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주제, 자연에서 ‘인간’으로

철학여행까페[12]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l승인2007.11.19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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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철학의 도시 아테네(1)

이동희
파르테논 신전 기둥은 똑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배흘림으로 가운데가 더 굵다. 눈의 착시현상까지 고려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는 2차에 걸친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모두 이겼다. 전쟁에서 돌아와 분을 삭이지 못하고 크세르크세스는 그리스에서 귀화한 참모에게 자신의 군대가 전쟁에서 왜 패했는지 그 원인을 물었다. 그러자 그 참모는 이렇게 대답했다.

“전하, 우리는 전하를 위해 싸웠지만, 그리스인들은 자신을 위해 싸웠습니다.”

전제주의 대 자유의 싸움

이 이야기를 기록한 사람은 그리스인 역사가 헤로도토스이다. 그는 이 이야기를 통해 전쟁의 승리 요인을 그리스의 자유에서 찾았다. 헤로도토스는 다리우스가 그리스와 전쟁을 벌인 까닭도 ‘시민의 자유’에 기초한 그리스인의 자유분방한 생활방식이 이웃인 소아시아인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헤로도토스는 이렇게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을 전제주의 대 자유의 싸움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헤로도토스 뿐만 아니라 아테네인들도 대국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유를 자신들만이 가진 독특한 정체인 민주주의에서 찾았다. 그래서 전쟁에서 승리한 아테네인들은 시민들의 자유에 기반한 민주주의를 더욱 확고하게 다진다. 때마침 아테네는 불세출의 걸출한 지도자 페리클레스가 출현한다. 페리클레스는 해군제독의 아들로 귀족 출신이었다. 그는 귀족 출신이면서도 민주 진영에 가담해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그의 지도 아래 아테네는 복지, 사상, 문화에서 최고 절정기를 맞았다. 그래서 기원전 5세기 아테네를‘신비의 페리클레스 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페리클레스는 델로스 동맹의 동맹 기금을 아테네로 옮겨 왔다. 원래 이 기금은 테미스토클레스와 그가 추진한 동맹 규약에 따른 것이었다. 이 규약에 따르면 모든 도시국가들은 정치적 독립을 유지하며, 자기 도시의 안전을 위해 동맹자금으로 일정액을 내도록 되어 있었다. 400개 이상의 도시국가들이 아테네의 우산 아래 이 동맹규약을 맺고 동맹자금을 냈다.

페리클레스는 이 동맹자금을 쌈짓돈처럼 사용해 아테네의 함대를 강화하고 파괴된 공공건물을 다시 짓는 데에 충당했다. 그는 풍부한 동맹자금과 부유한 시민들의 찬조금으로 수십 개의 성소를 지었고, 당대의 예술가들을 초빙해 아테네를 문화의 보고로 만들었다. 그의 치세 시대에 세워 진 건물 중 가장 유명한 것이 파르테논 신전이다.

그는 BC 479년에 페르시아인이 파괴한 옛 신전 자리에 새로운 신전을 건립해 아테네의 수호여신 아테나에게 바쳤다. 파르테논은 처녀신의 신전이라는 뜻이다. 이 신전은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있다.

신화에 따르면, 아테네와 포세이돈이 아름다운 이 도시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경쟁을 벌인 적이 있었다. 두 신은 아테네인들에게 선물을 주어서 아테네인들로 하여금 어떤 신을 선택할 지 결정하도록 하였다. 포세이돈은 바위를 쳐서 샘물을 만들었고, 아테네 여신은 아테네 사람들에게 올리브나무를 선물했다. 올리브는 예나 지금이나 그리스인들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귀한 주식이다. 아테네인들은 아테네 여신의 손을 들어 주었고, 그렇게 해서 그들이 살던 도시는 아테네 여신의 이름을 따서 아테네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파르테논 신전의 정면 박공에는 아테나 여신과 포세이돈 해신이 서로 경쟁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처녀신의 신전’ 파르테논

신전은 총 감독 페이디아스의 지휘 하에 설계는 익티노스, 공사는 칼리크라테스의 손으로 진행되었다. BC 447년에 착공하여 9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완성하였다. 신전의 본전에는 페이디아스가 금과 상아로 만든 높이 12m에 이르는 파르테노스(처녀 아테나) 상이 안치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신전 장식 중 지금 부분적으로 남아 있는 것은 본전 외벽 상부 4면에 있던 프리즈가 있다. 이 프리즈는 길이 163m로 아테나에게 바치는 장대한 판아테나이아의 제전을 부조한 것으로 인물은 신들을 합쳐 총 360여 명, 말 219필을 헤아린다.

이동희
파르테논 프리즈. 영국 박물관 소장

이 프리즈의 많은 부분이 지금은 아테네에 없고 엘긴 마블스라 하여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나는 이 프리즈를 보기 위해 런던에 있는 영국박물관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프리즈를 처음 보고 충격을 받았다. 평면 부조에는 살아 움직이는 모습 그대로의 입체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접혀진 부채를 펼치는 것처럼, 평면 부조를 펼치면 바로 입체가 되는 모습이었다. 당시 아테네인들이 이 평면부조를 보고 입체를 떠올렸을 생각하니, 그것을 만든 사람이나 감상하는 사람이나 상당한 문화적 수준에 이르렀음을 짐작하고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 프리즈의 대 조각군은 거장 페이디아스가 지휘 하에 아르카메네스 등 뛰어난 조각가들에 의해 제작되었다.

파르테논 신전은 민주주의의 이상과 신념에 따라 건축된 것이다.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더욱 확고하게 하기 위한 정치적 제도개선도 했다. 그는 되도록이면 모든 시민들이 투표에 참가할 수 있도록 투표 당일에 시민들에게 일당을 주도록 했다. 그리고 모든 시민들이 국가의 일이 곧 자신의 일로 여기도록 공직 윤번제를 만들어 시민이 국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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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를 놓고 서로 경쟁하는 아테네와 포세이돈 복제품

직접 참여 민주주의에서는 토론이 중요했다. 아테네인들은 토론이야말로 공동제도를 구성하고, 제도들을 효율적으로 가동시키는 최선의 수단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토론에서 중요한 것은 말이었다. 페리클레스는 말기술을 통해 뛰어 난 통치술을 발휘하였다. 그가 얼마나 말을 잘 했는지 이런 이야기도 남아 있다. 페리클레스와 레슬링 선수가 레슬링을 하면 누가 승리할 것이라고 아테네 사람들에게 물으면 사람들은 페리클레스가 이길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 이유는 레슬링선수가 이기더라도, 페리클레스가 레슬링선수를 설득하면 곧 레슬링선수는 자신이 진 것처럼 생각이 들 것이기 때문이었다.

토론은 민주주의의 꽃

아테네의 민주주의에서는 이제 ‘말’과 ‘토론’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러한 아테네의 분위기와 더불어 출현한 철학자들이 소피스트들이었다. 소피스트들은 원래 지혜를 가진 자를 뜻한다. 이들은 아테네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다양한 의견을 나타냈다. 이들을 궤변론자라고 철학사에서 폄하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소피스트들을 그렇게 평가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소피스트들의 자유로운 사고와 견해는 이후 소크라테스나 다른 철학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소피스트들과 더불어 철학의 주제도 자연에서 ‘인간’의 문제로 넘어간다. 민주제가 꽃핌에 따라 이제 아테네에서 철학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다음호에 계속>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구스타프 슈바브 그리스로마신화\' 역자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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