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순미선 사건 10년, 가해자가 왜 무죄?

한미 주둔군 지위 협정(SOFA) 개정이 정답 고상만l승인2012.06.22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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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13일 오전 10시 45분경.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 56번 지방도에서 불행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훈련중인 미 2사단 44공병대(캠프 하우즈) 소속 장갑차에 의해 갓길을 걷던 여중 2학년 신효순, 심미선 양이 깔리는 끔찍한 사고였다.

이들의 죽음은 그 기억을 떠올리기 괴로울 만큼 참혹했다. 더구나 사고가 난 그날은 사망한 효순이의 생일 전날이었다. 그래서 미리 생일을 축하해 주겠다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로 향하던 길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리고 이날 생일을 축하해 주고자 모였던 친구들에게 ‘10년 전 그날’은 잊을 수 없는 악몽의 그날이 되고 말았다.

2002년 12월 6일 미군 장갑차에 의해 압사당한 효순,미선 학생의 미국 측의 무죄평결에 대한 방송문화예술인들 항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10년 전 그 날’의 ‘반미 촛불집회, 이유를 모르겠다?’

그 불행한 사건이 어느덧 ‘10년 전 그날’이 되었다. 그리고 언론은 추모 10주년을 맞아 관련 두 여중생에 대한 추모 기사를 쏟아냈다. 그러한 많은 기사중에 기자의 시선을 당기는 기사가 있었다. 지난 6월 11일자 사건 당시 주한미군 2사단장이었던 러셀 아너레이(Honore) 예비역 중장의 조선일보 인터뷰가 그것이었다.

그는 효순 미선의 장갑차 압사사건에 대해 “37년간의 군 생활중 가장 큰 비극으로 각인돼 있고 지옥의 시간이었다.”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가장 아쉬운 점으로 “(사건 직후) 내가 바로 나서 진심으로 사죄하는 모습을 (한국민에게) 먼저 보였으면 사태가 그렇게 확산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의 인터뷰는 내내 진지했고 피해자 가족에 대한 사과 표현 역시 진정성있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의 인터뷰를 다 읽고 난 후 나는 그에게 깊은 유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유는 그가 말하는 ‘사과’가 얼마나 이기적인 표현인지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는 여전히 약소국을 보호해주는 주둔군의 사령관 입장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특히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은 나에게 모욕감마저 들게 했다.

“왜 한국서 반미감정이 생겼다고 보나”라는 조선일보 기자의 물음에 대한 답이었다.

“정말 누가 그 이유를 설명해줬으면 좋겠다. 1971년에 위관급 장교로 처음 한국에 근무할 때는 어딜 가든 한국민들이 손을 흔들어주고 반겨줬다. 하지만 2사단장으로 재임할 때는 여중생 사고 전에도 특히 젊은이들에게서 차가운 시선을 느꼈다. 정치적인 이유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군복 입은 사람들은 그런 것을 잘 모른다. 많은 미군이 '우린 북한에 맞서 한국과 함께 싸우기 위해 왔을 뿐인데 왜 우리를 적대시하나'라는 고민을 했다."

불행한 사고를 빌미로 반미 시위를 하는 이유?

“정말 누가 그 이유를 설명해 줬으면 좋겠다”는 아너레이 예비역 중장의 간절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는 아무런 설명없이 인터뷰를 끝냈다. 물론 그가 정말 듣고 싶어서 물은 것인지, 아니면 ‘북한에 맞서 싸우는 미군에 대해 고마워하지 않는 배은망덕’에 대해 지적하고자 쓴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의 진짜 뜻이 무엇이든 그의 ‘외형상’이나마 간절한 궁금함에 대해 답해주고 싶었다.

