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 입지 공고화 시민정치운동, 시민사회 보약인가 독배인가

‘낡은 정당정치 vs 새시민정치’ 대결양상...변화 염원 시민들 참여 증가추세
시민 목소리를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여부에 따라 시민사회도 큰 변화 예고

박원순 변호사가 서울시장에 당선되고 한명숙 전총리가 민주통합당 대표에 선출됨에 따라 시민사회의 정치운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연구자에 따라 다소 이견이 있으나 한국 시민사회의 정치운동은 대체로 ‘동학농민혁명’과 ‘만민공동회’를 근대적 시원으로 하고, ‘87년 6월 항쟁’을 전후해 구체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민사회의 정치운동은 정치적기회구조의 변화와 시민단체의 대응 전략에 따라 크게 바뀌어왔는데, 형식적 민주주의가 이루어진 1987년 이후 한국 시민정치운동도 큰 변화를 보였다.

한국 시민사회가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정치참여를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성공여부에 따라 시민정치운동은 시민사회에 활력을 불어 넣는 보약이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할 경우 시민사회의 신뢰를 추락시키는 독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사진은 지난 17일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여의도 국회 통합진보당 대표실을 예방하고 이정희, 심상정 공동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다.

군사정권에 대해 ‘독재정권퇴진’을 주창하며 장외에서 대정부 투쟁에 집중하던 시민정치운동은 87년 대통령 직선제 시행 이후 다소 약화되었으며, 문민정부 수립 이후에는 ‘탈계급·비정치운동’으로 선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형식적 민주주의가 달성된 현실을 감안해 대정부 강경 투쟁을 줄이는 대신 실질적 민주주의를 향상시키기 위한 견제활동을 강화하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시민정치운동은 2000년 또 다시 변화를 겪게 되는데,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정치권을 개혁하기 위해 시민단체들은 ‘2000년 총선시민연대’를 구성하여 제도권과의 면대면 접촉을 통한 정치개혁을 시도했다.

즉 장외에 활동하던 시민단체가 접경지대까지 진출해 네거티브 방식으로 정치인에 대한 일대일 견제를 시작한 것이다. 이 ‘낙천낙선운동’의 성과에 힘입어 시민단체는 정치개혁의 주체로 발돋움하게 되었는데, 이후 50여 명의 국회의원들과 ‘정치개혁범국민협의회’를 구성하며 제도권 내에 진입, 정치개혁을 추동했다.

‘2004년 총선시민연대’는 제도권 안에서 포지티브 방식을 취했다는 점에서 2000년 활동과 차이를 보인다. 시민단체들은 부적합 후보에 대한 ‘낙천낙선운동’을 진행한 가운데, 다른 한편에서는 ‘총선물갈이연대’,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 등을 통해 적합한 후보의 ‘당선운동’을 전개했다.

이와 같은 지지운동은 ‘인물교체를 통한 정치개혁’을 시도한 2000년과 달리 구조적으로 정치권의 ‘판갈이’를 구상한 것으로 해석되며, 한 두 명의 개혁적인 국회의원을 의회에 진출시킨다는 차원을 넘어 보다 근본적인 정치적 함의를 갖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 장내로의 진입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더욱 뚜렷해졌다. 시민사회 내부에서 지역사회의 바람직한 변화에 기여하고 시민단체의 대안 가치를 실현하는 새로운 차원의 대안정치운동을 위해서는 단체와 개인을 넘어서는 새로운 주체, 즉 지역적 대안정치주체 형성을 담당할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데에 인식을 같이하면서 ‘초록정치연대’를 창립했다.

그리고 다수의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초록정치연대’ 등을 통해 지방선거에 직접 참여했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적 실험의 성과와 한계는 분명했다. 시민정치운동을 통한 정치적 실험은 거대 정당의 견고한 벽에 가로막혀 저지되었는데, 21명의 ‘풀뿌리초록정치네트워크 531공동행동’ 후보 중 단 2명만이 당선된 것이다.

6.2지방선거에서 최대 화두는 야권연대였다. 지방선거 승리와 정권교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분열된 야권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시민사회의 정치운동은 진일보한다. 다수의 시민단체 출신자들이 지방선거에 나섰을 뿐만 아니라 정권교체를 위한 ‘반MB 선거연합’에 시민단체가 조직적으로 참여한 것이다.

‘희망과 대안’ 등의 시민정치운동 세력들이 야5당과 함께 야권연대에 적극 가담했고, 야권단일화 전국단위 협상이 결렬된 이후에도 지역단위의 단일화를 위해 노력했다. 이렇듯 6.2 지방선거를 전후한 시민단체의 정치운동은 변방에서 제도권 중심부로 이동하기 시작했으며 갈등을 중재하고 협력을 이끌어내는 등의 역할도 확대되었다.

2011년 10월 26일 시행된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시민사회의 정치운동이 전면화되고 본격화된 하나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시민단체에서 활동해 오던 박원순 변호사가 시민후보로서 서울시장에 출마했고, 주요 시민단체 전 사무처장들이 참모로서 선거캠프에 참여한 것이다. 특히 이 선거에서 시민후보와 정당후보의 경쟁 구도가 만들어지면서 ‘낡은 정당정치 대 새로운 시민정치’의 대결양상이 나타나면서 변화를 바라는 시민들의 참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시민과 시민사회 인사들의 전면적인 참여 속에 9월 초 5%에 머물러 있었던 박원순 후보자의 지지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했으며, 선거비용 마련을 위해 개설된 ‘박원순 펀드’는 47시간 만에 38억8500만원을 모금할 만큼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이러한 새로운 시민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 속에 시민후보 박원순 변호사가 서울시장에 당선되었다.

10.26선거 이후 시민정치운동은 눈에 띠게 확대되고 있다. 진보성향의 시민단체인사와 친노무현 세력이 주축이 되어 시민통합당을 창당하는가 하면, 민주당,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연합해 민주통합당을 출범시켰다. 특히 민주통합당 당대표 최고위원 경선에는 76만5719명의 시민선거인단이 등록했으며 그 결과 시민사회측 문성근 후보가 2위 이학영 후보가 7위를 기록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아울러 시민단체 출신인사들의 정계 진출 선언도 줄을 이었는데, 19대 총선 예비후보자로 이용선, 김기식, 최승국, 오성규, 김택수, 민병덕 등의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이 출사표를 던진 상황이다.

이처럼 한국의 시민정치운동은 확장의 길에 들어선 것으로 파악된다. 제도권 밖에서 정치권과 갈등을 빚어오던 시민사회의 정치운동은 이제 제도권 안으로 들어와 협력을 통해 개혁을 추동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활동 무대도 점차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동안 정치과정에서 객체에 머물러 있던 시민정치운동이 점차 주체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면서 한국 시민사회는 새로운 시험대에 올라섰다. 기존 정치권과 다른 시민정치를 어떻게 펼치고 이 과정에서 시민의 목소리를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하는 문제를 받아든 것이다. 이 시험에 통과했을 때 시민정치운동은 시민사회에 활력을 불어 넣는 보약이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할 경우 시민사회의 신뢰를 추락시키는 독배가 될 것이다.

송성수 기자

송성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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