던 13일간의 노상 단식농성이 그것이다. 당시 30여 명의 남녀 인권활동가들이 30년 만에 닥쳐왔다는 살인적 혹한 속에서 침낭 한 장만을 몸에 두른 채 '국가인권위원회법' 통과를 요구하며 농성을 했다. 이 '지독한 활동가들의 처절함'은 대한민국 인권운동사에 길이 남을 눈물겨운 투쟁이었다.

마침내 그해 가을, 국가인권위법이 아슬아슬하게 두 표 차로나마 국회를 통과할 수 있었던 힘이 바로 이것이었음을 부인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낸 국가 인권위가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특히 지난 2009년 7월 취임한 현병철 위원장 체제 이후 걸어온 길은 인권활동가들의 입장에서는 악몽, 그 자체일 뿐이다.

스스로 포기한 인권위의 정체성

어쩌면 이 정부의 기준으로 본다면 현 위원장의 업무 수행 평가는 매우 성공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지난 2010년 발생한 국가인권위 상임위원을 비롯한 자문위원의 연쇄 사퇴 파동, 그리고 이를 전후한 국내외 인권관련 단체와 인사들의 비판에도 국가인권위에서는 아무런 자성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다. 국가인권위를 지탱해주던 그 많은 유수의 자문위원도 떠났다. 더 나아가 지난 2011년 12월, 4년간 홍보대사로 일해온 방송인 김미화씨 역시 한겨울 물대포를 쏴대는 경찰의 야만적 행태에 항의조차 하지 않는 국가인권위에 항의하며 사퇴했다. 그럼에도 국가인권위의 입장은 아무런 변화가 없다. 어쩌면 국가인권위는 그동안 불편했던 이들이 모두 떠나도록 기다린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다.

그리고 2012년 1월 3일, 국가 인권위원회는 참 요상한 의결을 하나 했다. 마침내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의결이었다. 임시전원위원회를 통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국가인권위원회가 정부에 권고할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중 '국가보안법 폐지' 입장을 번복하기로 한 것이다.

즉, 지난 2006년 유지해온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핵심 추진과제로 명시한 제1기 NAP 권고안을 국가인권위가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그러면서 대신 국가보안법의 인권침해적 요소를 개선하라는 권고안을 새로 포함하기로 했다는 것인데, 이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해온 법무부의 기존 입장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으로 인권단체는 보고 있다.

그렇다면 국가인권위가 지난 1기 권고안에서 명시한 '국가보안법의 폐지' 과제를 포기한 근거가 무엇인지 정말 궁금하다. 답은 둘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 첫째는 국가인권위의 지난 1기 당시 국가보안법 폐지 판단은 잘못됐다는 것. 아니면 둘째, 이제는 국가보안법이 있다 해도 별 문제가 없어 그냥 독소조항의 일부 내용만 수정하면 된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권고안을 마련하면서 `국가보안법 폐지' 입장을 번복하기로 해 논란이 되고 있다.

국보법폐지 입장 바뀐 진짜 이유는?

둘 중 하나가 답이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답은 여기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여전히 국가보안법은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책을 읽거나, 또는 인터넷에 글을 쓰거나 혹은 게시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사람을 감옥에 가두고 있다. 국가 권력이 생각하는 것과 개인이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인신을 구속하는 것은 야만이다.

그렇기에 UN 인권위원회를 비롯하여 세계적인 인권기구인 국제앰네스티 역시 국가보안법 제정 62주년을 맞은 2010년 12월 1일 "한국 정부가 국제인권 기준에 맞게 국가보안법을 근본적으로 개정하거나 완전히 폐지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의 2012년 1월 발표에 따르면 지금 이 시간에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이들은 15명에 이르고 있다. 또한 이들은 공안당국이 주장하고 있는 혐의 사실을 적극 부인하는 등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이처럼 국가보안법은 다툼의 여지가 많은 사건이 대부분이다.