10년 전 그날, 그러니까 효순, 미선이가 사망한 2002년 6월 13일 이후 무려 다섯달이 지나간 그해 11월 30일이 되었을 때 왜 광화문 네거리에서 효순, 미선을 추모하는 첫 번째 촛불 집회가 열리게 되었는지 그는 이유를 모르는 것 같다. 그리고 이후 매주 토요일마다 전국 각지에서 수십만명에 이르는 한국민들이 왜 촛불을 들고 그 추운 거리로 나왔는지 그 진짜 이유를 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른바 보수 언론과 세력은 효순, 미선 사건에 대해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지극히 불행한 사고일 뿐”이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런 불행한 사고를 두고 불순 세력들이 “반미 시위를 위한 명분으로 활용한다”며 비난해왔고 현재도 그와같은 비난을 하고 있다. 또한 보도에 따르면 피해자 가족 역시 이같은 추모 행사에 대해 반미 정치집회라며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안타깝게도 사고와 관련한 진실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미군 당국은 당시 사고가 장갑차 운전병의 오른쪽 시야가 제한되어 있고, 이 과정에서 차량 소음과 통신 장애로 인해 발생한 우발적 사고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시민단체 등은 사고를 낸 장갑차가 중앙선을 넘어 진행하는 맞은 편의 다른 장갑차와 충돌을 피하고자 보행중인 여중생을 알면서도 핸들을 틀어 발생한 고의적 사고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아너레이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러니까 10년 전 그날, 미군측의 주장처럼 효순, 미선의 사고가 ‘불행하지만 지극히 단순한 사고’인데도 불구하고 왜 한국민들이 반미 시위를 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그렇다. 그는 본질을 잘 못 이해하고 있었다. 한국인들이 분노한 것은 불행한 사건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사건 발생 직후인 그해 6월부터 바로 촛불집회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 사건 재판 결과였다. 그날 대한민국에 사는 평범하고 건강한 상식을 가진 이들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효순, 미선을 처참하게 사망케한 장갑차 운전병 마크 워커와 관측병 페르난도 니노가 2002년 11월 20일과 22일, 미 8군 군사법정에서 차례로 무죄 평결을 받은 것이다.

그로부터 일주일후인 11월 30일. 광화문 네거리에서 촛불이 타오른 이유였다.

지난 2002년 12월 9일 시민사회가 미군 장갑차에 의해 압사당한 효순,미선 학생의 미국 측의 무죄평결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효순, 미선을 죽인 가해자가 무죄인 이유?

이같은 무죄 평결에 대해 아너레이의 인터뷰는, 그래서 다시 한번 나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는 “사고를 낸 미군이 모두 미군 법정에서 무죄를 받은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나.”라는 조선일보 기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당시 시위대는 병사들을 한국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감정은 이해하지만 한미 간에 소파(SOFA)규정이 있는데 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들이 받은 판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당시 내가 그 병사들에게 '판결과 상관없이 앞으로 당신들의 삶은 이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해줬다."

그렇다. 사실은 아너레이가 답한 이 속에 왜 10년 전 그날, 우리가 촛불을 들었는지 모두 들어 있었다.

효순, 미선 사건 당시 거리에서 촛불을 들었던 대다수 참석자들은 소위 운동권 사람들이 아니었다. 87년 유월 항쟁 이후 범국민적이고 대중적인 첫 번째 촛불 집회였다. 특히 화제가 되었던 것은 당시 매주 토요일마다 개최된 촛불집회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던 이들의 신분이었다. 그들은 소위 한총련도, 또는 조직된 노동조합원도 아닌 효순, 미선과 같은 또래의 중, 고등학생들이 다수였다. 이른바 ‘촛불 소녀’라는 캐릭터와 이름을 만들게한 아이들이었다.

그때 아이들은 우리에게 물었다.

“왜 효순이와 미선이가 그렇게 처참하게 죽었는데 가해자들이 무죄예요?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이 그런 사고를 저질러도 무죄인가요?”

“왜 가해 미군들을 우리나라 법정에서 재판하지 못하는 거예요?”

나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어른들은 답할 수 없었다. 여전히 그 답을 찾을 수 없다. 왜 그래야 하는 것인지 그 이유를 나도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다시 그 사건이 벌어진다면...

그렇다면 만약 지금 효순, 미선 사건이 또다시 일어났다고 가정해 보자. 그 결과는 10년 전 그날과 달라질 수 있을까. 현실은 냉정하다. 결론은 “전혀 달라질 것이 없다”이다. 우리가 10년 전 그 날, 그 사건을 오늘 다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진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아이들이 물었던 그 질문, 왜 가해자들을 대한민국 법정에서 재판하지 못하는지, 그리고 왜 사고 가해자들이 무죄인지에 대한 답은 이른바 ‘한미 주둔군 지위 협정’(SOFA)이라는 불평등 협정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공무 수행중에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1차적 재판권이 미군측에 있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사건 당시 훈련을 위해 이동중이었던 장갑차에 의해 효순, 미선이 사망하자 미군 당국은 가해자인 운전병과 관제병을 2002년 7월 3일 과실치사죄로 자기들의 미군 법정에 기소했다.

