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신문의 난 얘기 한 조각, 책 소개 글이다.

(... 이 책은) 이승복 사건에 대한 크고 작은 자료와 사진도 실려 국민 안보교육 자료로 유용하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재향군인회 공보관>

소개자의 직함(職銜)이 ‘재향군인회 공보관’으로 적혀있다. 재향군인회는 경찰서 세무서처럼 정부의 한 조직인가? 이 씨는 청와대 공보관과 같은 공무원인가? 아니면 군대의 일을 돕는 (군인 신분이 아닌) 군무원(軍務員)인가?

관(官)는 관리(官吏) 즉 벼슬아치다. 직책의 높고 낮음 즉 등급(等級)을 함께 나타내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나라의 일’에 종사하는 이를 말할 때 쓰는 단어다. 재향군인회는 군복을 벗은, 제대(除隊)한 군인들의 명예로운 모임이다. 규모나 역할로 보아 혹 그 구성원을 ‘(공보)관’이라 칭할 만큼 자부심을 가질 수는 있겠으나, 의당 바른 말은 아니다.

필자는, ‘관’ 글자의 이런 활용이 자기나 자기네 조직의 이익이나 세력을 키우기 위해 관명(官名)을 사칭(詐稱)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다만 글자마다 속뜻이 있음을 생각하지 못하고 신중하지 않게 단어를 선택한 것으로 이해한다. 막말로 무식해서 그랬던 것이려니 하는 것이다. 허장성세(虛張聲勢)의 의도가 전혀 없지는 않았겠지만.

아니라면 이는 자칫 범죄로 생각될 수도 있는 심각성을 보듬는다. 말하자면, 군대와 관련 깊은 단체의 한 사람이 자신을 군대의 한 사람으로 착각하도록 하는 기만적(欺瞞的)인 사기(詐欺)가 되는 것이다. 말이나 글은 이렇게 그 쓰임새가 무섭다. 한 마디를 쓸 때도 엄정한 생각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공적인 일을 알린다는’ 공보(公報)도 ‘홍보(弘報)’ 쯤으로 바꿔야 한다. 재향군인회 뿐 일까? 사람마다, 기관 기업마다 말뜻도 제대로 챙기지 않고 제 편한 대로 이름을 붙이는 바람에 이런 직명(職名)의 혼란이 이제는 아예 나름의 전통으로 굳어지고 있는 것 같다.

최근 서울대가 제 이름을 상호(商號)로 활용하는 것에 제동을 걸었다고 한다. 서울대 옆 골목이라고 ‘서울대 튀김하우스’, 아들이 서울대 다녔다고 ‘서울대 부동산’ 등으로 간판을 건다면 황당할 것이다. 그 이름이 합당한 경우, 즉 서울대 출신 인사의 상호 등에도 어떤 표현은 안 된다든지, 서울대 ‘이름값’을 얼마를 내야 한다든지 하는 규정은 필요할 것이다.

서울대처럼 ‘관’의 이름이나 이미지를 관리하는 규정도 없지는 않을 터다. 관(官)은, 말하자면 국민의 세금으로 오로지 국민을 위해 움직이는 조직의 인원(人員)을 이르는 직명이다. 단체나 기업의 직명에는 들어가지 않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원(員) 담당자(擔當者) 사(士)와 같은 직명으로 바꿔야 할 것이다. 그것도 얼른.

<토막새김>
官 글자의 새김[훈(訓)]과 음(音)은 ‘벼슬 관’이다. 어원(語源)을 보면, ‘갓머리’라고도 새기는 면자 안에 제사용 고기의 모양으로 군대의 뜻을 품은 ‘퇴’자가 들어가 관청의 뜻으로 쓰게 된 것으로 푼다. 갓머리변자 안의 글자를 이(以)자의 옛 글자로 읽기도 한다. 갓머리자는 갓과는 상관이 없고, 실은 ‘집’의 뜻이다. 집 안에 제사용 고기 모양 글자나, 이유나 까닭의 뜻인 以를 넣어 만든 글자로 ‘뜻을 모았다’는, 한자구성 원리 중 회의(會意)문자의 한 형태다.

강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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