그 이유는 국가보안법이 '양심의 영역'을 법으로 처벌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가보안법은 군사 독재하에서 수많은 인권 침해를 양산했고 여러 법원 판결을 통해 확인되고 있듯, 간첩이 필요한 시기에 따라 조작된 간첩을 만들어내는 등 불의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인권을 유린하는 효율적인 도구로 활용돼 왔다.

그렇다면 정말 답은 무엇일까? 그렇다. 권력이 바뀐 것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자신이 스스로 밝힌 것처럼 '인권 비전문가'가 국가인권위원장으로 임명되고, 또 그 아래 또 다른 상임위원 역시 인권과는 전혀 관련없는 뉴라이트 인사가 임명되면서 '잉태된 비극'인 것이다.

인권활동가로서, 정말 부끄러워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소수가 다수 세력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보수세력에서 진보세력으로, 다시 진보세력에서 보수세력으로 정권이 바뀔 수도 있고 그에 따라 국가 정책 역시 바뀔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아야 할 영역은 있다. 바로 인권이 그중 하나다. 민주주의의 핵심 요체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대한민국이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다면 그것은 표현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받는 사회일 때 가능하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은 이 표현의 자유를 결정적으로 위협한다. 그렇기에 대한민국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향하는 문명국가라면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할 당연한 이유인 것이다. 또한 이것이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한 유엔의 가입국으로서 당연한 조치인 것이다. 그런데 이 가치 실현을 위해 최전선에서 부딪혀야 할 숙명을 갖고 태어난 국가인권위가 마침내 스스로 그 역할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우리 위원회는 지난 10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인권의 나무가 확고히 뿌리내리고 튼튼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고 자부합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헌법과 국제인권규범, 그리고 새로운 인권의 요구와 과제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치밀하게 준비하여 실행함으로써,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국가인권기구가 되도록 더욱 매진하겠습니다."

2011년 11월 25일 개최된 국가인권위 10주년 기념식에서 현병철 위원장이 낭독한 기념사중 일부다. 하지만 그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국가인권기구가 되도록 매진하겠다"는 약속이 무색하게, 그동안 세계인권기구로부터 비난받아온 이 악법의 폐지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으니 정말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다.

"정부와 같은 의견 내는 국가인권위는 존재 가치 없다"

이같은 국가인권위원회의 비극은 누구의 비극도 아닌 '바로 우리의 비극'이다. "정권의 성향에 따라 인권의 잣대가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고 반박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한 사례를 돌아봐도 그렇다. 대표적인 경우가 이라크 파병을 두고 벌어진 찬반 논쟁이었다. 당시 파병을 두고 첨예한 논쟁이 벌어지던 그때, 국가인권위는 '파병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혹시 "그때는 쉽지 않았냐"고 생각하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국가인권위의 파병 반대 의견 표명 후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은 국가인권위를 향해 비난 성명을 내는 등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 같은 파열음을 봉합한 이는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그는 국가인권위의 파병 반대 의견 표명을 비난하는 이들을 향해 "원래 국가인권위는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라고 해서 만든 기구이며, 그게 민주주의다"라고 했고 더 나아가 "정부와 같은 의견을 내는 국가인권위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며 국가인권위의 '숙명적 역할'에 대해 대변하기도 했다.

국가인권위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이 말보다 더 잘 정리된 말은 없을 것 같다. 그렇다. 인권은 원칙이다. 시대적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변하는 '여론'이 아니라 움직여서는 안 되는 '원칙', 그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명박 정부하에서 국가인권위는 이 원칙을 내던져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런 생각을 해본다. 지금 국가보안법 폐지를 두고 대한민국 법무부와 사실상 똑같은 입장을 표명한 국가인권위에 대해,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했던 말을 이명박 대통령이 다시 하는 상상 말이다.

"원래 국가인권위는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라고 해서 만든 기구이며, 그게 민주주의다. 정부와 같은 의견을 내는 국가인권위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

오늘날 국가인권위의 가치가 무엇인지 잘 설명하는 '비극'이다. '다시 민주주의'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초라해진 오늘날 국가인권위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그날을 기원한다.


고상만 객원기자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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