그리고 이어진 미군 법정에서의 재판. 같은 해 11월 18일부터 23일까지 불과 6일 동안 일사천리로 진행된 미 군사법정에서 ‘그들의 배심원단’은 가해 미군 2명 모두에게 차례로 무죄 평결을 내렸다. 재판장에서부터 배심원까지 모두 현역 미군으로 구성된 가운데 벌어진 이 판결을 보고 분노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이상한 한국민이 아닐까.

2002년 11월 27일. 판결이 내려진 지 5일이 지난 그 날, 가해 미군 2명은 지극히 짤막한 사죄 성명을 발표한 뒤 그들의 나라로 떠났다. 그리고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첫 번째 촛불집회가 타오른 것은 그들이 그들의 나라로 떠난 지 꼭 3일째 되던 2002년 11월 30일이었다. 아너레이가 말한 ‘이 단순한 사고’를 두고 이른바 반미시위가 시작된 첫 번째 날인 것이다.

지난 2002년 6월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고 신효순, 심미선양 10주기 추모제가 지난 6월 13일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 56번 지방도로 당시 사고현장 추모비 앞에서 열렸다.

불평등 조약 ‘소파’ 개정해야 진짜 혈맹이고 우방

이제 아너레이에게 마지막 답변을 해주고자 한다. 그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여중생 사건 발생 이전부터 싸늘한 시선을 받았다”며 “그 이유를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진짜 모르는 것은 다른 것임을 알아야 한다. 주둔군의 사령관으로서 그는 한국민을 위해 미군과 자신이 노력하고 희생하고 있다는 사실만 각인하고 있을 뿐 그 과정에서 벌어진 참담한 미군 범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가 만난 모든 한국의 젊은이가 그가 말한 것처럼 싸늘한 시선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와 같은 사람들은 그가 ‘원하는 것처럼’ 미군을 향해 마냥 환하게 미소짓고 손 흔들지 못함을 이해해야 한다. 나는 지난 92년, 미군에 의해 차마 세세히 다 설명하기도 처참한 '윤금이 살해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에 대해 잊을 수가 없다. 또한 지금까지 벌어진 그 숱한 미군 범죄에 대해 국가로서의 사법권조차 행사하는 못하는 이 기막힌 협정을 알고 미소짓고 손 흔드는 젊은이가 있다면 그는 이 땅의 청년이라고 할 수 없다.

실제로 2011년 민주당 장세환 의원실에서 입수한 경찰청 자료에 의하면 2006년부터 2011년 8월말까지 주한미군 범죄 1,463명중 구속 수사 의견을 낸 것은 불과 4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일은 주한미군의 범죄가 매년 꾸준히 증가하여 2010년에도 모두 380건의 크고 작은 범죄가 벌어진 것으로 법무부의 통계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왜 주한미군의 범죄는 나날이 늘어나는 것일까. 무엇보다 그들의 범죄를 우리나라가 처벌한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불평등한 ‘한미 주둔군 지위 협정’에 의거, 대한민국 공권력과 법정이 그들의 범죄를 제대로 처벌하지도 못하는 현실이니 그들에게 대한민국은 “그들만의 천국, 그들만의 낙원”이 아닐까.

우리의 처지가 더욱 참담한 이유는 주일 미군 사례와 대비해 봐도 그러하다. 살인 또는 강간 등 강력사건을 저지른 미군을 현행범으로 체포했을 경우에만 계속 구금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또한 구속 기소할 수 있는 범죄도 12가지로 제한하고 있는 현행 한·미 주둔군 지위 협정(SOFA)과 달리 일본은 주일 미군의 모든 범죄에 대해 신병 인도가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역시 주한미군의 모든 범죄에 대해 신병 인도가 가능하도록 SOFA를 개정해야 한다. 평등한 한·미 관계 없이 ‘혈맹이며 우방’이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것은 그저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10년전 그 날,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스러져간 효순, 미선이가 우리에게 묻는다.
“사고인 것은 알겠는데 가해자들이 왜 무죄인가요?”

나는 정말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이제라도 할 말을 찾기 위해 나는 요구한다.
불평등한 한미 주둔군 지위 협정 조속히 개정하라!


고상만 객원기자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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