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도가 없어서’라는 핑계는 틀렸다”

잇따른 데이트 폭력 사건, 국가는 범죄 피해자 보호에 책무 다해야 양병철 기자l승인2023.06.26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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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는 “‘법‧제도가 없어서’라는 핑계는 틀렸다. 잇따른 데이트 폭력 사건과 관련, 국가는 범죄 피해자 보호에 책무를 다하라”고 23일 밝혔다.

▲ (사진=한국여성의전화)

지난 5월 서울 금천구에서 동거하던 여성에게 데이트 폭력 피해를 입힌 남성이 경찰 조사를 받은 뒤 피해 여성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폭행이 경미했고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피해자의 진술을 근거로 경찰은 이를 단순한 ‘연인 간 다툼’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아무런 보호조치를 받지 못한 피해 여성이 경찰서를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신고에 대한 보복으로 살해당했다.

지난 6월 18일에는 사귀던 여성을 폭행해 접근 금지 명령을 받은 남성이 이를 어기고 피해 여성의 집에 무단 침입하여 납치했다가 체포됐다. 이처럼 여성들이 데이트 폭력 피해를 신고하였음에도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해 피해가 이어진 사례가 연이어 보고되고 있다. 이에 수사·사법기관은 많은 시민의 공분을 사고 있으나, 관련 법안의 ‘공백’을 핑계 대며 미진한 대처로 일관하고 있다. 피·가해자 관계,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서의 데이트폭력의 특성 등을 고려한 ‘데이트폭력 처벌법’은 부재한 상태지만, 기실 그것은 변명이 될 수 없다.

현행법상 데이트 폭력은 폭행, 상해, 주거침입, 스토킹, 가정폭력, 성폭력 등의 범죄로 처벌될 수 있다. 국가는 범죄피해자 보호법에 따라 피해자의 ‘사생활의 평온 및 신변의 보호’를 위해 신변경호, 스마트 워치 제공, 임시숙소 제공, 그 밖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하게 되어 있다.

또한 여성가족부의 지침에 따라 데이트폭력 피해자는 기존 가정폭력‧성폭력 지원제도에 준하여 상담, 법률 및 의료 지원, 쉼터 입소 등을 이용할 수 있으므로 수사‧사법기관 또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미 범죄 피해자를 보호하고 지원해야 할 국가의 책무가 법적으로 명시되어 있고, 현재로서도 할 수 있는 조치가 있음에도 이는 왜 작동하지 못했는가.

경찰이 ‘단순한 연인 간 다툼으로 판단’해 아무런 피해자 보호 조치를 하지 않았던 서울 금천구 데이트 폭력 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실상 ‘공백’인 것은 법‧제도가 아닌 여성폭력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국가의 의지다.

한편 데이트 폭력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면서 가정폭력처벌법의 구조에 따른 별개의 ‘데이트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안’이나, 가정폭력, 스토킹처벌법 등 관련법에 데이트 폭력을 끼워 넣는 형태의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입법은 기존 여성폭력 관련법·제도의 한계를 되풀이할 우려가 크다. 엄연한 범죄임에도 가해자를 형사 처벌하지 않을 수 있게 하거나, 범죄자를 처벌해야 할 국가적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 주요한 문제다.

가정폭력범죄를 형사 사건이 아닌 가정 보호사건으로 처리할 수 있으며, 이 경우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조항, 이제야 개정된 스토킹처벌법에 잔존했던 반의사 불벌죄 등이 그 예이다. 이외에도 산재한 기존 법안의 문제점을 개선하지 않은 채 유사한 법안을 양산하는 것은 여성폭력 근절도, 피해자의 존엄과 인권 보장도 실현하지 못할 우려가 크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수많은 여성들이 죽거나 죽을 위협에 처하는 참담한 현실 앞에서 국가는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수사기관은 더 이상 ‘피해자가 원하지 않았다’거나 ‘제도가 부실하다’는 핑계로 직무를 유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가는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의 원인과 실태를 정확히 인식하고 관련법‧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와 개선에 앞장서라. 그 무엇보다 피해자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하고 가해자를 분명하게 처벌함으로써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고 요구했다.

양병철 기자  bcyang20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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