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을 일구는 산양

한정선의 금수회의록 한정선l승인2017.05.24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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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림한정선

씨를 뿌리는 산양이 있었다. 산양이 씨를 뿌리는 곳은 수직으로 깎아놓은 듯한 가파른 절벽이었다. 산양이 뿌리는 씨앗은 산양이나 염소들이 즐겨먹는 풀 씨앗이었다. 산양은 바위 사이사이에 씨앗을 파묻고 옆 바위로 건너뛰다 주르륵 미끄러지곤 했다.

절벽 아래에서 씨 뿌리는 산양을 올려다보고 있던 한 이리가 큰 소리로 초원에 드넓고 비옥한 땅이 널려 있는데 뭐 하러 위험하기 짝이 없는 불모지를 일구냐고 핀잔을 주었다.

“배고픈 저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요.”

산양은 허리를 펴고 절벽 위쪽에 우글대는 염소 떼와 산양 떼를 가리켰다. 숲에서 벼랑으로 내몰린 염소들과 산양들이었다. 그들은 벼랑에 자란 측백나무 잎과 바위 솔을 뜯고 소금바위를 핥으며 연명하고 있는데 벼랑으로 쫓겨 오는 초식동물들 수는 나날이 늘어나고 있었다.

이리는 산양 떼를 흘끗 쳐다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이리가 돌연히 매우 다정한 목소리로 산양에게 초원으로 오라고 소리쳤다. 이리는 초식종족들을 위한 땅을 따로 떼어 울타리를 세워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리는 다음 해 봄이 오면 초원은 초식동물들이 양껏 먹고도 남아돌 만큼 풀이 무성할 것이니 배고픈 무리를 이끌고 당장 절벽을 내려와 초원으로 달려오라고 설득을 했다. 

이리를 굽어보고 있던 산양이 입을 열었다.

“이리님, 초원에 풀이 많다고 모두가 달려가진 않아요.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밥 이상의 것이랍니다. 봄은 벼랑에도 옵니다.”

산양이 등을 돌려 다시 허리를 구부렸다. 목숨이 둘도 아닌데 초식동물들의 영웅이 되고 싶어 환장한 모양이라는 이리의 빈정거림에도 산양은 돌아보지 않았다.

 

*  *

새 정권, 문재인의 큰 배가 대한민국 바다에서 깃발을 펄럭이면서부터, 아침이 산뜻하다. 하지만 마음 한 편은 그늘이 져 있다. 밑바닥 경제가 팍팍해서이고 벼랑에 선 것 같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새 정부 문재인 희망호는 소외된 곳을 찾아내 손 잡아주고, 악습이 된 제도들을 바꾸면서 동시에 경제민주화도 성공시키리라 믿는다. 빠른 시일 내에 되기 어렵겠지만 세상이 제대로 바뀌길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대로 희망호가 순항하길 바란다. 명분을 팔며 이리 저리 옮겨다니는 생계형 정치인이 아닌, 소신과 신념이 있는 참다운 정치인, 벼랑에 씨 뿌리는 산양 같은 이가 많아지길 기대한다.

 

한정선  helimse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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